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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지'의 망령에 구애받을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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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 구애받을 필요 없어"

[인터뷰]조희연 "진보분석이 환원론에 빠져선 곤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의 주장은 반신자유주의, 반신보수주의 투쟁의 풍부화와 대중화를 위한 이론적-실천적 견인과 적극적 개입으로 요약된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중도자유주의 세력까지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동심원 안으로 묶어내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이 이같은 전략전술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4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진보적 분석이 단순한 계급이나 신자유주의 환원론에 빠지면서 현실의 복합성을 풍부하게 담아내는 방향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최근 '진보논쟁'에서 대립선을 긋고 있는 최장집, 손호철 교수에 대한 비판과 맥이 닿아 있다.

그는 최 교수의 노무현 정부 비판과 관련해선 "참여정부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가는 병목지점을 돌파하지 못한 이유를 통치주체의 문제로만 환원해선 교훈이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조 교수는 "대중이 급진화 될 때 사회경제적 의제가 제도정치로 흡수되는 제도정치의 정상화도 가능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교수는 또한 손 교수의 민주전선-신자유주의 전선론에 대해서도 "반수구전선과 반신자유주의 전선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수구적 보수세력과 중도적 보수세력은 계급적 한계 속에서도 정치적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조 교수는 "최장집 선생의 민주주의 분석의 풍부함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현실적 비판이라는 정서적, 규범적 차원으로 가면 조금 단순해지는 느낌이 있고 손 선생의 풍부한 국가론적 분석도 참여정부 분석이나 국민의 정부 분석에서는 풍부성이 사라진다는 느낌"이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연합정부 가능하다면 최상의 시나리오"
▲ 조희연 교수(좌)와 최장집 교수(우)ⓒ프레시안

이같은 이론적 논쟁은 이번 대선에서 구체적으로 진보진영이 어떤 대응법을 구사해야 하느냐는 문제에서 보다 첨예하게 갈렸다.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신개발주의 세력의 집권 저지에는 여전히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주장.

제도정치의 원론적 의미에서나마 "이젠 한나라당이라고 집권해선 안 된다는 것은 없다"는 최 교수의 주장이나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는 한이 있어도 신자유주의 전선을 명확히 하고 싸워야 한다"는 손 교수의 주장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만 지지하면 신자유주의 극복이 가능하다고 봐선 안 된다"며 "신보수주의 세력이 헤게모니 세력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진보세력은 어떻게 복합적 실천을 통해 자기 기반을 강화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과거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며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의 연합정부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을 통한 전열 재정비 및 단일대오 구성"과 "중도자유주의 세력의 자기혁신 성공"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었다.

요컨대 "사분오열된 중도자유주의 세력이 자기혁신에 성공하고 민노당이 300만 표를 얻을 정도로 상승해 이 표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고 대선의 성패를 좌우하는 정도가 돼서 연합정부가 가능하다면 이것은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이는 손호철 교수가 "국가에 대한 부분적 장악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구주의적 좌파이론"이라고 비판한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조 교수가 연합정부의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면서 선거 막판에 고려할 수 있는 전술적 차원이라고 설명했고, "진보세력의 독자성을 훼손하는 형태의 연합은 나 역시 반대한다"고 했으나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어 온 진보진영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조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선진화 담론으로 무장한 신보수주의 등장의 위협"에서 비롯됐다. 그는 특히 "신보수주의 정권의 등장은 중도자유주의 세력만의 패배로 볼 수 없다"며 "(신보수주의 정권이 유연한 통치를 할 경우) 헤게모니가 오래 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조 교수가 "중도 자유주의 세력이나 진보세력이 지더라도 한나라당이 겨우 신승하는 정도의 상황까지는 만들어야 그 이후 진보진영의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고 한 대목에선 적지 않은 절박감도 느껴졌다.

조 교수는 이어 진보논쟁의 추가적인 논쟁 지점으로 △미디어 보수세력에 대한 진보적 대응전략 △중앙정치의 민주화에 머무른 민주화 20년에 대한 상황 규정과 진보적 대응 △개방과 성장의 문제에 대한 진보의 응전 △양극화를 포함한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결과에 대한 패키지 대안 마련 등을 제시했다. 이는 그가 진보진영이 넘어야 할 과제로 꼽은 풍부한 실천 전략마련과도 맥이 같았다.

