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용훈 비판글'에 반박글…"판사가 증거도 없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용훈 비판글'에 반박글…"판사가 증거도 없이"

사법불신·과거사청산 등 악재…'이용훈 호' 최대 난국

서울중앙지법 정영진 부장판사(사시 24회, 연수원 14기)가 이용훈 대법원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거취 문제'까지 언급한 글이 20일 공개된 뒤 사법부 안팎에서 찬반 논란을 낳으며 파문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사법부가 김명호 전 교수의 '석궁 사건'과 '긴급조치 판결 분석' 등의 논란으로 인해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던 터에 인사 문제 등으로 인해 '내부 갈등'까지 겹쳐지며 2005년 출범한 '이용훈 호'가 안팎으로 최대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국민 신뢰회복', '사법부 과거사 청산', '사법개혁' 등의 시대적 과제를 잔뜩 떠안고 있는 이용훈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가 최근의 이 난국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할 말 했다" vs "판사가 증거도 없이…"
  
  정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장이 물러나고 안 물러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사법부가 불신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법원장이 제대로 해명해야 한다"며 "해명이 안 되는 상태가 계속되면 사퇴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글의 취지를 설명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할 말을 했다', '용기 있는 지적이다'는 반응이 없지 않지만, 상당수의 판사들은 '지나쳤다'는 반응이다. '조직의 수장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는 것보다는 '증거에 입각해 판단해야 할 판사가 증거도 없이 인신공격성 글을 썼다'는 것이다.
  
  특히 창원지법 문형배 부장판사(사시 28회, 연수원 18기)는 이날 오후 정 부장판사가 글을 올렸던 것과 동일한 법원 인트라넷 게시판에 '정 부장님, 누구를 위하여 이런 글을 올리셨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정 부장판사의 글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문 부장판사는 "법원을 대표하는 대법원장을 비판할 때는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지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할 것"이라며 "뚜렷한 근거, 국민의 이익 어느 한 쪽에도 부족함이 있다면,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것을 본분으로 하는 판사의 글로서는 부족하다"고 전제했다.
  
  문 부장판사는 이어 "대법원장의 거취를 거론하면서 소설 같은 시나리오를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증거로 재판하는 데 길들여진 저에게는 소설 같은 시나리오가 낯설기 짝이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 부장판사는 그의 글에서 '시나리오'임을 전제로, 조관행 전 부장판사와 친분이 있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조 전 부장판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무마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실형 선고를 받지 않게 하려 했으나 또다시 실패하자 실형을 선고한 부장판사에게 인사 상 불이익을 줬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법관계급제가 문제면 그동안 왜 침묵했나"
  
  문 부장판사는 또 "승진인사를 거론하면서 대법원장의 거취를 논하는 것이 유례가 있는 일이냐? 본질적으로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가 없는 승진인사를 거론하면서 대법원장의 거취를 논하는 것이 유례가 있는 일이냐"라며 정 부장판사를 비판했다.
  
  문 부장판사는 이어 "인사 대상자가 인사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다수의 법관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걱정된다. 정 부장님의 글이 인사 불만에서 비롯된 감정의 토로로 여겨지지 않을 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정 부장판사의 '법관계급제' 비판에 대해 문 부장판사는 "우리가 경청할만한 주제"라면서도 "'법관계급제' 폐지가 대법원장 거취를 논의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다면 정 부장님은 그동안 왜 그동안 침묵했느냐"고 비판했다.
  
  문 부장판사는 "유태흥 대법원장 시절 법관인사와 관련해 탄핵소추가 제기된 사실을 거론하는데, 유태흥 대법원장님이 국회의원에 의해 탄핵소추된 이유가 고등부장 승진인사를 했기 때문이냐"며 "그렇게 알고 계시다면, 그 당시 법원민주화를 위해 사직을 무릅쓰고 행동했던 선배법관들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2005년 고인이 된 유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시절이던 1985년 법관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한 판사를 지방으로 전보시켰다가 소장 판사들의 거센 반발을 샀고, 이어 당시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들에 의해 '사법부가 권력에 예속됐다'는 이유로 탄핵소추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탄핵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돼 유 전 대법원장은 임기를 모두 채웠다.
  
