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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키스 안 해주면 신고한다고?"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6>남녀 가리지 않는 성폭력

성폭력은 사회적 권력관계의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이 말이 실감이 난다. 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다 보면 성희롱이나 성추행, 강간이나 강간미수에 대한 상담이 은근히 많이 있다. 피해자는 주로 여성 이주노동자들이고, 가해자는 주로 한국인 남성노동자들이지만, 때때로 피해자가 남성 이주노동자인 경우도 있고 가해자가 남성 이주노동자인 경우도 있다.

30대 중반의 몽골 여성 두 명이 나를 찾아왔다. 경기도에 있는 모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회사를 옮기고 싶다는 것이다. 계약기간이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었는데 회사를 옮기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아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이 애매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욕설을 자주 하고 험악하다고만 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는 고용허가제도에서 가능한 사업장변경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이것저것 캐묻던 중 현장에 이주여성노동자가 다수이고 한국인 남성관리자가 소수라는 점에 생각이 미쳐 '혹시 성적 희롱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두 여성이 반색을 하면서 '많이 있어요'라는 것이다. 두 몽골여성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한국인 중간관리자의 성추행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그 사업장에서는 성추행이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성추행은 그 사업장의 중간관리자인 반장이 자주 저지른다고 했다. 팔뚝이나 어깨를 만진다거나 등을 어루만진다든지 하는데, 싫다는 표시를 해도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 사업장에는 몽골여성만이 아니라 다른 국적 출신 여성노동자들도 있었고, 한국인 여성노동자도 있었는데, 반장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여성들에게 성희롱적 말과 성추행을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성추행 사실을 전해 들으면서 '아니 세상에…' '어쩌면…'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왔고, 내 속은 분개한 마음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는 그런 사실이 있다면 사업주 동의가 없어도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사업주에게 강력하게 항의해서 시정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해줬다.

두 몽골여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는데, 마지막에 두 여성이 보인 반응을 보고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는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성추행 사실에 분개했지만, 두 여성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가해자를 아예 인간 취급 조차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에 온 뒤 자기네 나라에서는 듣도 보도 못했던 각종 모욕, 심지어 성추행까지 몸으로 겪어내면서 자기들을 관리하는 한국인들을 아예 '인간'으로 보기를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 피해자를 또 한 번 보았다.

24세의 '아기'라는 이름의 몽골청년이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다는 상담을 하러 왔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는데 왜 사업장을 옮기려고 하는가를 물었다. 주저주저하는 기색으로 아기는 중얼중얼 얘기했는데, 그 얘기를 듣던 몽골인 통역자가 갑자기 '어머나' 하더니 막 웃어댔다. 통역을 통해 들은 아기의 애로사항은 이랬다.

아기가 일하는 사업장에는 아기 외에 몽골인이 두 사람 더 있었고, 방글라데시 사람도 있었다. 회사에서 기숙사를 제공해줘서 아기와 두 명의 몽골인이 방 하나를 쓰고, 방글라데시 사람과 한국인이 방 하나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한국인이었다.

나이 40이 넘은 이 한국인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숙사에서 기거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그렇게 '밝힌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밝히는 상대'는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그 한국인은 몽골인들이 쓰는 방에 와서 밤이 늦도록 돌아가지 않으면서 자꾸 거기를 만져보자고 하거나 다리를 쓰다듬고, 아기가 '하지 말라'거나 '방에서 나가라'고 하면 '아버지 같은데 뭐가 어떠냐'면서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한국인이 방에 올 때면 아기는 아예 손으로 그곳을 가리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기에게만 그러냐'고 물었더니, 방글라데시 사람에게는 일하는 중에도 뒤에서 다가가 껴안거나 젖꼭지를 만진다는 것이다. 그런 행동에 대해서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뭐라고 말을 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성추행 피해사실을 털어놓는 아기의 표정에는 창피하고 가해자를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뺨에 여드름이 나 있어 어린 티가 역력한 아기의 얼굴을 나는 멀거니 바라보았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성추행에 대해서는 실태조사도 어느 정도 되어 있고, 사례들도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사례를 보면서 나는 '남성들이 겪는 피해사례도 꽤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성폭력은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정작 그 피해자를 마주하고 보니까 기분이 묘해지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여성 피해자들일 경우에는 분개하기라도 했는데….

두 몽골여성의 희망사항은 전화 한 통화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그 사람의 성추행 사실을 알고 있었고, 문제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회사를 옮기기가 쉬웠다.

그런데 두 번째 성추행 사건은 시간이 좀 걸렸다. 회사에서 처음에는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 회사도 이미 그 한국인에 의해 성추행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반응이 달랐다. 회사 상급자가 '아버지 나이 뻘인데 아들 같아서 그랬기로서니 그걸 가지고…' 운운하길래 '당신 같으면 당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거길 만지면 아들 같이 생각하니까 그런다고 생각하겠느냐'는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아기도 무난히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고용허가제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고용허가제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예전의 미등록노동자가 90%를 차지하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서 합법적 지위라는 것이 인권보호에 얼마나 결정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성추행 사례를 보면서 느낀다.

예전에 어떤 버마인 노동자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는 미등록노동자였는데 아버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17세에 한국에 왔다. 이 친구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하던 회사의 공장장에게는 초등학교 6학년생 딸이 있었다. 그런데 이 딸이 어느 날 이 친구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키스해 주지 않으면 (불법체류자로) 신고하겠다'는 것이었다.

고작 6학년인 어린아이가 키스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지만 요구를 거절하면 신고하겠다고 한 것은 더욱 믿어지지 않아 나는 '정말이야'를 연거푸 물었고, '그게… 뺨에 뽀뽀해달라는 뜻 아니었어'라는 한심한 추가질문을 던졌다. 그 기막힌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아니었어요'라는 대답을 듣고 나는 그 친구가 어떻게 그 상황에 대처했는지는 묻지 못했다. 물을 용기가 없어서였다.

만약 위의 몽골인 사례에서 그들이 모두 미등록노동자였으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인들은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생에게 '미등록노동자는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신고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학습될 정도니 어른들이야 오죽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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