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임단협 춘투(春鬪)의 계절을 앞두고 경영계가 올해 노동계의 임금인상 요구를 억누르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들어간 듯 하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은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 대졸 초임이 일본보다 높다"며 대졸초임과 대기업 고임금자 임금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총의 이같은 주장이 단순 비교할 수 없는 통계 수치를 단순 비교한 것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속임'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경총 "1000인 이상 대기업 대졸초임 일본보다 10% 이상 높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은 27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연구원 주최 한경연포럼 강연에서 "과도한 임금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단계 조치로 국제비교가 쉬운 대기업 대졸 초임만이라도 동결하자"고 제안했다.
경총은 앞서 지난 25일 '2007년 경영계 임금조정 기본방향'을 발표하면서 "전체적인 임금인상률은 2.4% 수준에 맞추고 대졸초임과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의 임금은 지난해 수준에서 동결하라"고 회원사에 권고한 바 있다.
김 부회장의 발언과 경총의 올해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은 지난 14일 경총이 발표한 '임금수준 및 생산성 국제비교 보고서'에 근거하고 있다.
경총은 이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대졸초임은 2255만 원으로, 2384만 원인 일본의 94.6%에 달한다"며 "특히 10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대졸초임이 일본보다 10.4% 높아 상대임금수준은 110.4%에 달했다"고 밝혔다.
경총은 "2006년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1만8337달러로 3만5490달러인 일본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며 "경제규모에 비해 대졸초임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또 "우리나라의 임금상승률은 선진국 및 경쟁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을 뿐만 아니라 생산성 증가분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며 "1997년의 임금수준을 100으로 할 때 2005년 우리나라의 임금수준은 192.1로 8년 간 무려 92.1% 상승한 반면, 일본은 1.7%, 대만 17.6%, 미국 22.9%, 영국 37.3%에 그쳤다"고 강조했다.
"근로시간 등 다 무시하고 더 높다니…시간당 임금, 한국이 일본의 60% 수준"
최근 경총이 잇따라 내놓은 보고서, 임금조정 권고안 발표, 고위 관계자의 강연의 흐름은 하나로 모아진다. 본격적인 임단협을 앞두고 올해 임금인상 수준을 낮추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매년 봄의 춘투를 앞두고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경총의 임금조정 권고안 발표에 앞서 한국노총은 지난 22일 정규직의 경우 월 고정 임금총액 기준으로 9.3%, 비정규직은 18.2%의 임금인상 요구율을 발표했었다. 민주노총은 오는 3월 6일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올해 임금인상 요구율을 확정한 뒤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문제는 경총의 주장이 잘못된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서로 다른 조건에 있는 여러 국가들의 임금을 상이한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하게 비교해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대 노총은 경총의 보고서에 대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억지일 뿐 아니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노총(위원장 이용득)은 "국제노동기구(ILO)는 국가간 임금을 비교하는 경우 환율, 물가, 근로시간 등 여러 노동환경요소가 국가별로 상이하므로 시간당 임금으로 비교하고 있는 반면 경총은 기본급, 제수당 및 고정상여금을 합산한 금액을 환율로 계산해 나온 결과만을 단순 비교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근로시간의 차이도 경총은 고려하지 않았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과 일본 노동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2380시간(한국)과 1816시간(일본)으로 무려 연간 600시간 가까이 차이가 난다. 한국노총은 "결국 시간당 근로임금으로 환산하면 한국은 약 8035원, 일본은 1만3222원으로 우리나라 노동자가 일본의 60.8% 수준"이라고 밝혔다.
"임금상승율도 생산성증가율보다 낮다"
"임금상승율이 생산성 증가분을 초과하고 있다"는 경총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한국생산성본부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2년부터 지난 4년간 물적노동생산성 증가율을 각각 11.8%, 8.2%, 10.6%, 9.3%였던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실질임금상승율은 8.2%, 5.5%, 2.3%, 3.9%에 그쳤다.
국제노동통계자료를 보더라도 제조업 노동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1992년을 기준(100)으로 지난 2005년에 우리나라가 305.1, 일본은 154.1이고, 제조업 노동자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같은해 우리나라가 292.1, 일본이 151.8이다.
이를 종합해 대졸초임을 일본과 비교했을 때 시간당 및 1인당 노동생산성은 우리나라가 더 높은 반면 시간당 임금은 오히려 낮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경총의 보고서는 전체 노동자의 임금 및 생산성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대졸초임만을 비교한 것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민주노총(위원장 이석행)은 "기업규모간 임금격차, 학력간 임금격차,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은 빼고 대졸초임만을 비교하는 것은 보고서의 최소한의 도덕성 시비를 불러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대기업과 대졸자의 초임만을 단순 비교함으로써 마치 우리나라의 임금 수준이 '선진국' 수준인 것 같은 '착시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경영계가 진정으로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바란다면 매년 되풀이해 온 '눈속임'에 기반한 여론몰이를 그쳐야 한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 자신들의 주장과 마지노선을 제시하고 노동계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는 태도가 우선돼야 한다. 그것이 소위 진정한 '비지니스맨'의 자세가 아닐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