다음은 조희연 교수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진보적 분석과 실천의 풍부화-복합화가 관건"

프레시안 : 최장집 교수가 강조하는 제도정치의 차원만으로는 진보의 위기가 풍부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게 조 교수 논지의 출발인 것 같다.

조희연 : 최장집 선생이나 손호철 선생에게선 많은 것을 배운다. 최 선생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치적 민주주의의 해결에만 고착돼 버리고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도전에 좌절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민주주의로 가고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다만 몇 가지 부분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우선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한 해결책이 왜 정치적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제기되는지 의문이다. 최 선생의 언어로 얘기하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에 나의 문제의식이 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가는 병목지점을 왜 돌파하지 못했는지를 나는 복합적 요인을 지적한다. 여기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구조적 제약효과, 신자유주의를 국내적 신보수화의 동력으로 강화하고자 하는 보수적 신자유주의 세력 등의 요인과 함께 이런 환경이나 구조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주체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나 386 정치세력 일반이 구조와 환경에 응전하지 못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통치주체의 문제로만 환원해서는 교훈이 없다. 이 말은 참여정부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 착목하지 못한 주체의 성찰적 전환을 어떻게 도모할 것이냐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대중이 급진화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 보수세력과 중도자유주의적 정치세력을 강력하게 위협하는 진보세력의 위협적 성장 위에서 비로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이고, 나아가 사회경제적 의제를 제도정치로 흡수하는 제도정치의 정상화도 가능할 것이다. 그 점이 우리의 돌파지점이다.

프레시안 : 그 점에선 진보세력에게는 운동정치가 오히려 부족했다는 손호철 교수의 진단과 비슷한 것 같다.

조희연 : 최 선생이 얘기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정상화란 결국 보수적 정치세력과 중도자유주의적 정치세력의 비적대적 공존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러한 비적대적 공존이 가능하려면 더 큰 적이 있어야 한다. 급진적, 진보적 사회운동의 위협 위에서 보수적 정치세력과 중도자유주의적 정치세력 사이에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타협이 가능하다.

90년대는 독재의 유산을 척결하는 민주개혁의 과제가 지배적이었지만,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민주주의 대 자본주의의 전쟁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자본주의가 압도하는 상황으로 넘어갔다. 진보진영은 민주주의를 급진적으로 강화해서 시장과 기업의 공적규율을 달성하고자 하는 반면 자본주의 진영은 민중이 정립한 민주주의를 자본주의의 형식적 외피로 존재하도록 하려고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형식화냐,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이냐는 양면이 있다.

그 점에선 최 선생이 얘기한 대로 민주정부 하에서도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공적 규율을 달성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전락해갔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간에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 87년 6월항쟁이라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 속에는 새로운 도전으로서의 신자유주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없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지구화, 개방이라는 도전 속에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주요 행위자들이 무력하게 몰락해간 것이다.

문제는 반신자유주의와 친신자유주의 대립에서 어떻게 하면 과거의 반독재 민주주의, 민주개혁의 전선에서 진보적 부분에 섰던 동력을 가능하면 광범위하게 끌어안고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풍부화, 대중화로 이어갈 것이냐는 과제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진단은 비슷하지만 이제 민주-반민주, 독재-반독재의 구분법이 효용성을 상실했고, 신자유주의 전선에서 피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현 시기의 주안점이라는 지적도 많다.

조희연 : 손호철 선생이 말씀하는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중심성에 동의한다. 다만 반신자유주의 중심성과 반신자유주의 환원론은 다를 수 있다. 손 선생이 환원론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반신자유주의의 중심성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현실의 복합성을 끌어안고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대중화를 달성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반수구전선과 반신자유주의 전선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수구세력의 많은 부분이 친신자유주의 세력이다. 반개혁세력이자 수구세력이던 조선일보는 이미 신자유주의의 계급지로 변하고 있다. 이 지점에선 안티조선의 동력을 반신자유주의 동력으로 끌어가야 한다.

새롭게 출현한 신계급 사회라는 현실을 봐야 한다. 민주정부와 시민운동을 통해 민주성과 투명성이 높아졌지만 계급적으로 양극화된, 민주적이고 투명한 신계급사회의 출현이다. 신계급 사회 출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동참하는 과정에는 중도자유주의 세력의 성찰적 자기혁신도 수반돼야 한다.

