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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딩', 그 아름다운 스턴트맨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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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딩', 그 아름다운 스턴트맨들 이야기

[화제의 책] <소심한 김대리 직딩일기>

어느 보험회사의 밤 풍경. 연일 계속되는 야근, 입사 3년 차인 K는 계속해서 혼잣말로 "아아. 근로기준법"을 중얼거린다. K는 급기야 인터넷으로 근로기준법의 법정 근로시간 조항을 검색해 읽어주며 "단 하루라도 근로기준법의 보호 아래에서 살고 싶다"며 농담 반, 진담 반의 절규를 늘어 놓는다.

인상을 쓰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혹은 묵묵히 서류더미들에 파묻혀 야근을 '해내던' 동료들은 K의 얘기를 듣고 모두 "사무실에 전태일 나셨군"이라며 웃어넘긴다. 사실 누구도 야근을 '지시'한 적은 없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끝없이 '투덜거리며' 야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시대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경험했을 이 풍경에 대해 <소심한 김대리 직딩일기>(철수와 영희 펴냄)의 저자 김대리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회사가 야근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회사가 강요하는 것은 실적과 경쟁이다. 실적을 창출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법정 근로시간'으로는 불가능하다.

살인적인 경쟁과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지는 사기업에서 근로기준법 운운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엄살'로만 치부된다. '근로기준법은 유치한 응석이 아니라 우리의 성숙한 권리예요!'라고 항변하는 K도 집에서 9시 뉴스를 못 본 지 몇 달이 됐다."

"절대로 오지 않을 안정을 위해 오늘의 불안을 이겨내는 직딩들에게"
▲ <소심한 김대리 직딩일기> ⓒ프레시안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 보험회사에 근무 중인 김준 씨는 '우연한' 기회로 지난 2004년 11월부터 매주 <AM7>에 '김대리의 직딩 일기'를 연재 중이다. 그가 털어놓은 그 소소하지만 '짠한' 직장인의 일상이 책으로 나왔다.

<소심한 김대리 직딩일기>는 "절대로 오지 않을 안정을 위해, 오늘도 끝없는 불안을 이겨내고 있을 대한민국 2000만 동료 직장인들"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서점에 널려 있는 허다한 석세스 스토리가 아니며, 또한 성공한 직장인의 자신감 넘치는 처세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직장인이 날마다 겪는 좌절의 연대기이며 처세에 실패한 월급쟁이의 무거운 한숨입니다. 혹은 당신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남아 중얼거리는 슬픈 혼잣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직장은 '생존권을 위한 최후의 보루'다"

직장인들이 겪는 애환이야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가 모르랴. 하지만 김대리가 털어놓는 애환들은 그 어떤 사회학자의 논문보다 구체적이며 그 어떤 노동운동가의 구호보다 절실하다.

어린 시절의 꿈과 현재 내가 잡고 있는 희망 같은 것보다는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명하는 데 익숙한 우리시대 수많은 직장인들. 사람들은 흔히들 직장을 얻게 되는 것을 사회에 진출한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 시대 직장인의 삶이란 "사회 속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 숨어 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이 사람에게 맞고, 저 사람에게 치이며" 그저 "월급이나 꼬박꼬박 나오는 것에 만족하게 되는 인생"이 되어 버렸음을 깨닫게 되더라도 술에 잔뜩 취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김대리'들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직장은 "생존권을 위한 최후의 보루"이기에, '내가 뭐 여기 아니면 먹고 살 데가 없는 줄 아냐'며 사표를 던지고 더 좋은 회사로 스카웃 돼 나간 C대리를 지켜보며 그저 '착잡할' 뿐이다. "스카웃 될 일도 없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엔 나이가 많고, 사업을 하기엔 돈과 용기가 없는" 남은 사람들이 할 일은 "C대리가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사무실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과, 다시 복종에 익숙해지는 것뿐".

김대리는 우리 시대 직딩들은 모두 '스턴트맨'이라고 한다. '몸값 높으신' 유명 배우를 대신해 온갖 위험스러운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 스턴트맨.

"그래, 월급쟁이들이란, 사장의 한 마디에 온 직원이 혼비백산 뛰어다니고 현장에서 사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아닌가. 뛰어 내리라면 뛰어 내리고, 죽으라면 죽고, 그렇게 살다가 누구 하나 쓰러져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고…. 그래, 우리는 모두 스턴트맨이다. 회사를 대신하여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나의 대역은 없다."

"김대리, 보입니까? 차가 막힌단 말입니다!"

대역 없는 전투를 치르며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르면서 사무실에 갇혀 지내는 직딩들은 그래서 사소한 것에서도 감격하곤 한다.

'이제는 제발 인간다운 삶을 살아보자'며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야근은 하지 말자고 직원들이 함께 '단결해' 6시 30분에 퇴근길에 오른 김대리와 그의 동료들. "매일 차 없는 밤거리를 홀로 쌩쌩 다니며 퇴근하던" 그들은 '러시아워' 퇴근길 꽉 들어선 차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격한다.

"이럴 수가! 길거리에 꼬리를 물며 늘어선 차량의 행렬, 이것이 말로만 듣던 '러시아워'의 장관이란 말인가! 이번 정시 퇴근 제도에 총대를 메고 나서주었던 K대리에게서 전화가 온다. '김대리, 보입니까? 차가 막힌단 말입니다! 너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핫핫핫' 차 막히는 퇴근길, 우리들의 소원이란 단지 그런 것이었다."

종종 접하게 되는 '과로사 괴담'을 들을 때면 "남의 일 같지 않은" 것 또한 모든 '김대리'들의 고충. 그럴 때면 그는 "온 나라가 일 중독에 빠진 듯한 대한민국"을 향해 "다들 조금만 게을러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이유 없이 시작된 인생을 살아가는 작은 이유"를 보여주다

그의 직딩일기에는 보험회사 직원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담겨 있다.

공단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교통사고 건을 처리해주기 위해 찾아간 김대리. 보상금으로 70만 원이 각각 본인과 사장에게 지급된다는 설명에 "그럼 제가 야근 못 한 수당 4800원은 어떻게 되죠"라고 묻는 여성 노동자를 통해 그는 "'보상금 70만 원은 내 하룻밤 술값'이라며 값싼 웃음을 흘리던 해당 중소기업 사장은 절대로 넘볼 수 없는" 여성 노동자의 인생이 지닌 가치를 깨닫는다.

가끔은 스스로의 몸을 "다른 사람보다 더 큰 돈으로 계산해주길" 바라는 '몸 엄살'이 심한 대학교수, 고위 공무원, 전문직 고소득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김대리는 "나를 일반 노가다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보지 마라"며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던 한 대학교수를 통해 "정신노동이 육체노동보다 훨씬 '비싼' 몸이며, 서류와 컴퓨터로 이루어지는 노동이 땀과 힘으로 이뤄지는 노동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편견"과도 맞닥뜨린다.

"공포영화의 귀신이나 살인마보다 더 무서운" 상사 앞에서는 늘 비굴해지면서도 양복 왼쪽 안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는 '사표'라는 '수류탄'을 던지기에는 용기가 부족한 직장인. 하지만 김대리는 "어차피 넥타이는 매어졌고 우리들은 출근해야 한다"는 세상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

하기에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이유 없이 시작된 인생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작은 이유를 찾아가며 삶을 채워가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김대리는 그의 책 <소심한 김대리 직딩일기>를 통해 '소심하고 평범한 직딩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작은 이유를 이미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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