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을 바라보는 <미녀는 괴로워>의 흥행 롱런의 와중에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이름은 김아중 같은 주연배우의 이름이 아니다. 박무승 같은 투자자의 이름은 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사실 엔딩 크레딧 한켠으로 휙 지나치기 쉬운 노은희라는 이름이다. 영화계 '신삥'들은 노은희를 만나면 '뭐 하시는 분이에요?'라고 묻기 십상이지만 10년 이상 여기서 이 눈치밥 저 눈치밥 먹어 본 사람은 단박에 '아 그 노은희!'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그 노은희다. 10년 전 백두대간이 지금의 광화문 시절이 아니라 불광동에 처음 둥지를 틀고 나중에 북촌으로 옮겨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그 초창기 시절 이광모 감독과 정태성 당시 백두대간 이사(현 쇼박스 상무이사)와 함께 국내에 예술영화의 붐을 주도했던 바로 그 노은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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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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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초기의 백두대간 이광모 감독 밑에는 많은 인재들이 모여 있었다. 이광모 감독이 키운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노은희 프로듀서이며 노은희는 '배고픈' 백두대간 시절을 통해 영화를 제작하는 전 과정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비교적 고색창연한 순수 예술주의를 고집하는 순혈주의자 이광모 감독 밑에서 노은희와, 또 한편에서는 정태성 같은 대형 상업영화 프로듀서들이 나온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어쨌든 노은희는 백두대간의 초창기 멤버들이 해체되던 2002년께 영화계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나타난 것이 구자홍 감독의 <마지막 늑대> 때였다. 막 뜨기 시작한 황정민과 양동근을 캐스팅하며 의욕적으로 시장에 나온 이 영화는 그러나, 흥행에서는 참패를 면치 못했다. <마지막 늑대>의 실패로 영화계를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씻고 노은희는 이번 영화 <미녀는 괴로워>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제 그녀는 당당하게 대박영화의 흥행 프로듀서가 됐다. <미녀는 괴로워>를 만들기까지 그녀는 시나리오를 무려 14고까지 수정하며 감독을 너댓명이나 갈아치우는 '괴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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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극장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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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희만큼 오래됐고, 또 '늙고 낡은' 영화판 사람들과 이렇게 저렇게 연이 닿아 있는 황윤경 프로듀서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명이다. 이 사람 역시 영화사에 들어 온지 얼마되지 않은 신입들로부터 자칫 '잡상인' 취급을 받을 우려가 있지만 TV프로덕션이나 작은 영화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던 사람들이라면 특히 '아 그 황윤경!'이라고 말할 사람이다. 황윤경은 본디 국내 전설의 TV 외주제작사이자 다큐멘터리 프로덕션인 '인디컴'의 주요 멤버였다. '인디컴' 활동 당시 기획했던 영화가 바로, 한국 최초의 뮤지컬영화를 표방했지만 중간에 '엎어진' 안성기 주연의 <미스터 레이디>였다. 그 한을 풀다 풀다 못풀어 황윤경이 만든 작품이 저예산 최고의 뮤지컬 영화라는 소리를 들으며 지난 해 화제를 모았던 <삼거리 극장>이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황윤경이라는 이름이 뜰 때 남몰래 감동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 건 그때문이다. 황윤경 프로듀서가 '인디컴' 시절 전 '이우영상'이란 영화사에서 영화 '숏컷' 등을 수입할 때부터 그녀와 친분을 쌓아왔던 윤태용 감독(<소년, 천국에 가다>)은 시사회에서 황윤경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다. "(이런 훌륭한 영화를 만들었으니) 이제 그만 은퇴해도 돼!" 하지만 그녀의 프로듀서작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어찌 은퇴하겠는가. 지금은 LJ필름에서 차기작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영화판 경력 10년이 넘은 여걸 둘의 와신상담, 출세작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 한편은 이렇게 10년 공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근데 그걸 관객들이 알까?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 이 기사는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265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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