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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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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힘!

[인권오름]육식 거부…내 삶의 작은 불복종

"없어서 못 먹는 사람도 많은데, 음식 갖고 까탈스럽게 굴기는…." 공개적으로 '채식'을 선언한 이들에게 종종 쏟아지는 힐난이다. 하지만 이런 힐난에도 불구하고 '채식'을 선언한 이들은 늘어가는 추세다. 단지 '건강'이나 '살 빼기'만을 위한 경우도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음식에 대한 까다로운 취향'의 수준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진보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달군 씨도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그에게 '채식'은 "'육식'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채식'이 건강에 이로와서라기보다 '육식' 문화가 낳은 사회적 폐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달군 씨에게 '채식'이 갖는 의미는 다양하다. 우선 생태계를 덜 파괴한다. 대규모 목장이나 사료 생산을 위한 농장 등은 모두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또 '곡물'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배고픈 이들에게 돌아갈 곡물의 양을 늘릴 수 있다. 실제로 쇠고기 1근을 얻으려면 7kg의 곡물과 약 1만 톤 가량의 물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결국 육식을 하던 1명이 채식을 하면 22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곡물이 절약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그가 육식을 거부한 이유는 많다. 암컷 동물에게 대리유모 역할을 강제하지 않기 위해, '비인간'인 모든 것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오만한 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등.
  
  하지만 한국에서 '채식'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함께 밥을 먹는 이들의 불편한 시선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진보 진영'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은 1년 전 '채식'을 시작한 후, 달군 씨가 겪은 경험과 고민을 담은 글이다. <편집자>
  
  살기 위해서 육식을 거부한다
  
  
살기 위해 무엇인가를 먹어야만 하죠. 결국 먹는 문제는 '사는 것'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먹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라서 중요성에 비해, 그것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게 되는 거 같아요. 모든 일상적인 것들이 그렇듯.
  
  1년 전에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육식에 경도된 지배문화 및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면서 채식을 한 번 시도해보면 어떨까 생각하면서도, 채식을 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까에 대해서서는 의심스러웠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저 거대한 (축산)자본에 어떤 공격이 되는 걸까? 무엇보다, 어떤 이들은 선택할 음식조차 없어 고통받고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권이 없을 수도 있는 세상인데. 내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맞는 걸까?
  
  그렇지만 생활 속의 실천이 가진 힘을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에게 일상의 작은 전복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일단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밥상머리 커밍아웃
  
  처음에는 채식을 한다고 밝히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스스로가 채식이라는 실천 방법에 대해서 의구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때라서 더욱 그랬겠지만, 하루 세 끼 먹는 시간마다 '나는 무엇을 먹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은 함께 밥 먹는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밥 먹을 때마다 자신이 '소수자'임을 인식하는 것도 힘들지만, 내 존재 자체로 불편함을 느끼고, 나 자체가 그들에게 정치적 공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런 힘든 상황을 피해 혼자 먹기도 했고, 또 사람들과 밥 먹다 말고 뾰족하게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상처 받았지요.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의 '배려'도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소수자'라는 이유로 밥 먹을 때마다 타인의 배려와 용인이 있어야 하다니"하며 억울해 했습니다.
  
  그러다 이러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하나의 실천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들을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육식을 하지 않는 이유들
  
  육식을 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미래의 '고기'를 키우기 위한 땅을 만들려고 열대 우림을 파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대규모 목장을 만들기 위해 원래 살고 있던 그 땅의 주인들을 몰아내거나 말살하거나 착취하지 않게 하기 위해, 지하수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 (죽여서 먹을) 동물을 먹이는 데 사용하지 않게 하기 위해, 또 '고기'를 생산할 동물들을 먹이려고 곡물을 대량 생산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곡물을 생산하지 못하게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 나는 육식을 거부합니다.
  
  또 육식은 지구 생태계의 종 다양성에서부터 문화 다양성까지 말살하기 때문에 거부합니다. 그리고 '암컷'을 보호하기 위해서 육식을 거부합니다. 육식지배 사회에서 동물의 암컷들은 죽임을 당해 고기가 되는 것은 물론 고기를 재생산하기 위한 능력으로 인해 착취당하며, 그 재생산 능력으로 인해 평생 대리 유모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인간 '암컷'들에게도 해당하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죠. 나는 여성이 재생산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억압받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먹는 것은 자본주의뿐 아니라 가부장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하는 것에 나는 반대하기에, 인간이 '비인간'인 것들을 모두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도 반대합니다.
  
  세계 최고의 적 "귀찮다"를 조금씩 극복할 수 있어
  
  또한 채식을 한다는 것은 '귀차니즘'을 극복하는 일이라는 사실도 발견하게 됐습니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 오면 식사시간에 사람들이 묻습니다. "귀찮지 않아요?" 야참으로 라면을 끓여 먹지 않고 국수를 삶고 있으면 어머니가 묻습니다. "귀찮지도 않냐?" 누군가 과자를 권했을 때도 일단 성분 표시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같은 질문이 날아오지요.
  
  그런데 어느 날 깨닫고 보니 나는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먹을거리를 만들고, 그런 기술을 익히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우리가 편리하고 쉽게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파괴하고,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채식은 나를 자립적이게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를 매일 성찰하는 것은 '일상을 바꾸는 정치'이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실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채식을 합니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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