인식틀에서 보면 두 가지가 가능하다. 중도세력을 수구적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적 보수세력으로 보고 이들을 진보세력과 나누는 관점이 있다. 나는 보수와 진보, 중도세력이 존재하는 3정립론으로 본다. 이렇게 보면서 중도세력의 이중성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도세력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있어선 일정한 진보성이 있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선 동요하는 점이 있다. 따라서 진보세력은 위협과 타격을 통해 중도세력이 진보화하도록 촉진해야 한다.

수구적 보수세력과 중도자유주의적 보수세력의 동일성과 차별성을 봐야 한다는 얘기다. 공통적인 계급적 한계 속에서도 현실적으로 정치적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중도자유주의 세력은 민중투쟁이 촉진한 반독재민주세력을 통해 성장한 세력이기 때문에 그렇다.

진보적 분석의 풍부화와 복합화가 필요하다. 한국의 진보적 분석이 좀 단순한 환원론에 빠지면서 현실의 복합성을 풍부하게 담아내는 방향으로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전두환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모든 정부는 계급적 본질불변의 관점에서도 파악되지만, 지배의 변형과 혁신이라는 또 다른 부분도 있다.

결과적으로 보수와 진보, 신자유주의와 반신자유주의, 공공성과 시장성, 개혁과 반개혁은 특정한 역사적 공간 속에서 나타나는 상대적 기준이다. 그 경계는 부단히 변화한다. 반신자유주의의 입장에 서면서도 신자유주의 환원론, 파시즘 환원론으로 경도돼선 안 된다. 진보의 분석이 풍부하지 않으면 보수와의 갈등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보수가 진보를 비판하는 지점을 어떻게 진보 분석의 틀 속에 융해해서 확장된 진보분석을 만들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 선생의 민주주의 분석의 풍부함이 노무현 정부에 대한 현실적 비판이라는 정서적, 규범적 차원으로 가면 조금 단순해지는 느낌이 있다. 손 선생의 풍부한 국가론적 분석도 참여정부 분석이나 국민의 정부 분석에서는 풍부성이 사라진다는 느낌이다. 그 풍부함을 한국의 현실 민주주의와 현실 국가에 풍부하게 적용해줬으면 좋겠다.

"비판적 지지의 시대는 지났다"

프레시안 : 진보적 분석의 풍부화와 함께 진보적 실천의 풍부화, 복합화를 강조하는데, 과연 조 교수의 분석은 실천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 현실적인 얘기가 수반돼야 할 것 같다.

조희연 : 진보적 실천의 풍부화와 복합화도 중요하다. 올해 대선국면에 대입해 볼 때 민노당이 원내 제3당으로 정립된 지금의 시대는 비판적 지지의 시대를 지났다고 본다. 과거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 너무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도자유주의 세력이 핵분열 하는 반면 신보수주의 세력은 헤게모니 세력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진보세력은 어떻게 복합적 실천을 통해 자기 기반을 강화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 대선에서 단순히 민노당만 지지하면 신자유주의 극복이 가능하다고 봐선 안 된다. 민노당 외부에 있는 다양한 대중적 동력과 정치사회적 동력을 급진화하면서 민노당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노당 역시 헤게모니 정치와 진보적 민중주의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진보적 민중주의란 대중들이 삶의 고통에서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을 슬로건화 하고 정책화하는 것이다. 대중의 급진적 분노를 촉발하는 정책적 의제를 많이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적 헤게모니 전략은 다소 불철저한 세력에 대해서도 헤게모니적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적 선악구분을 넘어서서 중간지대 대중들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정치적 동력을 획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중도자유주의 세력을 어떻게 볼 것이냐부터 이런 논점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현실 역관계를 봐도 결국은 다시 비판적 지지의 함정으로 빠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걱정이 많다.

조희연 : 비판적 지지는 진보세력이 제도정치 영역에서 독자적으로 정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대리반영론이다. 자기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에 사회세력이 자기와 비교적 친화적인 세력을 자기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우회로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2004년을 거치며 진보정당이 일정하게 제도정치권에 진입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비판적 지지의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취약하나마 자기 정립한 진보정치세력이 보수정치세력과 중도자유주의 세력의 복합적 상호작용 속에 급진적으로 개입하면서 자기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이냐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의 연합정부론에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진보진영과 일반 대중들 중에서도 이질감을 느낄 만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조희연 : 연합정부가 가능하다면 행복하겠다. 최상의 시나리오다. 민노당은 지난 대선에서 98만 표를 얻었다. 이번에는 300만 표로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 유권자를 2500만이라고 치면 2200만의 향방에 대해 민노당도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본다. 300만 표를 얻을 수 있으면 나머지 1900만 표가 한나라당에 가는 상황을 방치해도 되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는 최소치와 최대치가 있다. 사분오열된 중도자유주의 세력이 자기정립도 못하고 혼비백산해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가 되는 상황이 최소치다. 최고의 상황도 생각해보자. 중도자유주의 세력이 자기혁신에 성공하고 민노당이 300만 표로 상승해 이 표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고 대선의 성패를 좌우하는 정도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가능성은 대단히 적다.

