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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을 밟아봐요!

추리소설이라기엔 너무 유쾌발랄해! [스텝파더 스텝]

신문의 북섹션마다 일본소설의 붐, '일류'가 한국에 불고 있다는 뉴스를 전한다. 두 명의 무라카미(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의 책이 전국 대학가를 휩쓸기 시작한 게 벌써 10년 전이고, 요시모토 바나나와 에쿠니 가오리가 꾸준한 고정 독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영화의 원작으로 소개된 아사다 지로와 재일교포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가 인기를 끈 것도 벌써 몇 년 전부터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다 보면 이런 뉴스들이 다소 호들갑스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장르소설들이 잘 먹히지 않는 국내의 독자들에게 유독 일본 추리소설이 요 몇 년 간 앞다퉈 출판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은 분명 기존의 몇몇 소설 및 작가의 인기와는 구분되는, 눈에 띄는 현상이긴 하다.
물밀 듯 들어온 일본 추리소설 중에서도 미야베 미유키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이다. 이른바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되는 그녀의 작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다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원한과 치정에 얽힌 살인과 여타 범죄가 아니라, 현재 일본사회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시사적인 사건들과 연관돼 있다. 문학동네, 프로메테우스, 랜덤하우스, 시아, 황매, 청어람 등 다양한 출판사들이 그녀의 작품을 내고 있는데, 북스피어의 경우 아예 '미야베월드'라는 타이틀 하에 8권의 작품을 시리즈로 낼 계획을 세우고 이미 3권을 출간했다. 그렇다면 미야베 미유키가 여타의 다른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들과 완전히 차별되는 지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추리소설과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 일 것이다. 연이어 벌어지는 심각한 사건들 사이로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할지언정, 그녀의 작품에서는 사건의 해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 앞에서 성숙해가는 인물이 더욱 중요하며, 이 인물에 대한 따뜻한 응원을 펼치는 동시에 독자들마저 그 응원에 끌어들인다는 점이,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독특한 점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책, [스텝파더 스텝](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2006)은 그녀의 대표작이나 최고작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다. 일단 심각함하고는 거리가 있는 데다, 소설이 견지하고 있는 유머와 밝은 분위기가 유려한 번역자의 문체와 어우러져 시도때도 없이 '쿡쿡대는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설정부터 죽이지 않는가. 부모가 각자 애인과 바람나서 도망간 뒤 빈 집에 남겨진 쌍둥이가, 마침 옆집을 털려다 번개맞고 기절해있는 도둑을 데려다 '가짜 아버지'로 내세우기로 계약을 맺는다니! 남들과는 쪼~금 다른 방식으로 '부의 재분배'를 진행하다가 얼떨결에 열세 살 쌍둥이의 애아빠 노릇을 하게 된 삼십대 중반의 주인공이나, 바람난 부모는 부모고 자기들끼리 평화롭게 살겠다고 마침 걸려든 도둑을 협박(!)해서 얼굴마담 격의 아버지 노릇을 부탁하는 쌍둥이나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 주변의 능청스러운 조연들은 물론 이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모험 역시, 일견 심각하다면 심각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따뜻하고 유쾌하고 즐거운 웃음을 선사한다. 소챕터당 한 에피소드씩 딱 7부작 코믹 추리 드라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 이 경쾌한 소설은, 그러나 단순히 웃음과 간단한 두뇌테스트용 추리만을 제공하진 않는다. 미야베 미유키가 추구하는 사회와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라는 주제는 비록 이 작품에서 가볍고 경쾌한 방식일지언정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은근한 향을 내뿜고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스텝파더 스텝]은 본격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워밍업하는 작품으로, 혹은 그녀의 '심각한' 작품을 이미 몇 권 읽은 상태라면 잠시 한숨 돌리며 쉬어가는 작품으로 딱이다. 물론 무료한 주말 저녁,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할 때 후딱 읽어치우고 기분 전환할 작품으로도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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