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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진보의 가치에 질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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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盧대통령, 진보의 가치에 질투하나"

[인터뷰] 손호철 "진보진영 또 '비판적 지지'로 갈 텐가"

최근의 이른바 '진보 논쟁'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27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를 '상대적인 차이' 정도로 이해한다면 나는 물론이고 최장집 선생이나 조희연 선생이 모두 좌측에 치우친 극단세력으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노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진보논쟁의) 글을 쓰신 분들이 진보를 표방할 만한 균형점 위에 서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한 데 대해 이같이 반박했다.

노 대통령을 "개혁적 보수"로 규정한 손 교수는 "개념의 혼란과 함께 진보라는 가치에 대한 질투가 있는 것 같다. 남에게 빼앗기면 안 된다는 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온당하지 않다"고 쏘아붙였다.

손 교수는 또한 "노 대통령과 학계 사이에서 오간 말들은 진보진영 내의 논쟁이 아니라 진보진영과 신자유주의 세력 간의 논쟁일 따름"이라며 '진보 논쟁'의 영역에서 노 대통령을 배제하기도 했다.

손 교수는 이어 "우리 사회에선 진보라는 개념이 좋은 개념으로 여겨져서 그것을 독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왜 한국의 보수 세력은 떳떳하게 보수라고 말하지 않고 진보라고 주장하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도 비판했다.

"범여권 일부와의 연합정부 구성은 도구주의적 좌파이론"
▲ ⓒ프레시안

진보진영 학계 내부의 논쟁과 관련한 손 교수의 논지는 간명했다.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신자유주의 전선을 명확히 하고 싸워야 한다"는 것.

그는 자유주의 개혁세력인 범여권의 일부 정파와의 연대 노력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반(反)수구를 위한 '비판적 지지'가 아니라 이들을 신자유주의로부터 이탈토록 하는 '타격'과 '견인'에 방점이 찍혔다.

그는 "내가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강조하고 반수구 전선은 이차적 전선이라고 하는 것은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자유주의 정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진보진영이 가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취지"라고 부연했다.

손 교수는 이어 "민주-반민주 구도에선 한반도 문제와 남북문제를 둘러싼 현안이 중요한 문제로 있지만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그 문제에 대해선 한나라당이 말하는 극우적 레토릭 때문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또한 "한나라당의 집권은 진보진영의 패배라는 조희연 선생의 이야기는 맞지만, 열린우리당의 승리를 진보진영의 승리로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보진영이 마지막 순간에 반수구를 위해 신자유주의 전선을 포기한다면 그 전까지의 모든 논쟁들은 레토릭이 된다"고 단속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조희연 교수가 민노당과 범여권 좌파세력과의 정책적 연합 구성을 거론한 것과 관련해 "장관 몇 개를 나눠먹는, 국가에 대한 부분적 장악론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은 도구주의적 좌파이론"이라고 비판했다.

손 교수는 다만 "시민사회 수준에서는 진보와 개혁이 같이 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열어뒀다. 그는 한미 FTA 반대 세력 가운데 자유주의적 성격이 강한 시민단체가 결합해 있는 점 등을 예시하며 이같이 말했다.

진보진영의 분발도 당부했다. 손 교수는 "노 대통령은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켜 민주노동당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민노당의 비밀당원'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민노당은 과연 무얼 했느냐"고 질책했다. 그는 민노당의 창당 수준의 재혁신, 기득권 포기 등을 전제로 "범진보진영이 대선에서 단일한 전선을 유지하고 단일한 후보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한편 최근 진보논쟁의 발전적 확산을 위해 "원로와 소장학자, 부문별 활동가로 동심원을 그리며 외연이 확대외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논의도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한미 FTA나 복지 등의 문제의식으로 각론화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손호철 교수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전문.

