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자 KBS, MBC, SBS 등 방송 3사는 이날 밤 일제히 FTA 토론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해 내보냈다.
양국 정부간 FTA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이제 협상 결과에 대한 찬반 양쪽의 '검증'이 본격화됐다는 신호탄인 셈이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 확인된 것은 좁혀지기 힘든 찬반 양측의 '시각차'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동차, 서비스 분야 등 주요 분야를 놓고 평가가 크게 엇갈렸다.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이제까지의 갈등을 봉합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에 함께 노력하자는 수준. 국회 검증 과정에서는 FTA에 반대해 온 민주노동당과 민생정치모임의 국정조사, 청문회, 국민투표 등의 요구에 대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측은 "청문회는 가능하고 국정조사도 필요할 경우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민투표에 대해선 분명히 거부했다.
한편 FTA를 계기로 형성된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연대도 다른 현안이 불거질 경우 깨어질 수 있는 것임이 이날 확인됐다. 국회 한미FTA 특위 간사인 윤건영 의원(한나라)은 이날 "노 대통령이 욕심이 너무 많다"면서 FTA 국회 비준을 원한다면 개헌과 남북정상회담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은 이날 밤 10시45분부터 3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됐던 KBS 보도특집 '한미 FTA 협상 타결, 득실과 과제는'의 내용을 쟁점 별로 간추린 것이다.
한미 FTA 총점은?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은 "한반도 영토 전체에 대한 역외 가공을 인정할 근거를 만든 것은 한반도 평화와 중소기업 활로를 여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극찬했다.
윤건영 한나라당 의원도 "75점 쯤 주고 싶다"며 합격점을 매겼다.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자동차, 섬유 등 분야에서 우리도 얻은 게 많았다"며 "이익의 균형을 맞춘 협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상품 관세를 놓고 보면 말로 주고 되로 받았다"며 "동일한 조건에서 관세율의 차이 때문에 미국이 얻어갈 이익이 우리보다 2배 많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미국과 교역액은 늘어날 것이지만 이익은 한국이 줄어든다고 평가했다. 2001년 미국제무역위원회에서는 FTA가 체결되고 4-5년 후 우리가 대미무역 적자국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대미 경상수지 흑자가 우리 경제에서 경상수지를 맞추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며 "궁극적으로 경상수지 적자국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대통령은 농업과 의약품을 빼고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정밀기계 분야는 초토화될 것이고, 석유화학은 내수기반이 무너질 수 있고, 범용 부문에서 중국과 경쟁이 더 격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미국 측 요구가 완벽하게 관철된 불균형 협상이며 특히 서민에게 미칠 파괴적 영향 때문에 걱정"이라고 평가했다.
최재천 의원(무소속)은 "무엇을 근거로 김종훈 우리측 협상단 수석대표가 '수(秀)'를 맞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개성공단, 무역구제 등 정부가 꼭 얻어내겠다고 한 것 중 얻어낸 것은 뭐냐"고 반문했다.최 의원은 "정부가 갑자기 FTA가 낮은 단계라고 하는 것은 협상 실패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그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산 쇠고기 위험하지 않다' vs '국민건강권까지 내줬다'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을 벌인 주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였다.
송영길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는 FTA와 상관없이 통상현안 문제로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며 "98년도 광우병을 유발하는 골육분 사료를 금지한 이후1억 마리 중 광우병 증세를 보인 소는 3마리에 불과했다"고 '안전성' 문제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경태 원장도 "광우병 때문에 미국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면서 "우리나라도 국제적 추세에 맞춘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건영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게 위험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미국에 우리 인구의 6배가 살고 있는데 광우병 얘기를 들었나"고 말해 '철저한 관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심상정 의원은 "쇠고기 수입조건 완화는 FTA 현안이 아니었다면서 대통령이 30개월령 소를 기준으로 뼈 있는 쇠고기까지 수입하는 것을 구두합의했다"면서 "국민의 건강권까지 미국의 요구로 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미국의 섬유부문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유전자 조작 식품 기준 완화를 요구해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보도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 의원은 "일본은 자국 내 소에 대한 관리시스템도 완벽하게 갖추고 미국에 동일조건을 요구해 20개월령 소를 기준으로 하기로 했다"며 "우리 측이 졸속 협상을 하다 보니 떠밀려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졸속협상이라는 증거는 노 대통령 얘기만 봐도 알 수 있다"며 "노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가 선결 조건이라고 했다가, 7차협상 때는 FTA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가, 오늘 대국민담화에서는 본인이 직접 부시대통령과 전화로 이 문제를 풀었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해영 교수는 "2003년 당시 미국산 쇠고기를 20만 톤 수입하고 호주산은 6만 톤을 수입했다. 그러나 2005년 호주산 쇠고기는 8만 톤 수입하는 데 그쳤다"면서 "흔히 얘기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 호주산 수입이 줄어든다는 '무역전환효과'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우 축산농가의 피해만 늘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자동차 관세철폐로 수출 늘 것' vs '소나타 경쟁력도 안심 못해'
한편 자동차 부문에 대한 평가도 엇갈렸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관세가 철폐되면 수출이 8억6000만 달러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정태인 교수는 "자동차 분야에서 관세 철폐는 잘했다고 보는데 문제는 비관세 분야"라고 강조했다.그는 "비관세를 보면 우리는 80가지를 바꾸는 것으로 돼 있는데 미국은 바꾸는 것이 없다.우리가 전혀 손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태인 교수는 또 "관세철폐로 차 한대 당 50만 원 정도 가격이 떨어지는 셈인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면서 "반면 우리가 8% 관세를 폐지하고 조세까지 따지면 우리 시장에서 미국차 가격은 10% 정도 떨어지는 것인데, 현대 소나타와 경쟁상품인 혼다 아코드나 도요다 콤니 등의 가격경쟁력이 얼마나 늘어날지, 과연 소나타가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자동차도 그렇게 안전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언제까지 밀가루약만 팔거냐' vs '경쟁력 강화 하루 아침에 되지 않아'
서비스 시장 개방도 엇갈리는 부분.찬성 측은 '개방에 따른 경쟁력 강화'를 얻은 점으로 내세운 반면, 반대 측은 "하루 아침에 경쟁력 강화가 이뤄지는 게 아니다"며 일방적인 '퍼주기'의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로 지적했다.
