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베를린국제영화제가 18일 폐막을 향해 순항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등 경쟁작 22편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노장 가수 겸 영화배우 마리안 페이스풀(60)이 성매매 할머니로 열연해 큰 관심을 모았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페이스풀이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은 독일,영국 합작영화 <이리나 팜>. 그는 병든 손자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서 런던 소호지역의 한 섹스숍에 취직한 매기 역을 맡았다. 설정은 매우 신파적이지만, 독일 출신 샘 가바르스키 감독은 손자를 둔 평범한 할머니가 가난 때문에 성매매에 나섰다가 난데없이 업계의 '전설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상황을 코믹하면서도 쿨한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기가 출근하는 섹스숍은 이른바 손을 이용한 '섹스 서비스' 전문업소. 첫날 새파랗게 젊은 동료여성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매기는 벽면에 뚫린 구멍 속에 손을 넣어 건너편에 서있는 남자손님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매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손님들을 대만족시킨다. 한두명씩 단골이 늘어나더니, 매기만을 찾는 손님들로 업소는 문턱이 닳을 지경이 되고 만다. 이렇게되니 경쟁업소들이 매기를 어떻게든 스카우트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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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 팜 ⓒ프레시안무비 |
AFP등 외신들은 <이리나 팜>에 대해 60대 여성의 성매매란 심각한 주제를 지나치게 어둡거나 무겁지 않게 다루면서도, 한 인간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과연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를 가슴찡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한편 마리안 페이스풀은 지난 13일 시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여자란 아이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존재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쉬운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해 전세계 취재진으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또 " 성매매를 하던 가까운 친구들이 있었다"며 "너무나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지금은 죽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영화에 대해서는 "성매매를 미화하지않고 가능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했다"고 밝혔다. 페이스풀은 1964년 가수로 데뷔해 '애즈 티어스 고 바이' 등 숱한 히트곡들을 남긴 영국 팝음악계의 전설적인 인물. 믹 재거와의 오랜 연애관계 및 마약관련 스캔들, 동성애 구설수 등으로도 유명하다. 1966년 <메이드 인 USA>부터 지난해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화와 90년작 록오페라 '더 월'출연 등 스크린과 무대 연기생활도 꾸준히 계속해오고 있다. 그는 베를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만약 내가 17살 때 노래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연기를 전공했을 것"이라며 연기에 대한 강한 애정과 의욕을 나타냈다. 그러나 "차기작 계획은 아직 없다"며 "당분간은 3월부터 시작되는 전세계 공연투어에 주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D-워>는 A급 특수효과, D급 플롯의 영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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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워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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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개막 다음 날인 9일 밤 선보여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AFP통신은 "오락가락하는 이야기와 변덕스러운 캐릭터에 흥미를 잃은 기자들이 상영 도중 밖으로 나갔다"고 시사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쿠리어지도 "이 영화는 확실히 모든 사람의 취향에 맞는 작품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비는 베를린에서도 미디어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영화제 소식지인 버라이어티 데일리는 "25살의 한국 스타가 관람 티켓을 매진시킬 정도로 능력을 입증했다"면서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대중성을 갖췄다"고 보도했다. 올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다세포소녀><천하장사 마돈나><해변의 여인><후회하지 않아><아주 특별한 손님>등의 한국영화도 선보였다. 마켓시사를 통해 첫공개된 심형래감독의 < D–워>에 대해 버라이어티지는 "A급 특수효과와 D급 플롯이 만난 영화"로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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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러운 세상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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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악취미의 제왕'으로 불리는 미국의 컬트영화감독 존 워터스가 자신의 영화인생을 되돌아본 다큐멘터리 <이 더러운 세상(This Filthy World)>을 공개해 마니아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았다. "내 영화가 아무런 사회적 가치를 되살리지 않는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는 영화철학을 가지고 있는 워터스는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30달러로 만든 생애최초의 17분짜리 영화 <검은 가죽재킷의 마녀>부터 사형제반대철학까지 자신의 삶을 그답게 좌충우돌로 풀어놓고 있다. 워터스는 베를린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이 더러운 세상>을 이틀만에 후딱 찍었다고 밝히면서, 사형제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사형당할까봐 무서우니까"라고 답해 관객들을 웃기기도 했다.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미국 감독 폴 슈레이더의 <더 워커(The Walker)>에서 남창과 관계를 맺는 워싱턴 부유층 노파로 출연한 원로 영화배우 로렌 바콜도 화제를 낳았다. 올해 82세인 그는 기자회견에서 "연기생활을 한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은퇴란 말을 믿지 않는다"고 기염을 토했다. 바콜은 "배우란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존재"라면서 "나 역시 모든 영화가 끝날때만다 다시는 연기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려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긴하겠지만, 그때쯤이면 내 생명이 다해있길 바란다"며 최후의 순간까지 연기자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과시해 큰 박수를 받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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