"盧대통령 눈에는 진보가 극단세력으로 보일 것"

프레시안 : 오늘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 논쟁을 이끌어 가는 분들이 과연 진보의 균형점에 있는 분들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또한 진보진영의 문제제기가 보편적 진보를 대표하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노 대통령과 손 교수 사이에 진보에 대한 개념 차이가 참 크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손호철 : 우리사회에선 진보라는 개념이 좋은 개념으로 여겨져서 그것을 독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부시나 레이건, 대처 등은 아무도 "내가 진보"라고 하지 않았다. 왜 한국의 보수 세력은 떳떳하게 보수라고 말하지 않고 진보라고 주장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개념의 혼란과 함께 진보라는 가치에 대한 질투가 있는 것 같다. 남에게 빼앗기면 안 된다는 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온당하지 않다. 노 대통령이 진보 논쟁에 관련된 글들을 다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노 대통령은 진보를 '상대적인 차이'로 이해하는 것 같다. 2002년 대선 당시 언론을 통해 노 대통령이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무솔리니가 히틀러보다 진보적이라는 얘기와 같다. 미국의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 해서 보수양당제인 미국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용법을 가지고 노 대통령이 본인은 진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나는 물론이고 최장집 선생이나 조희연 선생이 모두 좌측에 치우친 극단세력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개혁적 보수다.

결국 노 대통령은 진보가 아닌 것을 진보로 놓고 얘기하는 것이니 별 가치가 없다. 게다가 노 대통령은 2005년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에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럼 한나라당도 진보라는 얘기이고, 대한민국은 모든 세력이 진보라는 말이다.

개혁적 신자유주의 세력을 진보로 보는 것은 오류다. 자본주의에 대한 입장, 즉 절대적 기준으로 봐야 한다. 한국은 보수양당제이고 진보정당이 부재해 온 역사인 게 사실이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노무현 정부는 진보가 아니라 중도개혁 세력이다. 노 대통령과 학계 사이에서 오간 말들은 진보진영 내의 논쟁이 아니라 진보진영과 신자유주의적 세력과의 논쟁일 따름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고 해도 진보진영의 위기가 현실적으로는 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개혁주의 세력의 몰락과 연동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손호철 : 논쟁이 전개되는 와중에 다소 불만스러운 것은 참여정부만의 문제로 국한시켜 보는 경향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독특한 스타일이나 무능이 결합된 측면일 수는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정권 10년의 문제로 본다. 김대중 정부는 잘했는데 참여정부가 말아먹은 듯이, 노무현 정부로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주장이 진보진영에도 일부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잘못됐다.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연속성은 민주개혁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지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는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게는 국민들이 과반 의석을 줬고 우호적인 민노당이 있었음에도 국보법을 폐지하지 못했다. 민주개혁에 실패했다는 연속성이 있다.

반면 신자유주의 개혁은 너무 유능하게 추진했다. 김대중 정부의 경우 97년 외환위기라는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위기 극복의 과제가 심각해서 운신의 폭이 적었던 면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를 벗어난 상황에서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97년에 강제된 신자유주의 전략이 한국 사회가 21세기에 추구할 발전전략인지를 보다 성찰적으로 고민했어야 했다. 전혀 그런 게 없었다. 한미 FTA가 이를 보여준다.

진보진영 내의 일부 세력도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노 대통령을 지지한 측면이 있다. 직접 지지하지 않은 진보진영에서도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책들을 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보법 폐지 실패로 상징되는 무능,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개악, 여기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 결정타였다. 이것이 진보진영과의 결별 내지는 파국으로 왔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이분법으로 볼 수 없다. 냉전적 보수세력과 자유주의 개혁세력, 그리고 진보세력으로 크게 구분된다. 세 세력은 두 개의 전선으로 갈라져 있다. 민주-반민주 구도의 '민주전선'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으로 갈라지는 '신자유주의 전선'이다.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가 서민과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표방했지만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엄청난 사회적 양극화였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 수혜자는 론스타로 대표되는 해외 투기자본, 더욱더 비대화된 극소수 재벌, 강남 아줌마들이었다. 본인들이 표방한 지지기반인 다수 중산층과 서민은 사회적인 패배자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니 서민과 중산층은 먹고살기 어려운데 무슨 민주개혁이냐며 노무현 정부로부터 떨어져나갔다. 그것이 지지기반의 이탈을 가져다 준 가장 큰 원인이었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손 교수의 논지는 최장집 선생이 강조하는 정당정치의 제도화의 문제로 참여정부의 문제를 진단하는 것과도 다른 것 같다.

손호철 : 최 선생이 가진 합리적 핵심이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의 불구성, 즉 정치사회가 보수양당 독점으로 구축되면서 시민사회의 갈등을 제도정치 내에서 조정하고 푸는 정치사회의 기능이 없어진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그런 문제 틀에서 바라보면 당정분리 등의 정책은 대통령이 지지기반으로부터 이탈한 것이다. 그런 측면을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맞다.

