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집권 1년 만에 둘로 갈라지더니 정권의 끝물에 가서 또 다시 쪼개졌다. 60년 헌정사에 수많은 정당이 명멸했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에, 한 정권 아래에서 두 번이나 분당한 일은 유례가 없다. 당을 깨고 만드는 재주만큼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 같다.
한번은 총선용이었다. 그래도 그땐 정치개혁, 구태정치 청산, 지역주의 극복 등 그럴싸한 변이라도 있었다. 이번엔 대선용이다. 다시 한 번 '집권여당'이 되겠다고 만드는 당인데 어떤 당을 만들겠다는 건지 모호하다. 그저 "열린우리당 중심의 통합신당 창당은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뿐이다.
분당을 주도한 사람들은 책임을 묻기조차 겸연쩍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다. 바로 엊그제까지 당의 요로에서 정책을 주무르던 원내대표와 원내대표단, 정책위의장, 정조위원장에 현직 상임위원장도 세 명이다. 이념적으로는 관료 출신, 실용파 진영이 많다. 이들이 한나라당과 별반 차이 없는 정책을 주도해 왔으니 이것으로 이들의 노선을 짐작할 수는 있겠다.
이들은 탈당 성명을 읽어 내리기 전에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참회의 포토제닉'이었다. 그리곤 "기득권을 선도적으로 포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들이 포기한 기득권은 열린우리당 간판이었다. 폐가나 다름없는 당을 버리고 나온 게 참회의 징표라는 얘기다.
내심은 빨리 당을 나가서 새로운 기득권을 먼저 쥐고 싶은 것 같았다. 이들이 왜 교섭단체 구성에 목을 맸는지를 봐도 알만하다. 허허벌판에 가건물 하나 지어놓고 나중에 주인행세 하려는 심산이다. 이게 "국민통합신당의 밀알이 되겠다"는 말로 포장돼 나왔다.
'정치낭인' 소리가 싫으면
이들의 '선도 탈당'이 아니어도 열린우리당의 붕괴는 시간 문제다. 당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우리당 간판으로 치르는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십중팔구다. 2.14 전당대회 뒤로 탈당 시점을 미룬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그러하기에 서둘러 당을 나간 사람들의 조급증이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눈치보기나 별반 다를 바는 없다.
다만 어느 야당 대변인이 쏘아붙인, "정치낭인"이라는 치욕의 말이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당을 떠난 사람이건 며칠 더 남아 있기로 한 사람이건 최소한의 진정성은 보여야 한다. 적어도 대표성을 가진 의원들이라면 의원 배지쯤은 던졌어야 도리가 아니냐는 지적은 다시 한 번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분명히 해야 할 건 또 있다. 정당정치의 본령인 책임정치는 엿 바꿔 먹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기가 없다는 게 이들이 딴살림을 차린 가장 큰 이유일 게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가 측근의 권력형 비리 따위가 아닌 국정 실패의 책임에 따른 것이라면 집권여당 역시 3년 영화의 뒤끝에는 그에 대한 통렬한 맹성과 자기고백이 따라야 함이 당연지사다. 얼마 전까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공동운명체"라고 떠들던 사람들 아닌가.
헌신짝이 된 대통령을 버리고 당의 간판을 바꿔다는 눈속임으로 '공동운명체'의 책임을 회피한다면 이는 대통령과 자신들을 뽑아 준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자 집권에 대한 구걸일 수밖에 없다.
또한 기왕 헤어진 것이면 각자가 주장하는 이념과 정체성에 따라 깨끗이 갈라서는 게 선거용 대통합보다 발전적이다. 물과 기름 같은 사람들이 잠시 후 다시 만날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건 위장이혼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얼마 전까지 "친북 좌파"니 "한나라당에 더 가까운 사람"이니 하며 치고받은 일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더욱 그렇다.
이는 노선과 정책이 아닌 지역에 따라, 공천권을 쥔 실력자의 호각소리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해 온 우리 정당사의 악순환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바람직하다. '반(反)한나라당 연대'라는 말로 집권지상주의를 유포하며 또 하나의 지역정당, 포말정당, 잡탕정당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면 '재혼 불가' 선언이라도 하는 게 어떨는지….
그게 한 정권 기간 동안 두 번이나 갈라서는 진기록을 남긴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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