손 교수 얘기대로 진보정치세력의 독자성을 훼손하는 형태의 연합은 나 역시 반대한다. 그러나 비판적 지지는 정치세력과 사회세력의 관계의 문제다. 정치세력과 정치세력 간의 관계에선 비판적 지지가 있을 수 없다. 연합정부라는 것은 두 정치세력 간의 연합이라는 다른 컨텍스트다.

진보정치세력의 강화라는 것은 전략적 과제다. 연합은 전술적 과제다. 전술은 얼마든지 열어놔도 된다. 물론 지금 당장 민노당에서 진보대연합을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지금은 각자의 정치세력이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고 성찰적 자기혁신을 통해 자기표를 획득하기 위해 각개 약진하는 시기라고 본다. 중도자유주의세력도 단일대오를 만드는 과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을 통한 전열재정비는 필요하다. 연합의 문제는 막판에 해도 된다.

프레시안 : 신자유주의 전선의 중심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동시에 전술적으로는 열려 있다고 하는 부분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요컨대 연합정부가 된다고 했을 때 최소강령은 적어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이 돼야 하지 않을까. 진보진영의 견인이라는 대목을 중시한다면 중도자유주의 세력이 현재의 지점에서 이탈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부분이 담보되지 않으면 연합정부를 구성한 후에 오히려 진보세력이 포섭돼 버리는, 더욱 큰 위기가 오지 않을까 싶다.

조희연 : 지난 얘기지만 나는 참여정부가 소연정을 했어야 했다고 본다. 만일 민주당 잔류세력을 흡수하고 민노당과 소연정의 형태가 됐다면 정치적 갈등구조가 지금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신자유주의가 연합의 공동강령일 것이냐,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구체적 정책의 문제로 갈 수밖에 없다. 반신자유주의를 말로만 한다면 중도자유주의세력이 그런 말을 못할 게 뭐 있나. 반신자유주의를 정책수준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현재로선 한미 FTA 문제가 아니면 반신자유주의냐 친신자유주의냐를 결정적으로 가르는 정책적 쟁점이 없다. 하지만 만약 한미 FTA가 상반기에 타결된다면 그 이후에는 FTA를 폐지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한미 FTA 반대는 지금은 중요한 최소강령이 될 수 있지만 그때 가면 지나간 의제가 돼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공백을 나는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미 FTA 개방 하에서 어떻게 공공성을 획득할 것이냐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다만 손호철 선생의 지적대로 과거 잘못된 연합은 진보세력의 정치적 성장보다는 중도세력의 정치적 성과로 귀결되기도 했다. 이는 우리가 전략적으로 공유할 지점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연합정부론을 주장하면서도 그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조희연 : 핵분열된 열린우리당 의원들 가운데 20명 정도만 민노당이 영입할 수 있으면 이런 논쟁이 필요 없다. 중도자유주의 세력의 위기 상황이 진보정치세력의 충분한 성장 이전에 왔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진보세력은 주체역량의 한계를 안고 있다. 또한 중도 자유주의 세력의 한계는 사회운동의 한계이기도 하고 한국사회 대중적 의식의 지형을 반영하기도 한다.

물론 민노당은 계급적 프로젝트와 국민적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 자기 지지대중에 호소하는 전략을 쓸 것이냐, 중간층에 호소하는 전략을 쓸 것이냐다. 두 가지는 긴장이 있다. 지금 어정쩡하게 진보적 중간층 호소전략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노동자 대중의 급진화, 전략적 지지층들인 비정규 노동자, 농민 등을 획득하는 문제가 관건이다. 급진적 의제화 전략, 즉 대중들의 계급적 정치적 사회적 의식을 고양하면서 대중과 결합하는 전략을 통해 중도자유주의세력의 급진화도 촉진하는 전략으로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민노당은 대중들이 볼 때는 집권가능한 정당이 아니다. 민노당의 의제를 판단할 때 본인들이 당면한 중장기적 해결의 방향성을 담고 있느냐로 바라보지 실현가능성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섣부른 실현가능한 정책구사보다는 급진적 의제화 전략, 의제의 지평 자체를 확장하는 전략 등을 통해 자신의 지지대중과 결합하는 것이 현재로선 300만 표로 가는 첩경이 아닐까 싶다.