다만 그것만 강조하면 시민사회 수준에서는 문제가 별로 없는데, 정치사회와 단절이 돼서 정당정치의 수준으로 상승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요컨대 최 선생의 문제의식은 운동은 문제가 없는데 운동의 힘이 정치사회에 반영이 안돼서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위기는 이보다 훨씬 더 깊다. 운동도 문제라는 것이다. 운동정치의 과잉이라고 최 선생은 말하지만 실제로 운동이 과잉인 세력은 뉴라이트다. 우리는 관성화되고 수세적인 운동으로 축소됐다. 인터넷 들어가 봐도 보수적인 글들이 지배하고 있다.

최 선생의 지적 가운데 정당정치의 문제의식은 정당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그 밑에 있는 심연, 그람시적으로 얘기하면 시민사회의 진지전, 참호가 무너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 참호를 복원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 운동정치의 과잉으로 말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범여권 견인의 전제는 신자유주의로부터의 탈피"

프레시안 : 두 가지 전선 가운데 중심은 신자유주의 전선이라는 게 손 교수의 지론인데, 그러나 민주전선을 단지 부차적인 전선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예컨대 한반도 평화 공존의 틀 등 우리사회의 매우 중요한 문제들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냉전세력과 개혁세력의 차이가 과연 왜소한 문제일까 하는 것이다.

손호철 : 대선에서의 목표는 세 가지다. 반신자유주의 진영의 성장, 자유주의세력의 견인과 좌경화, 한나라당의 집권 저지다. 문제는 두 번째에 달려 있다. 범여권이 반신자유주의 쪽으로 견인된다면 별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다시 신자유주의 세력이지만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범여권의 손을 들어줘야 하느냐, 아니면 정권이 넘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신자유주의 전선을 명확히 하고 싸울 것이냐의 문제다.

전자는 비판적 지지가 되는 것이다. 나는 두 번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차이와 관련해서 최대한 범여권세력에 대한 견인과 연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전제는 신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FTA를 하지 않겠다는 정도는 있어야 한다.

민주-반민주의 구도에는 중요한 문제 가운데 냉전의 문제가 남아 있다. 국보법 등 국내 문제와 한반도에서의 남북문제를 둘러싼 현안 등이다. 두 세력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잘 얘기했다고 본다. 설령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햇볕정책의 기조를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이 맞다. 그 문제에 대해서 한나라당이 말하는 극우적 레토릭 때문에 지레 겁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어찌 보면 이번 대선은 신자유주의 두 세력의 사활을 건 싸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세 번째 집권에 실패하면 궤멸한다는 위기의식이 대단히 강하다. 만약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이 집권에 성공해 냉전적 수구세력의 궤멸로 이어진다면 2중으로 그어진 전선을 명확히 하는 차원에서도 일부 효과가 있지 않을까?

손호철 : 2004년 총선 직후 정형근 의원은 앞으로 한나라당과 민노당만 있고 열린우리당은 궤멸될 것이라고 했다. 그 전제는 한나라당의 좌경화였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한나라당 최대의 적은 시간이다. 2002년 대선 때 2030 세대와 5060 세대 간의 대립이 나타났는데, 두 집단을 가른 기준은 북한과 미국이었다. 민족적인 이슈였다. 2030은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지 않지만 탈냉전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다. 2030 세대처럼 북한과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는 세력이 인구의 다수를 점하게 되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탈냉전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즉 꼴보수로 남아 있는 한 궤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의 열린우리당 입장 쪽으로 한나라당이 이동하면 지역기반이 취약한 우리당은 해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정형근 의원 주장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전혀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역사적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바로 그것이다. 한나라당이 전혀 좌경화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결과가 왜 나오나. 반노무현에 대한 국민적 정서의 효과다.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이 다시 승리한다면 노 대통령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수구세력이 탈수구화할 이유를 봉쇄한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노무현 정부가 북 치고 장구 치는데 자기혁신을 할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수구세력은 망할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 쪽으로 오면 자발적 궤멸이고, 그대로 남아 있으면 여론에 의해 궤멸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문에 지연된 것이다. 만약 범여권이 기사회생해서 한나라당이 또 깨진다면 냉전적 보수로 있는 한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2030 세대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매우 높다. 탈냉전세대까지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노 대통령에 대한 사랑이 실망으로 간 것과 함께 신자유주의 문제가 작동한 결과다. 청년실업 문제, 집값 문제 등이다. 계급적 이슈가 민족적 이슈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선 냉전적 꼴보수이지만 일자리 주는 세력과 탈냉전적이지만 양극화 세력 중 누구를 택하겠느냐고 하면 당연히 냉전적 세력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한나라당 세력이 물론 양극화를 심화시키면 시켰지 다르지 않음에도 국민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의 논쟁 내용을 되짚어 보면, 조희연 교수도 한나라당의 집권 자체보다는 냉전세력이 신보수주의 내지는 신개발주의로 스스로를 포장해서 재등장하는 경우를 걱정하는 게 아닐까 싶다.