  "법원 어려운 처지비판 구실 하나 더 제공"
  
  문 부장판사는 "지금 법원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다"며 "이런 판국에 정 부장님이 올린 글이 오히려 뚜렷한 근거 없이 법원을 비판하던 사람에게 구실을 하나 더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문 부장판사는 "지금 우리는 열정과 정성을 모아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인사 불만에 초점이 찍힌 정 부장님의 글에는 선동가의 용기는 보이나 순교자의 희생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편 김명호 전 교수의 석궁 사건과 함께 법원 안팎에 계속 악재가 쌓여가자 대법원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석궁 사건 때 국민들의 반응을 보고 판사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신만만하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 이후 검찰과의 갈등, 변협과의 갈등, 대법원장의 소득세 탈루 의혹, 지지부진한 사법제도 개혁, 진실화해위의 긴급조치 판결분석 등 법원 안팎에 악재가 쌓이며 자신감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초기 자신만만하던 이 대법원장의 '액션'이 지금이야 말로 필요한 때가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다음은 문형배 창원지법 부장판사의 반박글 전문이다.
  
정 부장님, 누구를 위하여 이런 글을 올리셨습니까?
  
  법원은 대법원장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법원은 판사들의 것만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법원을 대표하는 대법원장을 비판할 때는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지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뚜렷한 근거, 국민의 이익 어느 한 쪽에도 부족함이 있다면,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것을 본분으로 하는 판사의 글로서는 부족할 것입니다. 정영진 부장님의 글을 읽고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어 몇 자 올립니다.
  
  첫째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따라 취임한 대법원장의 거취를 거론하면서 소설 같은 시나리오를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증거로 재판하는 데 길들여진 저에게는 소설 같은 시나리오가 낯설기 짝이 없습니다.
  
  둘째 승진인사를 거론하면서 대법원장의 거취를 논하는 것이 유례가 있는 일입니까? 본질적으로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가 없는 승진인사를 거론하면서 대법원장의 거취를 논하는 것이 유례가 있는 일입니까? 법원은 국가기관 중에서 승진인사에 대한 후유증이 거의 없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며 살아 왔습니다.
  
  셋째 인사대상자가 인사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다수의 법관들에게 어떻게 비칠 지 걱정됩니다. 정영진 부장님도 연수원 14기로서 이번 고등부장 전보인사의 인사대상자로 보여지는데, 정 부장님의 글이 인사불만에서 비롯된 감정의 토로로 여겨지지 않을 지 걱정됩니다. 저도 몇 차례 인터넷게시판에 글을 올린 적이 있지만, 저를 위하여, 또는 저와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문제로 글을 올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넷째 이른바 '법관계급제' 폐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다면 왜 그 동안 침묵하셨습니까?
  
  물론 정 부장님의 글 속에는 우리가 경청할 만한 주제가 들어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최종영 대법원장님 시절 이른바 '법관계급제' 폐지를 포함한 인사제도의 개선을 위하여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고, 거기에서 수십 차례 논의를 거쳐 인사제도 개선안을 마련하였고 그 중 상당수는 지금 시행 중에 있습니다. 고등부장 전보인사와 관련하여 단일호봉제를 도입하되 고등부장-지방부장 순환보직은 유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리고 법관으로 한번 임용되면, 항소법원 판사까지 모두 올라가는 그런 인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 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인사제도를 다시 거론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지금껏 해온 고등부장 전보인사가 위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른바 '법관계급제' 폐지가 대법원장 거취를 논의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다면 정 부장님은 그 동안 왜 침묵하셨습니까? 왜 부장판사라는 직함은 사용하고 있으십니까? 더욱이 현 대법원장님이 고등부장 전보인사한 것을 가리켜 사실상 고등부장 승진인사였다는 이유로 위법하다고 단정짓고, 같은 맥락에서 유태흥 대법원장 시절 법관인사와 관련하여 탄핵소추가 제기된 사실을 거론하시는데, 유태흥 대법원장님이 국회의원에 의하여 탄핵소추된 이유가 고등부장 승진인사를 하였기 때문입니까? 그렇게 알고 계시다면, 그 당시 법원민주화를 위하여 사직을 무릅쓰고 행동하셨던 선배법관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닐런지 걱정스럽습니다.
  
  정 부장님이 공감한 대로 지금 법원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석궁테러를 당해도 피해자인 판사를 동정하기는커녕 가해자인 소송당사자를 동정하거나 지지하는 여론이 상당할 정도로 말입니다. 이런 판국에 정 부장님이 올린 글이 어떠한 해결책을 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오히려 뚜렷한 근거 없이 법원을 비판하던 사람에게 구실을 하나 더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지금 우리는 열정과 정성을 모아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인사불만에 촛점이 찍힌 정부장님의 글에는 선동가의 용기는 보이나, 순교자의 희생은 보이지 아니합니다. 저의 글이 정 부장님 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기를 간절히 빌면서 부족한 이 글을 마칩니다.
  
  2007. 2. 20.
  
  창원지방법원을 떠나는 아쉬운 마음에 문형배 올림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