프레시안 : 정치권에서 말하는 반한나라당 전선에는 일반적으로 민노당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조 교수의 지적과 차이는 있지만, 반수구전선이라는 테제가 얼마나 위력적일 수 있을지도 판단해봐야 할 듯하다.

조희연 : 반한나라당 전선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반신보수주의 전선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것은 신개발주의 담론으로 무장한 신보수주의적 대안과 비전에 대응하는 대중적 대항비전, 담론을 개발하느냐의 문제다.

한나라당이 우리의 삶을 개선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참여정부에 표를 몰아줬는데 참담한 실패를 한 상황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은 안 통한다. 한나라당이 표상하는 신보수주의의 비전에 대응하는 새로운 비전을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대선은 이와 함께 현실정치 공학이 작동하기 때문에 인물, 이해관계 등 복잡한 변수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참여정부의 실패가 개혁세력과 진보세력 일반의 엄혹한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안 비전을 형성하는 것만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 현실적 신뢰를 얻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혁신된 중도세력은 참여정부와의 가혹한 단절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중도개혁세력 일부에서도 가혹한 단절을 이야기하면서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세력이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의 책임을 공유한 주체들이 핵분열의 행위로 스스로를 단절시킬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또한 핵분열 한 이후 다수의 모습은 진보 쪽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향해 있다.

조희연 : 중도세력으로만 한정해보면 핵분열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여기서 헤게모니 집단의 전환이 필요하다. 참여정부 실패를 상쇄하는 대안적 프로젝트를 담지하는 세력이 그 안에서 헤게모니를 가져가는 과정이 돼야 한다. 그런데 위기라고 발버둥을 치는데 정반대 방향으로 튀고 있다. 한나라당을 추수하는 방식을 통해 대중의 신뢰가 획득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연정론이 자기 지지기반을 균열시킨 것과 정확히 같다. 미래구상 같은 진보적 세력이 이를 선도해야 한다. 깃발은 밖에서 만들어진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으로 갈 사람들은 가도 된다고 본다.

"선진화 담론으로 무장한 신보수는 위협적"

프레시안 : 신개발주의, 신보수주의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진보진영의 학자로서 과거의 보수와 달리 새롭게 위협을 느끼는 내용과 이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조희연 : 현대사를 단순화해서 보면 50년대의 보수는 대안 없는 적대적 반공주의로 자기를 정당화했다. 그 후 군부시대의 지배세력은 개발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지배의 자기 혁신을 한 것이다. 한편에선 반공주의라는 폭력으로 위협하면서 개발주의라는 비전을 통해 대중들을 순치시키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70년대에는 김대중의 등장으로 상징되는 변화가 나타난다. 이는 김대중이 박정희를 뛰어넘는 일정한 진보적 상징성과 선도성, 미래비전을 획득해 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 정점에 87년 6월항쟁이 있는 것이다. 이는 독재를 개발주의로 정당화했던 세력이 시대정신을 상실한 것이고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세력의 승리였다.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그 후 20년 간 우리사회를 선도했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굴절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수준으로 왜소화 되고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확장되지 못했다.

여기서 포스트 민주화시대를 둘러싼 경쟁이 발생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둘러싼 경쟁이다. 현재는 신보수주의의 등장이 훨씬 위협적이라고 본다. 신보수세력은 선진화 담론으로 무장했다. 과거의 보수가 폭력적이고 천민적이었다면 약간의 인간적 얼굴을 결합한 공동체 자유주의나 온정적 자유주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신보수주의는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신개발주의적 담론으로 자기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수구적 요소들이 있음에도 신개발주의나 세계적 신자유주의에 부응하는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입장에선 과거의 개발주의 비전을 변형해 복원시키면 되는 유리함이 있다.

프레시안 : 손호철 선생은 냉전적 신자유주의 세력이 집권하면 신자유주의에 대해 민중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조희연 : 일리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폭력적인 신자유주의 세력의 집권 하에서 대중들의 급진화 공간이 넓어질 수도 있다. 시민운동도 훨씬 도덕적으로 편하고 자유로운 위치에 서게 된다.

