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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로 '노무현은 살고 범여권은 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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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로 '노무현은 살고 범여권은 죽고'?

[한미FTA 뜯어보기 426 : 한미FTA의 정치적 파장] 공세적 국정운영 예고…'제동장치' 부실

노무현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미 FTA가 정치 구도를 일거에 뒤흔든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노 대통령을 지지하고 나선, 이른바 '3각 동맹'의 표면화는 전여옥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이례적인 '노무현 칭찬'이 아니어도 일찌감치 감지된 대목이다. 다른 한편에서 한미 FTA라는 새로운 대치전선을 긋고 있는 구(舊)여권은 자중지란 속에 '노무현의 의제'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는 형국이다.

이렇게 '레임덕 없는 대통령'을 향한 노 대통령의 '한미 FTA 카드'는 의도했건 아니건 이렇게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적지 않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첫 단계를 넘어섰다.

'레임덕'은 없다?

한미 FTA 후속 일정이 대선 일정과 거의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점은 정치권이 적어도 대선까지는 한미 FTA 문제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갈등과 새로운 연대 전선을 구축하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갈등과 연대의 중심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 3일 "한미 FTA는 국가 전체의 미래를 볼 때 발전의 계기가 된다"면서 "보완할 점은 해야겠지만 (국회가) 긍정적으로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으면 한다"고 밝힌 대목은 한미 FTA가 예상보다 쉽게 노 대통령의 임기 내 치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국회 농해수위원장으로 한미 FTA 반대파 모임에 가담해 있으면서 이명박 전 시장을 지원하는 권오을 의원의 전망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이날 기자와 만나 "결국 비준될 것이다"고 내다보면서 "한미 FTA는 노 대통령의 임기 내에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연내 비준 가능성과 당위성에 힘을 실었다.

"자기 지지기반에 대한 배신", "보수진영에의 투항"이라는 혹독한 평가 속에서도 한미 FTA 이슈를 전후해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일정부분 상승한 대목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이와 관련해선 적어도 임기 말 국정 장악력을 과시함으로써 향후의 카드인 개헌과 남북정상회담 국면으로 이어갈 동력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대선 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느냐는 문제와는 별개로 노 대통령이 앞으로 대선정국에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노무현의 의제'를 계속 투입할 바탕은 분명히 구축됐다는 것이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만 하다"며 "업적과 성과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임기 말의 속성 상 개헌은 물론이고 남북관계 문제도 곧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개헌→한미 FTA→남북정상회담, 고강도 드라이브 예상

이렇게 볼 때 노 대통령은 앞으로 한미 FTA와 남북정상회담을 '양대 업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공세적 국정운영이 예상된다. 개헌 역시 현실적으로 실패한 의제가 될 공산이 크다고는 하나 통과의례로서의 진통은 불가피하다.

4월~6월 개헌 국면, 6월 이후 한미 FTA 비준 국면, 8월을 전후한 남북정상회담 국면으로 이어지는 노 대통령의 임기 말 드라이브가 대선정국을 휩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양대 업적에 대한 노 대통령의 집착을 감안하면 한나라당 일각에서 새어나온 한미FTA 국회 비준의 전제로 개헌과 남북정상회담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될 공산이 크다. 김헌태 소장은 "노 대통령은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와 관련해 구여권에선 김근태 전 의장, 천정배 의원 등이 한미 FTA 반대론을 이끌고 있으나 실질적인 구심이 되기에는 미약하다는 게 중론이다.
▲ 노무현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한덕수 신임 국무총리와 함께 입장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김근태, 천정배 의원이 반(反)한미 FTA 쪽에 서 있지만 다른 한쪽에선 손학규 전 지사 등 찬성 진영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나 정동영 전 의장 등 중간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진영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 한미 FTA 정국에서 서로 한 둥지에 포괄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남북관계 문제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헌태 소장은 "구여권의 특정 주자가 남북관계 이슈를 선점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한나라당 역시 남북정상회담을 대놓고 반대할만한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 이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보수진영 대다수가 속수무책일 것"이라며 "이런 면에서 남북관계는 갈등 이슈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 등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외적인 변수만 해결된다면 국내적인 저항요인은 미미할 것이라는 뜻이다.

김 소장은 이에 따라 "이미 당적을 버린 노 대통령의 입장에선 사안별로 범여권과 한나라당에 기대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같은 전망은 결국 가을 무렵 남북정상회담이 가시화되고 실제 성사되는 국면에 이르면 그 이전의 한미 FTA 논란은 자연스럽게 잦아들고 노 대통령이 주도하는 정국 운영의 패러다임은 최절정기를 맞게 되리라는 얘기다.

"보수 우위의 정치지형 고착될 것"

이런 분석대로라면 훗날의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그 누구보다 화려한 임기 말을 보낼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물러나는 노 대통령과는 달리 이제부터 대선 전망을 세워야 할 정치세력, 특히 구여권에게는 대단히 복잡한 방정식 풀이가 숙제로 남아 있다.

첫째는 노 대통령이 한미 FTA 추진으로 '배신'한 전통적 지지기반인 개혁층의 재흡수다. 고 연구원은 "한미 FTA를 통해 노 대통령이 전향함으로써 노무현을 대치할 중도개혁세력의 구심성이 사라졌다. 이를 새롭게 구축할 수 있는 전망이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획기적이고 새로운 대안이 나오지 않는 한 보수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정치지형은 장기적으로 고착돼 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 광의의 구여권 지지그룹으로 묶여 있던 노 대통령 지지층이 과연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노 대통령은 다음 출마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구여권 내의 어떤 주자보다도 확실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 그런 상황이 각 주자들의 움직임에 큰 장애물로 작용해 온 것도 사실이다. 과연 이 지지층이 어떻게 이합집산할지 구여권 주자들의 신경이 곤두설대로 서 있는 상황이다.

두 번째는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구여권의 통합이 한미 FTA 문제로 인해 더욱 교착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구여권 인사들이 구두선처럼 입에 붙이고 사는 '통합신당'은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김헌태 소장은 "구여권의 통합적 정계개편은 절대로 불가능해졌다"고 단언했다. 그는 "한미 FTA는 그동안 '묻지마 통합'을 주장하던 사람들 사이의 다름이 확인된 과정이기도 하다"며 "정치세력이나 정당으로서는 노선에 맞게 분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런 전망 속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이 주목받고 있다. 요컨대 통합 자체가 어렵다면 대선후보 단일화가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여전히 선(先)통합-후(後)후보 선출'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이미 국면은 대선후보 원탁회의 등 '후보를 중심으로 한 교통정리 쪽으로 정리돼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보수 우위 정치구도'의 초석을 다진 노 대통령의 임기 말 카드에 대응할만한 구여권의 묘수풀이는 여전히 난망해 보인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선제해 이끌고 가는 현재의 국면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를 구여권 대선주자 그 누구도 현재로선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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