손호철 : 나는 신보수주의나 신개발주의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느낀다. 신보수주의는 마치 그들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노무현 정부와 상당히 다르고 이들이 하면 양극화를 확대하지 않을 세력인 것처럼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개발주의도 마찬가지다. 운하 개발 등은 환경적으로 비판을 충분히 해야 하지만, 이를 신개발주의로 명명하면 다시 박정희 모형으로 돌아간다.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국가주도형 경제로 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신자유주의 큰 틀 내에서의 내부 변형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와는 다른 경제정책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여지도록 하는 용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진보진영의 주요한 문제의식은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집중돼 이루어져 왔다. 내가 반신자유주의를 강조하고 반수구전선은 이차적 전선이라고 하는 것은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자유주의 정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진보진영이 가면 안 된다고 강조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시민사회 수준에서 보면 진보와 개혁이 같이 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조희연 선생의 문제의식 속에 합리적인 부분은 여기에 있다. 개혁세력이 진보일 수 있다. 한미 FTA 반대세력 중에는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도 결합해서 투쟁하고 있다. 시민사회 수준에서 진보세력과 개혁세력이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조희연 선생의 말대로 범여권을 지지하고 있는 일반대중을 어떻게 견인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담긴 고민은 충분히 이해한다.

문제는 견인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범여권을 타격해서 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연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시민사회 수준에서도 그렇게 견인하고 끌어내야 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사회 수준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프레시안 : 조희연 선생의 고민은 정치적 영역까지 나아 간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에서 분화된 세력과 민노당의 대선 연합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복지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을 민노당이 맡는 식이다.

손호철 : 마지막 순간에는 선택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전선을 포기하고 한나라당 집권 저지를 위해 비판적 지지를 하거나, 아니면 산자유주의 세력과 싸우거나다. 2002년 대선도, 97년 대선도 진보진영이 일부 비판적 지지로 돌아서서 승패가 갈린 것인지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이번에도 개혁진영이 한나라당을 압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집권은 진보진영의 패배라는 조 선생의 이야기는 맞지만, 열린우리당의 승리를 진보진영의 승리로 볼 수는 없다.

또한 선거 연합의 내용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최소한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정도로 합의가 가능하다면 진보진영의 틀에 열린우리당의 좌파 세력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다 포기하고 평화통일 같은 것을 매개로 하자면 그것이야말로 반수구전선이다. 반신자유주의냐 반수구냐를 가지고 추상적인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범진보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최적의 연합의 범위와 강령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고민해야 한다. 어떤 내용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진보라는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진보세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지로 논의가 전개돼야 한다.

또한 장관 몇 개를 나눠먹는, 국가에 대한 부분적 장악론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도구주의적 좌파이론이다. 연합 정권이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정권이라면 진보진영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다. 열린우리당이 한미 FTA를 거부할 수 있다면 장관 자리 하나가 아니어도 지원할 수 있다. 반대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면 총리를 준다고 해도 하면 안 된다. 분점정부란 원칙이 있어야지 자리 나누기식이 돼선 안 된다.

