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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진정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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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임권택, 진정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다

[특집] 첫 공개된 100번째 영화 <천년학>

지난 3일 전문가 시사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첫 공개된 <천년학>은, 한배에서 났지만 외모도 생김새도 전혀 다른 이란성 쌍둥이처럼 14년전의 <서편제>와 동일한 인물, 동일한 줄거리를 다루지만 완전히 다른 영화이다. <서편제>와 마찬가지로 떠돌이 소리꾼 유봉 밑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나 남매로 자란 동호와 송화는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지만, 가난이 싫어 집을 뛰쳐나간 동호는 공연패에서 고수 노릇을 하고 송화는 시력을 잃은 채 양아버지 유봉이 그랬듯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소리를 팔며 삶을 유지한다. <서편제>와 <천년학> 사이에 임권택 감독은 <태백산맥>부터 <하류인생>까지 무려 6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아무래도 같은 줄거리를 공유하고 있는 이상 <천년학>은 <서편제>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서편제>가 자의든 타의든 '득음'이라는 경지를 향해 한발짝 두발짝 나아가는 소리꾼의 모습을 보여주며 임권택 감독의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영화였다면, <천년학>은 20여 년에 걸쳐 단 한번도 상대를 향해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못한 채 서로 엇갈림과 스침을 반복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들의 인생은 끝없이 서로를 찾고 기다리면서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길을 떠나고, 또 떠나고 하는 식이다. 헤어진 지 7, 8년만에 겨우 만나면서도, 혹은 누군가의 칠순잔치에서 우연히 만나면서도, 그들은 마치 어제 헤어지고 다시 만난 듯 서로를 향해 담담히 안부를 확인하고, 아이를 잘 키우라 당부할 뿐이다. 한번도 입 밖으로 표현되지도, 그리고 통상 남녀간의 관계로 발전하지도 못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단단한 애정으로, 그리고 애절한 그리움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서편제>에서 마침내 만나 소리와 북을 주고받으면서도 서로 아는 체하지 않았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
천년학 ⓒ프레시안무비
같은 줄거리를 다루는 상반된 입장은, <서편제>에서 송화에게 한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눈을 멀게 했던 유봉의 행동을 <천년학>에서는 부정해 버리는 데에서 더욱 단적으로 드러난다. <천년학>에서의 유봉은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일부러 소경을 만드는가?"라 말하며 송화의 실명이 의도된 것이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물론 동호는 그렇게 믿지 않고, 진실은 유봉만이 알 테지만. 그러나 이것 외에도, <천년학>에서 임권택 감독이 보여주는 시선인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연민이 전제되어 있으며, 오히려 <천년학> 때문에 <서편제>가 매우 독하고 날이 선 영화로 느껴질 정도다. 아울러 <서편제>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뭔가 불편한 감정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바로 <천년학>에서 직접 감독의 입장 전환을 통해 폭로되는 듯하다. 예술보다는 삶 그 자체에 천착 기자회견에서 송화 역의 오정해 역시 언급한 바 있지만, <천년학>은 '최고의 소리꾼'으로서의 송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편제>에서의 송화란 캐릭터 자체는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나 최고의 소리꾼을 향한 집념을 별로 보여주지 않지만,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은 임권택 감독 자신의 욕망이 수동적으로 투사된 캐릭터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천년학>에서는 그런 욕망이나 집념이 보이지 않는다. 송화는 아버지 유봉처럼 실패한 소리꾼으로 남았고, 자신의 '실패'에 대해 회환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그녀는 전국을 떠돌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소리를 할 뿐이다. 감독은 <천년학>에서 송화와 동호 사이에 존재하는 깊고 애절한 유대와 애정에 집중하면서, 화려하지도, 성공하지도, 인정받지도 못한 그들의 유랑하는 삶 자체를 그대로 껴안는다. 최고의 소리꾼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가사의 뜻도 모르고 소리만 흉내낸다고 시대의 명창에게 독한 비판을 들으면서, 송화는 소리를, 그리고 삶을 계속 이어나간다. 이러한 '실패한 소리꾼'으로서 그려지는 것은 동호의 처인 단심도 마찬가지인데, 동호의 발목을 잡고 노름에 빠져있을지언정 그녀의 모습은 마치 송화의 또다른 분신으로 여겨질 만큼 애틋하고 애절하다. (아마도 그렇기에 동호가 그녀의 곁을 선뜻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최고의 소리꾼이 되지 않으면 어떠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리하여 베갯맡에서 자신의 소리를 좋아하는 이에게 소리를 들려주는 것 역시 인간의 삶의 행복일 수 있다는 것을, <천년학>은 보여주는 듯하다. 아무리 그 상대가 칠순을 넘긴 노인네라 하더라도, 아무리 송화의 처지가 그런 남자의 소실 위치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화려한 "매화꽃 날리는 씬"은 동호와 함께 있는 송화가 아닌, 생의 마지막 길에 있는 백사를 돌보는 송화의 모습에 바쳐진다.
