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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 살 사람'이 피해 안 보는 사회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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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 살 사람'이 피해 안 보는 사회 꿈꾼다

[사법불신, 왜?⑤끝]국회의 '직무유기'와 사법부의 '자성'

"법 없이도 살 사람." 도덕적으로 매우 바른 사람이라는 이 말에 대해 한 현직판사는 이 말들을 두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사법불신'의 정서를 나타낸 말"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서양 속담에 '조개는 칼로 열고, 문은 열쇠로 열고, 변호사 입은 돈으로 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비단 법조계에 대한 불신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면서 "그래도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서양문명에 비해 예로부터 공동체의 미덕과 합의의 정신이 있었던 우리 정서에 비춰보면 법적 분쟁은 부정적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 신참 변호사는 "이제 '법 없이도 살 사람'이 피해를 보는 세상, '법대로 해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구사회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개인의 권리가 강조되는 사회가 돼가고 있다"며 "이제 법적 마인드를 갖추지 못하고 있거나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지 못할 경우 손해를 보는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프레시안

'사법불신'이라….


두 사람 말 모두 맞다. 좁은 의미에서 '법'하면 떠오르는 것은 죄를 지은 사람이거나, 뭔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니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 법원 근처에 갈 일을 만들지 않고 사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제 대통령의 명운도 판사가 결정하고,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도 법원에서 결정되는 마당이니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법불신'이 중대한 사회문제일 수 있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이기도 하다.

사법부도 최근 이 '사법불신'으로 많은 고심을 하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재판부 판사 111명이 모여 '구술심리 강화를 위한 민사재판장 워크숍'을 열고 '국민 눈 높이에서 재판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프레시안>은 그동안 4회에 걸쳐 '사법불신'의 원인과 해법을 다각도로 조명해봤다.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사법부의 사회적 비중과 관심도가 높아진 점(☞사법부, 한국사회의 중심에 서다), 아직까지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한 제도가 미비한 점(☞사법부의 아킬레스건, '선출되지 않은 권력'), 과거 독재정권 시절 '권력의 시녀'라는 오욕의 역사를 아직 털어내지 못한 점(☞ "사법부,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찾아 가라"), 일반 시민에게는 법원-변호사-검찰 법조3륜의 문턱이 높은 점(☞'하얀거탑 소송'이 당신에게 일어난다면) 등을 짚어봤다.

이밖에도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법원의 온정주의', '법조인의 강고한 엘리트의식' 등 많은 사법불신의 원인이 있지만, 사법개혁이 더디기 때문에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사법개혁은 김영삼 정권 이후 시도돼 왔다. 그 중 가장 본격적인 것이 김대중 정권 시절, 최종영 전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 만들어진 사법개혁안이다. 당시 사법제도개혁위원회는 배심·참심제 도입, 공판중심주의 심리강화, 로스쿨 도입 등에 대한 사법개혁안을 만들었고,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2005년 정부 입법안으로 국회에 사법개혁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입법처리는커녕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로스쿨과 사학법 '거래'하겠다는 수준의 우리 국회

사법개혁안 처리 지연에 대해 모 국회의원은 "의원들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이미 사법부 내에서 합의를 거쳤고, 정부차원의 위원회까지 꾸려 추진한 개혁안에 대해 국회의원들의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점은 '직무유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법개혁안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로스쿨과 사학법 재개정을 두고 '거래'를 하려는 발상을 갖고 있는 우리 정치의 수준을 보면 암담한 심정"이라며 "올해 대선이고, 17대 의원 임기가 내년 봄에 끝나는데 현재 상정된 사법개혁안은 그대로 파기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푸념했다.

지금 국회에 제출된 사법개혁안이 사법부의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이 아닌 것만은 사실이다. 로스쿨법만 해도 저소득층의 로스쿨 진학 지원 방안을 내놓아야 하고, 로스쿨 정원을 산정하기 위한 적정 변호사 수에 대한 논란도 끝나지 않았다. 공판중심주의와 배심·참심제도에 관한 법률도 이 제도 도입 단계 수준의 법안일 뿐 막상 실시하고 나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갈 길이 먼데 국회는 '사법개혁'이라는 멍석을 다시 말아버린 셈이다.

이 멍석을 누가 다시 깔 것인가. 몇몇 시민단체들이 끊임없이 국회에 재촉하고 있지만 현재 정치상황을 봤을 때 국회의원들이 귀를 기울일지는 미지수다. "국회의원들도 석궁 맞아야 정신차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우스개 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존경받는 사법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법조계에는 "고법 부장 '승진'에 탈락한 판사가 옷을 벗으면 당사자는 울고 가족은 웃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름대로 '1등'을 밥 먹듯 하며 국내 최고 엘리트라고 자부하며 살았던 판사가 난생 처음 경쟁에서 밀려났을 때 패배감을 느끼고, 반면 가족들은 '이제 변호사 개업을 해 많은 돈을 벌겠다'고 기뻐한다는 조롱섞인 얘기다.

지난해 말 <법률신문>이 판사-검사-변호사 등 세 분야의 법조인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이 법조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이라고 답한 사람이 43%인데 반해 '호의적'이라고 답한 사람은 11%에 불과(보통: 44%, 무응답: 2%)했다. 그들 스스로도 '사법불신'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은 그렇게 자식들이 판·검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들에게는 권력과 명예가 있으며,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부(富)까지 따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권력과 명예, 부가 이들을 기득권 집단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다. '사법불신'이란 시민들이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민주사회에 이르러 비로소 사법부를 향해 "당신들이 지닌 이 기득권이 과연 정당하게 형성된 것인지, 이 기득권이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법부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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