조 선생의 입장은 전략적으로 열려져 있는 입장이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반수구를 위해 신자유주의 전선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 전까지의 모든 논쟁들은 레토릭이 된다. 중간의 과정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철저하게 반수구 입장을 가진 사람이 있고, 조 선생 같이 중간적 입장에서 열려져 있는 사람이 있고, 나같이 신자유주의 전선에 방점을 찍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범진보진영 독자후보 내야"

프레시안 : 진보진영의 '위기'라고 이름 붙여진 요즘 논쟁을 보면서 진보진영이 위기가 아니었던 때가 언제 있었나 싶기도 했다. 어쨌든 개혁주의 세력의 국정운영 실패로 인해 닥친 문제라고 하더라도 진보진영이 무언가 스스로 활로 모색을 해야 할 시기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손호철 : 진보가 권력을 장악한 적이 있어야 잃어버리기라도 하는 것 아닌가.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에게는 딜레마가 있다. 일반 대중들에게 노무현 정부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차별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 득도 되고 독도 된다. 노무현 정부의 득세에 편승해 민노당이 득을 본 측면도 있다. 이제는 거꾸로 같이 추락하는 상태다. 진보진영은 자기 정체성을 찾고 단순히 진보진영과 노무현 정부라는 것이 '개혁의 정도' 차이로밖에 인식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어떤 면에선 노 대통령은 민노당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민노당 비밀당원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렇게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는데 민노당은 과연 무얼 했나 모르겠다. 진보진영의 관념성이 있었고 대중의 삶에 무감각했다. 노무현 정부의 위기 속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핵심적으로 내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결과가 또 다른 신자유주의 세력인 한나라당이 정권을 가져가고 민노당이 동반 몰락하는 상황이라면 거기엔 진보진영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진보진영도 그런 면에서 자기 혁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민노당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잇따른 부패스캔들, 대기업 노조의 집단이기주의, 경제적 조합주의의 한계 등도 진보 위기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87년 대선 당시 비판적 지지, 후보 단일화, 독자후보론이 있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민노당을 놓고 비판적 지지, 범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독자적 정당론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후보단일화론자다. 범진보진영이 대선에서 단일한 전선을 유지하고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민노당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하나의 행위자로 존재해야 한다. 범여권의 좌파그룹, 미래구상 같은 시민운동세력이 포괄적으로 들어와서 최적의 강령을 놓고 고민하면서 대선에 어떻게 임할지의 고민을 진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민노당은 창당 수준의 재혁신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운동 진영의 참호도 무너지고 정치적 전망도 무너진 상황에서 대선을 맞게 됐다. 대세인 신자유주의를 거스르면서 대중들에게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대중들을 진보진영으로 견인해 내기 위한 실천적 활동들로 무엇이 필요할까.

손호철 : 중층적, 복합적 실천이 필요하다. 단기적이고 사안별 대응에서부터 중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안까지 중층적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한미 FTA를 반대한다는 주장 자체가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국민들의 입장에선 생활이 어려운 마당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파편화된 의식을 조직화해서 어떻게 반신자유주의 전선으로 묶어낼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다.

여기서 경험과 의미의 변증법이 중요하다. 의미만 가지고 간다면 담론투쟁이 된다. 서민들은 삶의 체험이 있다. 그 체험들을 묶어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문명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믈질 문명에 대한 자기성찰, 대안적 문명에 대한 고민들이 있어야 한다. 그에 기초해서 중장기적으로 세계화가 아닌 대안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

프레시안 : 진보 논쟁이 향후 어떻게 전개되는 게 좋을지 제언을 부탁한다. 지금까지 논쟁에서 부족했던 부분, 앞으로 추가돼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일까.

손호철 : 정치사회의 전략과 시민사회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시민사회가 정파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직화된 시민사회는 정파적인지 몰라도 일반 시민사회 수준에서는 지역에 엮여 있다. 이대로라면 만약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게 되면 진보진영이 (개혁세력으로부터) 비난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저놈들 때문에' 하는 감정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또 하나는 과잉 단순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장집과 손호철은 한나라당 집권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압축하는 것이다.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나. 논쟁 과정에서 논지의 전달 과정은 섬세해야 한다. 이 논쟁이 학자들 간의 논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지지기반에게 생각을 하게 만들고 정치적 전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흘러선 절대 안 된다. 논쟁이 격이 있으면서 다층적으로 형성됐으면 좋겠다. 원로와 소장학자, 부문별 활동가로 동심원을 그리며 외연이 확대되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논의 수준도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한미 FTA나 복지 등으로 문제의식이 각론화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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