천년학 ⓒ프레시안무비
100이라는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100번째 영화로 '노장'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임권택 감독은 <천년학>이 <서편제>와 달리 '한'에 집착하지 않고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다룬 영화라 했지만, 그가 <서편제>에서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직설법으로 설파했던, 그러나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했던 그 '한'이라는 것이 실체가 <천년학>에서 비로소 제대로 구현된 느낌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긴 세월을 두고 속으로만 삭이고 쌓아두어야 할 감정들, 입밖에 내지 않은 채 묻어두어야 하는 것들이 생기는 법이고, <천년학>은 바로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삶을 알아간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영화 상영 후 기자회견에서 오간 질문과 답변을 요약한 것이다. - (임권택 감독에게) 어제(4월 2일) 한미 FTA가 타결됐다. 스크린쿼터 수호에 앞장섰던 감독으로서 소감이 어떤가. 한국영화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되는가? (임권택 감독) 내가 지금까지 감독을 할 수 있는 건 바로 스크린쿼터라는 보호막 때문이었다. 이제껏 내가 해온 영화들은 거의 흥행할 수 있는 영화들이 아니었고, 투자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영화들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 때문에 한국영화에 대한 일정한 수요가 유지될 수 있었고, 내 영화처럼 흥행력이 떨어지는 영화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미국이라는 큰 배급사가 극장에서 주도적으로 많은 돈을 갖고 얼마든지 배급하는 동안,우리 한국영화는 좋은 시즌에 흥행하는 게 아니라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안 좋은 날짜를 받아서 배급하곤 했다. 그러나 현재 스크린쿼터는 반으로 줄어든 상태고,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한국영화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한국영화를 지킬 수 있는 보호막이 없어졌다는 게 큰 걱정이고 위험으로 느껴진다. 스크린쿼터는 되살아나야 한다. 어제 FTA도 타결됐고, 스크리쿼터는 반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영화를 잘 만드는 것뿐이란 생각이 든다. 작년에 엄청나게 많은 수의 한국영화가 제작됐는데 이중 50% 이상이 신인감독이었다. 투자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아무 보호막이 없다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나부터가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같다. - (조재현에게) 무대인사를 할 때 "감독님은 부담이 많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부담 하나도 없이 영광스러운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만 작업했다."고 말했는데,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에 정말 아무 부담없이 임할 수 있었는지? 자발적으로 참여한 동호역에 스스로 만족하는지? (조재현) 부담이 정말로 없었겠는가. 사실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감독님이 가장 부담이 크셨을 것이다. 부담이란 언제나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하기 마련인지라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했던 거다. 다만 97번째, 98번째 영화보다는 100번째 영화가 더 상징성이 있고 교과서에도 실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웃음) 이 영화를 찍을 때는 좋은 에너지 쪽으로만 작용을 했다. 처음 참여를 결정했을 때나 영화를 끝낸 지금이나 나의 마음가짐은 똑같다. 나는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로 참여한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기분이 매우 좋고, 영화가 끝난 후 감독님이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들겨 주셨을 때 모든 보상을 다 받은 기분이 들었다. - (오정해에게) 14년만에 송화라는 캐릭터를 맡은 소감이 어떤지? 영화에 나오는 소리를 하기 위해 따로 준비한 것은? 설레이면서도 부담감이 매우 컸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나선다는 것도, 내가 <축제>와 <태백산맥>을 비롯해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에 네 번이나 출연한 여배우가 된다는 사실도 부담이 됐다. 거기에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가 아닌가. 이 모든 수식어들이 부담으로 작용해서 제작발표회 때는 심지어 웃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송화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촬영이 계속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부담감도 어쩌면 개인적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영화를 보다보니 내 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서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송화의 소리가 굉장한 절창이어야 한다면 인간문화재 선생님이 대신 하셨겠지만 이 영화는 '사랑의 감정'을 다루는 것이라 썩 잘하지 않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소리가 들어가게 됐다. 국악인으로서의 욕심이라면 <천년학>이 해외에 많이 소개되고 이를 통해 판소리가 세계에 알려져 국위선양을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다.