하지만 민주세력이 한미 FTA 추진 같은 개방 찬성으로 돌았다고 해도 그 안에서도 사회경제 정책들을 일정하게 배합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비전 2030 같은 것이다. 일정한 사회정책들을 배합하려는 쪽과 훨씬 경쟁력 중심적인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취하는 세력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영국의 경우 80년에 등장한 신보주수의 정권이 97년까지 갔다. 한국의 민도는 영국보다 어떤 면에서는 높다고 보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10년 이상 집권하기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신보수주의 정권의 등장은 중도 자유주의 세력만의 패배로만 볼 수 없다. 신보수 세력의 등장이 반드시 대중의 급진화로 이어지지 않을 개연성도 있다.

즉 신보수당 정권은 폭력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보완할 수도 있다. 보수가 때로는 더 과감한 비정규직 축소 정책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신보수주의 헤게모니가 오래 갈 수도 있다. 그런 위험요소가 있기 때문에 중도 자유주의 세력이나 진보세력이 지더라도 한나라당이 겨우 신승하는 정도의 상황까지는 만들어야 그 이후 진보진영의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고 본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의 집권과 현재의 집권세력의 재집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회의하는 시각이 많다. 역으로 따지면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민주주의가 역진할 가능성은 많지 않고 냉전적인 인식도 상당히 수그러들 수 있는 것 아닐까.

조희연 : 한나라당이 집권해서 온정적 보수주의 정책을 취하고 일정한 사회정책을 배합하려는 것도 급진화된 대중들의 힘의 반영이라고 본다. 한나라당의 내재적 속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대중을 급진화시키는 것이 신보수주의가 폭력적 신자유주의로 가지 않고 적대적 남북대결 노선으로 가지 않도록 만드는 동력이라고 본다. 한나라당조차 진보적 정책을 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중이 신자유주의에 순응하면 무엇 하러 그런 정책을 취하나.

다만 87년 체제 하에서 한국 사회의 중앙정치의 민주화는 상당히 진척됐다. 하지만 지역정치의 민주주의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역토호는 여전히 강고하다. 기독교나 보수언론 등 민주개혁이 미치지 못한 곳도 의연히 있다. 사회적 수준에서의 민주주의의 관철, 과거 기득권 세력의 해체가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87년 6월항쟁에서 의제화 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생태주의, 환경주의 등이 그것이다. 그러다보니 지금 토건국가 모델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가정, 개인생활, 남녀관계, 동성애 문제 등 생활세계 차원에서의 민주주의가 확장되지 못했다. 이것들은 다 정치적 민주주의 범위 밖에 있다.

바라는 것은 민주정부가 연속되면서 이런 미완의 민주주의가 개척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개척은 새로운 공간에서 운동이 확산되면서 가능해진다. 다시 말하지만, 정권이란 운동이 만든 공간 위에서 통치를 하는 것이다.

"진보적 상상력을 구체적 정책 패키지로"

프레시안 : 신보수세력에 대항하는 진보세력의 대응 담론은 어떤 것이 가능할까?

조희연 : 진보세력은 참여정부의 실패로 인한 불리한 환경에서 박정희와는 다른 비전을 구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박정희 모델은 1차 개방근대화 모델이라고 본다면 한나라당이 얘기하는 것은 2차 개방근대화 모델이다. 중도 자유주의 세력의 일부가 이 개방근대화 모델을 일정하게 수용했다. 이것은 한미 FTA 추진에서 드러난다. 그러면서 개방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해 출현하는 양극화와 대중사회의 파괴를 정정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진보세력에게 지향은 일정하게 있다. 포스트 박정희 모델,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안적 사회국가모델이나 진보적 민중경제 등이다. 다만 어떤 정책적 패키지로 모델로 구현할 것이냐를 적절히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진보세력이 파죽지세로 밀리는 형국이 만들어졌다. 참여정부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편하게 노무현 정부와 참여정부에 돌을 던지고 '나는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위기의 타자화를 해선 안 된다. 대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대안은 가까이에 있다. 대중의 신뢰를 받는 국가운영의 모델로 어떻게 패키지화 하느냐의 문제다. 예를 들어 공공부문을 유지하면서도 혁신시켜야 한다. 낙하산 인사나 경영과 노동의 타협으로 빚어진 비효율의 문제 극복, 사회적 일자리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운동, 돌봄 노동 등 이런 것들을 어떻게 개방화시대에 부응하는 국가운영과 국민경제 운영의 패키지로 만들 것이냐는 문제다.