이해영 교수는 "현재 서비스 산업에서 대미무역은 40억 달러 적자를보고 있다"며 "이번 협상에서도 지적재산권 부분에서 대대적인 양보를 하는 등 가져온 것이 거의 없다"고 비난했다.그는 "독일이 90년대 말 법률시장을 개방했는데 대형로펌 10개 중 2개 빼고 모조리 영미계 로펌에 인수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경쟁력 강화' 주장과 관련해 "IMF 이후 금융사 구조조정으로 서비스가 좋아지고 은행 수익이 좋아진 것은 인정할 수 있다"며 "그러나 은행 주인이 우리은행을 빼고는 다 외국계로 바뀌었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저하된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가 은행의 중계 기능이 약화된 것이다. 수익만 신경 쓰지 은행의 거시적 기능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부작용을 지적하기도 했다.
심상정 의원도 "글로벌 시대에 자본의 국적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을 세제만 갖고 잡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외국계 은행의 행태에도 있다"며 "가계대출 520조가 풀려나와서 부동산가 폭등의 불쏘시개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송영길 의원은 "이미 우리 사회가 개방이 돼 있다"며 개방의 불가피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또 "제약분야를 예로들면 우리나라가 밀가루 약품(카피약)에만 의존해서는 제약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며 "부족하다고 문 닫고 있으면 경쟁력이 더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정인교 교수는 지적재산권 문제와 관련해 "우리 기업의 생산기술이 수입된 로열티를 통해 가동된다"며 "로열티를 통해 우리 기업의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고 이를 일방적인 무역적자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나라 "대통령 개헌과 남북정상회담 추진 포기해야"
향후 국회 검증 과정과 관련해서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 등이 요구하고 있는 국민투표 문제에 대해 국회 1당과 2당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다만 청문회는 상임위와 FTA 특위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있고, 국정조사도 필요할 경우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심상정 의원은 "국회 내 FTA 특위는 아무런 결정 권한 없이 정부의 졸속 추진을 비호하는 들러리 역할 밖에 못했다"며 "졸속 타결 배경은 미국의 TPA 시한 때문이다. 국회 비준과 관련해 어떤 절차나 의무도 제도화돼 있지 않지만 국론이 양분돼 있는 만큼 국회가 이 기간에 정신 차려서 국민의 뜻을 받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국회가 청문회와 국정조사권을 철저히 이용해 전 과정을 명백히 규명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재천 의원도 "우리 헌법에는 농업 보호 조항 등 경제적 약자를 위한 조항이 있다"면서 "FTA가 사실상 헌법 개정 효과가 있는만큼 여기에 대한 판단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고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이와는 별도로, 이날 세 시간 가까이 FTA에 대한 평가를 놓고 동일한 입장을 보인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향후 국회 비준 과정에서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 토론회 막판에 드러났다.
윤건영 의원은 "국회 비준 과정에서도 대통령이 역할이 중요한데 대통령이 욕심이 너무 많다"며 "개헌, 남북정상회담, 이 와중에 FTA비준까지 임기 내에 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한 것. 그는 "개헌 추진,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접지 않는다면 FTA는 18대 국회가 돼야 비준이 가능하다"며 노 대통령이 현재 구상 중인 임기말의 각종 정치일정을 포기할 것을 요청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금년 중에 생각해 볼 수 있는 최대 정치이벤트로 꼽히는 남북 정상회담은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한미FTA의 찬반론을 일거에 넘어서면서 정치적 주도권을 임기말까지 쥐고 갈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대형 카드로 꼽히고 있어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격론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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