(왼쪽부터) 촬영감독 정일성, 음악감독 양방언, 배우 오정해, 임권택 감독, 배우 조재현 ⓒ프레시안무비
- (감독에게) 100번째 영화라는 것이 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감독 스스로 생각하는 내적 의미는 무엇인가? 난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가볍게 가려 했는데 외부에서 계속 그렇게 의미를 두다 보니 내맘대로 가볍게 넘어갈 수가 없는 문제가 됐다는 걸 깨달았다. 98번째 영화나 99번째 영화나 100번째 영화나 별 차이가 없을텐데 그렇게 되다보니 부담감이 커져서 어떻게든 무사히 마치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이 영화를 하면서 가진 가장 큰 소망이었다. 다만 이 영화가 100편을 감독한 사람의 '세월'이 담긴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며 어려움도 많았다. 100번째 영화가 끝나면서 주변에, 그리고 외국에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무사히 해낼 수 있다는 것 하나로 소임을 다 했다는 생각 외에 다른 할 얘기는 크게 없다. 100번재 영화 속에 한국사람의 한스러움, 흥스러움, 멋스러움을 사랑 얘기를 통해 도처에 심어넣고 싶었다. 총체적으로 커다란 한국화를 그리는 듯한 느낌으로. 관객들이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다. - (음악감독 양방언에게) 이 영화의 주요 테마는 '판소리'라는 음악이다. 음악여화에서 음악을 맡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국악만으로 음악을 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지라 음악을 제작하던 초기에는 고민도 많았다. 그러나 촬영장을 방문해 감독님의 설명을 듣고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국악만으로 음악을 구성하지 않고 나의 최선을 다하기로 했고 이후로 순조롭게 풀려 내 스스로 보기에도 완성도 높은 음악이 나온 것같다. 음악 연주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게 부탁했는데, 작업 전에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또 음악에 들어가는 전통적인 요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을 했다. 그들도 아주 흥미로워 했던지라 매우 즐겁게 연주했다. 그들 중 일부는 연주가 끝난 후 감독님의 성함과 개봉 날짜, 그리고 영국에서 볼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도 물어오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내가 준비한 것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 (두 배우에게) "사랑이야기"라곤 하지만 이 감정은 밖으로 표현되질 않는다. 애잔하고 애틋하기는 하지만 답답한 느낌도 들었을텐데 힘든 점은 없었는지? (오정해) 사랑의 표현이 요즘과는 많이 다르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도 아니다. 굳이 헤어지지 않아도 될 텐데 돌아서고, 잡아도 될 것 같은데 잡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랑이 이성간의 사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감정이고 그런 삶이다 생각했다. 오히려 힘든 건 시각장애인 역할을 하면서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부분이었고, 대사도 우회적인 표현을 많이 하다보니 다소 딱딱한 어투가 되어 이걸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하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또한 소리를 할 때도, 소리라는 게 할 때마다 각각 표정이 다르다. 마을 사람들 앞에서 할 때와, 아버지의 유골을 안고 가서 묻으면서 하는 소리는 표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선과 소리, 연기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하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소리하는 사람은 몸 컨디션이 좋아야 좋은 소리가 나오는데 영화 현장이 배우의 몸 컨디션에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 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안타까웠던 부분이 좀 있다. (조재현) 두 사람의 사랑은 특이하다. 7, 8년을 기다려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러나 만나서 교류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오히려 떨어져 있을 때, 동호 안에 소화가 있고 소화 안에 동화가 있고, 송화의 소리 속에 동화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바로 감독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구나, 생각했다.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는데, 첫 작업을 한 배우 중 나만큼 대화를 많이 한 배우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이제 17, 8년을 연기를 해왔지만, 50년간 영화를 만들어오신 감독님보다 훨씬 더 틀에 갇혀있고 매너리즘에 빠져있구나 느꼈다. 감독님은 매 씬마다 촬영 바로 전날까지도 고민을 거듭하셨다. 아마도 그렇게 매번 틀을 깨면서 온 게 100편이 아닌가 싶다.
