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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10> 사라지는 사업주들

가끔 매스컴에서 실종사건들이 보도되어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할 때가 있는데,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도 상담을 하다 보면 실종자들을 심심찮게 발견하곤 한다. 이주노동자 중에서 실종자들이 생겨나기도 하는데 지금 하고자 하는 얘기는 한국인 실종자의 얘기다.
  
  아주 오랜만에 터키사람이 상담소를 찾아왔다. 마흐무드라고 하는 그 남자는 한국에 거주한 지 5년 정도 되었는데, 200만 원이 좀 넘는 임금이 체불되어 있었다.
  
  그는 그 회사에서 5개월 정도 일을 했었다. 그런데 공장이 이전하기로 하였고 마흐무드는 어디로 이사 가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인들과 함께 짐을 날랐다. 모든 짐들을 다 옮겼고 공장 안에는 커다란 기계들만 남겨놓았다. 해체해서 내일 옮긴다고 하면서. 그리고 모두들 퇴근했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해보니 공장은 텅 비어 있었다. 기계는 사라졌고, 아무 것도 없었고,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놀란 마흐무드가 사업주 핸드폰으로 연락해보았지만 사업주는 받지 않았다. 그 이후 사업주와는 연락이 끊어졌다. 그러니까 하루아침에 사장님도, 회사도, 한국인 동료들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200만 원이 넘는 그의 월급도 사라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말문을 열려면 5초 정도 더듬더듬하여 소심한 성격이라고 짐작되는 26살의 파키스탄 청년 샤니는 사업주와 둘이서 아동복을 만들었다. 한때는 꽤 잘 나가던 아동복이었는지 기본근로시간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거기에 또 잔업까지 하곤 했다. 사업주는 남대문에 가게도 가지고 있었는데, 수금이 부정기적으로 되어서인지 혹은 습관인지 모르겠는데 대체로 임금을 몇 달간 밀렸다가 한꺼번에 몇 백만 원씩 지불하곤 했다. 샤니는 그렇게 5년간을 일했고 4년간은 그럭저럭 지냈다.
  
  그런데 5년째 되던 2006년, 사업주가 예년과 같이 몇 달씩 밀려둔 임금이 무려 1055만원(1000만원이라면 그의 나라에서는 잘 쓰면 평생을 먹고 살 수도 있는 돈이다)이 됐을 때, 사업주는 샤니를 해고했다. 사업을 그만둔다고 하면서 샤니의 임금은 꼭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남대문의 가게는 없어졌고 집도 어딘가로 이사했다. 그리고 연락이 두절되고 나서 두 달여 지난 후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 단체를 찾아왔다. 지체할 필요도 없어 노동부에 즉각 진정했지만 사업주를 수배명단에 올려놓고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업주들만 이렇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노동부 출석 날, 나를 만난 샤니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저녁 5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야간조로만 일하는 샤니가 오후 3시 30분에 출석했으니 잠을 제대로 못 잤을 것은 뻔한 일. 나는 그래서 그의 눈이 충혈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근로감독관이 서류를 작성하는 짧은 시간동안 기운 없이 샤니가 털어놓은 사연은 이러했다.
  
  샤니는 회사에서 마련해준 기숙사에서 기거하고 있는데, 한국인이 한 사람 함께 기거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한 지 1년 정도 되었고 샤니와 꽤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사람은 샤니에게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면서 한 달만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샤니는 140만 원을 빌려주었다. 그런데 돈을 빌려가고 얼마 되지 않아 그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핸드폰은 통화정지 된 지 오래였고 아무도 그의 인적사항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왜 빌려줬느냐, 지금 1000만 원이 넘는 월급도 못 받고 있으면서…" 안타깝게 말하는 나에게 샤니는 "다른 사람이 아프다고 했으면 안 빌려줬어요.엄마가 아프다고 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 파키스탄 청년은 나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샤니는 그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또 사업주에게 떼인 돈 역시 받지 못할 것이다. 만약 샤니가 행운아라면, 한국에 있는 동안 검문에 걸린 사업주가 벌금에 해당하는 돈(임금체불로 부과되는 벌금은 대개 체불액의 20%정도다)을 체불된 임금 대신 줄 테니 합의하자는 제안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임금을 체불하고 종적을 감추는 사람의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누가 돈을 쌓아놓고 일부러 임금을 체불하겠는가. 오죽하면 그랬겠느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온다간다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면, 남은 이주노동자들은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사라지는 사업주들 중에는 상습적인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보따리 장사'라고 하여 한 곳에서 공장 비슷한 업소를 차려놓고 물정 잘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을 채용해 몇 달 일 시켜놓고 체불하고 사라지고,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또 비슷한 일을 반복한다고 한다. 이들의 핸드폰을 추적해보았자 인적 사항은 안 나오고(이른 바 '대포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업자 등록은 아예 없거나 남의 이름으로 낸 것이고 해서 아무 것도 추적이 되지 않는다.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도깨비 같은 사업주들도 적지 않으니 그나마 '꼭 주겠다'느니 '미안하다'느니 라는 말이라도 남기고 사라지는 사람들은 인간적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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