대안적 사회국가 모델과 관련해, 대중들에게 비전을 주는 진보담론의 개발이 중요하다. 핵심적으로는 선진화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선진화라는 담론을 인정하고 대항담론을 구축하는 것이다. 140만을 위한 선진화냐 1400만을 위한 선진화냐는 쟁점이 가능하다. 소수 가진자를 위한 선진화냐 다수 못가진 자를 위한 선진화냐라고 하는 대결 지점이다.

새로운 담론의 구축이라면 신자유주의 개방화 시대의 진보적 대중경제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담론은 반신자유주의고 내 방식으로 얘기하면 공공성 담론인데 이를 어떻게 대중적 언어로 만들 것이냐다. 사회투자국가 같은 중도혁신담론을 넘는 담론 개발도 필요하다. 거기에 진보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노 대통령의 가장 잘못된 인식 중의 하나는 개방을 통해서 양극화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신자유주의적 2차 개방근대화인데, 이것은 양극화 체제를 본질로 하고 있다. 삼성이 아무리 잘 나가도 그것의 고용효과나 파생효과는 제한돼 있다. 2차 개방근대화는 사회경제적 단절을 내포하게 된다. 그 격차를 정부의 공적기능을 통해 보완해줘야 한다.

프레시안 : 조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올해 대선을 거치며 한국 정치의 발전 경로는 향후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조희연 : 나에게 한국정치의 발전경로를 상상해보라고 한다면 미국식 정당구조와 유럽식 정당구조 양쪽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국 민주주의가 성장한다면 중도 자유주의가 분화해서 유럽처럼 보수와 진보로 구축되는 것이다. 미국식은 진보세력이 위력적인 제3정당이 되지 못하고 자유주의 보수정당의 양당구조 속에서 주변화 되는 것이다.

나는 한국이 미국식 양당구조를 넘어설 정도의 민도 수준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유럽적 수준까지는 못가는 중간단계다. 보수, 중도, 진보의 경쟁에 따라서, 남북대결구도의 전환 등의 변수에 따라서 향방이 정해질 것이라고 본다. 유럽식 질서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 진보 논쟁을 이끌어 오면서 부족한 부분이나 앞으로 논쟁의 발전 지점이 될 수 있을 만한 포인트를 지적해달라.

조희연 : 반신자유주의 문제라고 했을 때 앞으로의 논쟁은 어떤 정책적 내용으로 구체화될 수 있느냐로 갔으면 좋겠다. 실사구시적인 입장에서 섣부른 환원주의나 본질주의로 경도되지 않고, 계급적 시각, 반신자유주의적 인식을 가지면서도 계급 환원론으로 흐르지 않으면 복합성과 섬세한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기존의 논쟁 속에서 우리가 천착해야 할 쟁점들은 최장집, 손호철 교수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참여정부 측의 반론까지를 포함하여, 진보적 실천의 풍부화를 위해서 여러 가지 쟁점에서 심도 있는 추가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미디어 보수세력 혹은 언론권력의 문제다. 그것의 작동과 성격을 어떻게 보고 이를 진보적 관점에서 대응전략을 구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둘째는 보수의 거대한 사회적 저항이 현존하고 참여정부의 실패에 촉진되어 활성화되고 있는 이 상황, 그리고 민주화 20년이 중앙정치의 민주화에만 머무르고 풀뿌리 수준에서 거대한 보수의 힘이 상존하는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고 진보적으로 대응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셋째는 개방과 성장의 문제를 진보가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개방화시대의 진보가 어떤 풍부한 실천을 해야 하는가. 내가 거시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급진적 원리를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하자고 하는 '글로벌 민주주의론'을 제기한 바 있지만, 중단기적으로 자립경제론적 발상으로 존립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진보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넷째는 참여정부의 실패지점을 넘어서기 위해서도 양극화 문제를 포함하여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파괴적 결과에 대해서 어떤 패키지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진보와 비진보를 구분하는 차원이나 각 입장의 계급적 본질규정의 문제로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어서, 각각 다른 입장에서 신보수주의적 대안에 응전력을 갖는 좌파적 대안, 급진진보적 대안, 혁신된 중도자유주의적 대안 등등을 안출하고 대중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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