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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도 알고 알아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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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도 알고 알아도 모른다?!"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7>언어 소통의 마술

어느 상담단체든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국가가 있다. 그렇게 찾아오는 특정 국가의 사람들을 많이 접촉하게 되면 그 국가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정서, 성격 등에 대해 자연히 잘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다 보면 이상하게 그 나라 언어에 대해서도 이해가 쉽게 된다. 묘한 것은 그 나라 언어를 익혀서 언어에 대한 이해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 2년 전부터 몽골 노동자들이 우리 단체를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몽골 노동자들이 가장 다수가 되었다. 몽골 노동자들을 계속 만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몽골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알아듣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11월말 경, 평소 친하게 지내면서 신뢰를 쌓아 온 몽골노동자들과 숙박교육 프로그램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참석한 몽골노동자들은 열심히 메모도 하고, 질문도 하고, 때로는 몽골어로 즉석토론도 하고…. 열띤 분위기였다. 나도 그 분위기에 고무되어서 열강을 하고 있는 중인데, 앞자리에 앉은 몽골청년이 몽골인 통역자에게 뭐라고 얘기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몽골인 통역자와 내가 거의 동시에 그 청년에게 건네준 것은 백지였다. 그 친구는 메모할 백지를 달라고 한 것이었다. 백지를 건네받은 몽골청년은 놀라워했고, 몽골인 통역자는 '선생님, 몽골말 알아듣나 봐요'라고 찬탄했고, 통역자 옆에 있던 또 다른 몽골인은 '말조심해야 돼'라고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그 외에도 그들이 웃을 때면 나도 따라 웃는다든지, 몽골인들과 회의를 할 때라든지, 몽골에 출장을 갔다 온 나를 보고 'X%&*@?'라고 말하는 몽골인에게 '잘 다녀왔다고 몽골어로 통역해주세요'라고 답변한다든지, 상담 중에 통역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의사소통이 돼버리는 때가 있다든지 한다.
  
  그런데 사실은? 나는 몽골어를 전혀 모른다. 다만 특정한 상황에서 총체적으로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든가 나를 신뢰하는 몽골인과는 그 의사소통이 더욱 원활해진다. 나를 불신하거나 의심하는 사람과 마주할 때에는 마치 벽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면서 나는 통역이 없으면 한 마디도 소통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
  
  상담 때문에 접촉하는 회사에서 자주 듣는 말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어 구사능력과 관계된 말이다.
  
  상담을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이주노동자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주노동자가 솔직하게-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일지라도-상황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 그런 분위기에서 상담하면서 내가 가늠해보는 한국어 구사능력이 그의 진짜 한국어 구사능력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한국어 실력은 의사소통 불능에 가까운 이주노동자라 해도 회사의 평가는 다른 경우가 많다.
  
  '걔는 다 알아 듣는다. 그렇게 알아듣긴 하는데, 자기한테 불리한 말만 하면 모른다고 한다. 아주 나쁘다.'
  
  거기에다 대고 '제가 얘기해보니까 의사소통 거의 안 되던데요'라고 반론이라도 할라 치면 '그런 척 하는 것뿐이에요'라는 확신에 찬 한 마디에 뭉개져 버린다.
  
  '그런 얘기를 회사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더니 거기 가서 그 얘기를 하느냐. 뭔가 떳떳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 아니냐.'
  
  거기에 '한국어도 잘 안되고 말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아니겠어요'라는 변명 역시 '우리가 얼마나 잘해주는데…'라는 말에 본전도 못 찾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원인제공을 누가 했는지 등의 문제는 일단 뒷전으로 밀린다. 중요한 것은 회사는 '왜 우리와 소통하지 않느냐'고 분개하고 그 배경에 대해 의심하는 상황이니, 이주노동자로서는 그 갈등을 풀 능력이 없다.
  
  어떤 때는 잘 알아듣고 어떤 때는 못 알아듣기도 하는 그 마술 같기도 하고 장난 같기도 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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