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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 "양형은 피고인의 재력에 달린 셈"

설민수 판사, 법원 내부게시판에 "형사재판 왜곡"

현직 판사가 "결과적으로 양형은 피고인의 재력에 달려 있는 셈"이라는 내용의 글을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사실이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글을 올린 주인공인 서울중앙지법 설민수(36. 사법시험 35회) 판사는 2006년 10~12월 사이 전국 법원에서 선고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배임·횡령·사기 등 이른바 '화이트 칼라 범죄'라고 불리는 사건들의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114명의 피고인 양형을 분석한 논문 형식의 글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구속·합의 중심 양형의 '법원 관행' 비판

설 판사는 이 글에서 "피고인의 양형을 결정하는 인자는 피고인의 구속 여부와 피해자의 합의 여부인데, 김 한 장을 훔친 노숙자는 도주할 수 있지만 수천 억을 횡령한 재벌 회장은 도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구속은 어떻게 보면 피고인의 사회적 여건에 달려 있고, 돈만 있으면 거의 90% 정도 합의가 이뤄진다"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일반 대중의 비난은 일면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 판사는 이에 대한 근거로 2002~2005년 사이 실형 선고율의 변화가 구속기소율의 변화와 일치하고, 구체적 피해자가 없는 조세범처벌법 위반죄의 경우 실형 선고율이 7%에 그치며, 역시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증권거래법 위반죄도 다른 경제범죄에 비해 처벌 강도가 훨씬 낮다는 점을 들었다.

결국 도주의 우려나 죄질을 따지는 구속단계부터 사실상의 양형에 대한 판단이 개입되는 것이며, 구속 이후에도 피고인의 재력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합의' 여부에 따라 양형이 이뤄지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나 재력이 부족한 피고인일수록 양형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설 판사는 "한국 형사재판 전체를 좌지우지하지만 법률상 어디에도 언급돼 있지 않은 '합의'가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피해자의 처벌의사 유무나 피해 회복은 아직도 이성이나 계획보다는 감정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중요할지 모르지만 형사적 처벌은 피해자의 사적 린치를 대신하는 제도가 아니다"고 '법 관행'을 비난했다.

설 판사는 114명에 대한 분석 결과, 직업별로 집행유예 비율은 연 매출 100억 원 이상의 '대기업' 운영자가 83.33%로 가장 높았고, 이어 사회명예직 50%, 회사 이사 33.3%, 회사원 19.06%였으며 자영업은 11.1%, 무직은 9에 불과했다.

'합의' 못해 자선적 기부하는 걸로 집유 선고는 문제

설 판사는 종종 법원 통신망에 사회적 이슈에 대해 글을 올려 주목을 받았던 판사로, 지난해 5월 '자선적 기부를 이유로 한 집행유예 판결의 적절성'이라는 소논문을 통해 "피고인의 기부행위를 조건으로 법원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는 것은 감형을 받기 위한 조치에 자비를 베푸는 것일 뿐이어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당시에도 설 판사는 전국 법원의 7개월 동안의 판결을 검색해 1·2심에서 양형의 요인으로 '기부'를 언급한 판결 27건을 골라내 분석을 했었다.

당시 분석에 따르면 27건의 사건은 사기 10건, 뇌물·배임수재 4건 등으로, 설 판사는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불분명하거나 피해자와 합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형을 감경받기 위한 대안으로 기부를 해서 집유 판결을 받았다는 것"이라며 "집유 조건으로서의 기부는 피고인의 개선이나 관행·사회의 변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었다.

설 판사는 이밖에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에 대해 "입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가 하면,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었다.

설 판사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1993년 사법시험(35회)에 합격한 후 법조계에 입문해 판사직을 수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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