임권택 감독 ⓒ프레시안무비
- 서울극장 스크린이 영화가 원래 의도한 화면을 미처 다 못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영사가 된 것인지? 아니면 촬영 화면의 스타일이 변한 것인지? (정일성 촬영감독) 내가 의도한 로우키(low-key)의 의도와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화면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보이는 화면, 사람의 삶과 아픔이 드러나는 화면을 찍는 게 원칙이다. 메가박스에서는 원하는 색감대로 나왔는데 오늘은 조금 어두웠던 것 같다. 사실 요즘은 누가 찍어도 비슷한 색채가 나온다. 그래서 과거에 좋아했던 색에도 크게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는 건 사실이다. 한 스텝 오버로 가거나 언더로 간달지, 현상실에서 현상할 때도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한다. - (감독에게) 속으로 켜켜이 쌓아가는 사랑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서 선곡된 창들이 충분히 의미를 고려했겠으나 적벽가가 사용된 것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옛날에 소리를 잘 아는 이들은 소리꾼의 기량을 물어보기 위해 가장 먼저 묻는 게 "적벽가를 할 수 있는가?"였다. 소리꾼이 소리를 얼마나 하는지, 실력이 어떻게 되는지 척도하는 기준이었던 셈이다. 적벽가가 담고 있는 삼국지의 내용이 중요한 건 아니었고, 적벽가뿐 아니라 영화에 사용된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은 모두 소리판의 전체적인 면을 그리고 싶어서 넣었다. 소리판 사람들이 내뿜는 진짜 면모들을 생생하고 사실감있게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조명창(영화에 '조평세 명창으로 특별출연을 해주신 인간문화제 조.. 선생을 가리킴 – 편집자 주)이 오정해의 창을 흠을 잡고 비판하는 장면도 넣은 것이다. - (감독에게) 이제껏 참 다양한 실험을 해왔지만 음악에서 특히 큰 변화가 보인다. 영상과 음악을 조화시키는 데에서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었는지? <천년학>에 대해 <서편제> 아류, <서편제> 속편과 같은 평가에서 벗어나 <서편제>로부터 거듭난 영화, 새로운 영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이다. 개인이란 알게 모르게 한계가 있는 법인데, <서편제> 때 음악을 담당했던 김수철의 음악을 다시 쓰면 <서편제>로부터 거듭난 영화라는 인상을 못 주고 위험부담도 커진다. 또한 '판소리'가 많이 들어가는데 판소리가 영화에서 너무 주도적으로 가면 판소리가 영화 전체를 너무 지배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어떤 음악가를 만나야 그런 인상에서 벗어나나, 고민이 참 많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들면서 참 운 좋은 일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내가 양반언의 공연을 봤다는 것이다. 그의 공연을 보고 한국악기에 온갖 서양악기를 섞으면서도 절묘한 조화를 이끌어내면서 현대음악을 하는 것을 보았다. 게다가 가장 겁을 냈던 게 양방언 씨가 교포라고는 해도 일본에서 태어나 쭉 살아온 사람인지라 음악에 왜색이 있으면 큰일이라는 것이었는데, 음악을 듣고보니 아, 이 사람은 역시 한국인의 피가 살아있구나, 느꼈다. 음악 자체가 한국인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가락을 담고 있었다. - 한국인의 민족적 정서라 하는 '한'에 대해 <서편제> 때도 표현했고 이번에도 그렇다. 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이란 뭐라고 생각하는지? '한'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사람마다 다르며, 명료하게 파악되지도 않는다. <서편제>에서는 한을 딛고 일어서야 득음을 하는 걸로 표현했는데, <천년학>에서는 한 자체에 집요하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람'으로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다뤘다. 판소리를 매개로 한을 넘어서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그 사랑을 소리로 승화시키는 내용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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