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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명판결 없나요?

[화제의 책] 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중에 '미란다 원칙'이라는 말이 있다.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 용의자를 연행할 때 그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고지할 의무를 말한다. 이 원칙이 확립된 것은 1966년 미국에서였고, 애리조나에 거주하던 멕시코계 미국인 '어네스토 미란다'라는 사람이 납치·강간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였다.

미란다는 경찰에 연행돼 처음에는 무죄를 주장하다가 2시간 만에 자백 진술서를 쓰고 말았다. 그러나 미란다는 재판과정에서 자백을 번복하고 다시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애리조나 주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최저 20년~최고 3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에 미란다는 연방대법원에 "수정헌법 제5조에 보장된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수정헌법 제6조에 보장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다"며 상고청원서를 냈다.

연방대법원은 미란다의 상고에 대해 5:4로 미란다의 손을 들어주고, 미란다에게 재심의 기회를 주도록 명령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 판결을 두고 "법원이 범죄자의 권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수사를 방해한다"는 맹렬한 비난이 일었지만, 대법원은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우선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찰은 연방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진술거부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을 피의자에게 반드시 고지하도록 했고, 결국 '미란다 원칙'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후 '미란다 원칙'이 수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들도 제출됐다.

그렇다면 미란다는 진짜 죄를 지었을까, 안 지었을까? 미란다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애리조나 주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았지만, 그가 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때 면회 온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범인이라고 고백했던 것이 들통 나 결국 유죄가 확정됐다. 미란다는 이후 수차례 교도소를 들락거리다 1976년 어느 술집에서 카드 노름을 하다 싸움이 붙어 살해됐다고 한다.

비록 '미란다' 그의 인생은 초라했지만, '미란다 판결'은 후세에 영원히 남아 미국 밖에서도 형사 피의자의 권리를 뜻하는 대명사가 된 것이다.

▲ '미국헌법과 인권의 역사-민주주의의 인권을 신장시킨 명판결'(장호순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정판 2007)

인권을 지켜온 미국 연방대법원, 우리나라는?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최근 자신의 저서 '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개마고원 펴냄)를 9년 만에 다시 출간했다. 책의 부제는 '민주주의의 인권을 신장시킨 명판결'이다.

장 교수는 개정판 서문을 통해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저지르고 있는 갖가지 인권침해는 거의 전세계 사람들을 반미주의자로 만들고 있다"며 "한 가닥 위안이 있다면, 그나마 미국 내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계 미국인이나 일본계 미국인에게 자행된 것과 같은 인심각한 인권유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미국 국경 내로 제한돼 있기는 하지만, 미국 건국 이후 연방대법원이 꾸준히 축적해놓은 인권보호 판결이 실질적인 지킴이가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사법부는 어떠했는가를 보면 초라하다. 특히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98년 이후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사법부가 어느 정도 전진했는가를 보면 과연 우리 사법부는 어떤 역사를 축적해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은 아직까지 유통기한이 남아 있는 책이다.

장 교수는 "비록 국가보안법 등 일부 군사독재 시절의 유산이 해소되지 않고 있지만, 위헌심사제도의 정착과 인권보호 중심의 사법제도 개혁 등 민주적 법치제도가 정착돼 가고 있다"면서도 "대한민국의 인권보호 토대는 아직 취약하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와 법의 인권보호 기능이 아직 부족해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들 다수는 여전히 거리로 나가 여론에 호소하곤 한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특히 "국가보안법 등이 적절하게 수정되지 않아 남북관계 악화 등으로 국가적·정치적 위기가 닥칠 경우 심각한 인권유린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독재정권만이 인권침해 세력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다수결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존하는 소수자의 인권침해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장 교수는 "98년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이래,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신장에 있어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애초 이 책이 담고 있던 문제의식은 여전히 현재에도 유의미하고 유용한 듯 하다"고 개정판을 낸 이유를 밝혔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초기에는 보수정치인과 자본가들의 방패

이 책은 미국 역사와 사법부의 역할을 다양하게 조명하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건국 초기 보수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의 방패 역할을 하며 인종 차별과 노동 탄압을 외면한 모습을 보여주고, 2차 대전과 냉전기를 전후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사례도 보여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연방대법원은 미국에 '공공변호사' 제도를 정착시키게 할 수 있었던 '기드온 판결'을 비롯해 소수자와 약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판결이 쌓여 사법부의 독립을 이뤄내 '워싱턴의 은둔자'로 불리며 미국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한다.

개정판에서는 'AP통신 판결'(1945년)과 '함디 판결'(2001년)이 추가됐다. 'AP통신 판결'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연방정부에 의해 기소된 AP통신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며 연방대법원에 상고한 사건으로, 연방대법원은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받는 언론의 자유가 사적 이익집단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며 AP통신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AP통신이 기득권을 보호하는 정관을 통해 언론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 결과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데,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의 영업의 자유'가 아니라는 판결이다.

'함디 판결'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 당시 탈레반 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혐의로 구금된 미국 시민권자 함디에 대해 "함디에 대한 구금은 대통령의 권력 남용"이라며 석방시킨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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