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표가 또 한번 사고를 쳤다. 이렇게까지 이 영화가 초반 흥행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CJ엔터테인먼트의 배급력이 크게 작용하긴 했다. <그놈 목소리>의 첫주 전국 스크린수는 물경 530개. 하지만 뭐, <중천>은 그렇지 않았던가. 역시 배급력은 알파 플러스의 작용일 뿐, 본질적인 힘은 아니다. 작품의 힘, 이야기의 힘이 중요하다. 첫주 전국 150만 이상을 모은 <그놈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그점을 상기시킨다. 박진표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너는 내 운명>에 이어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또한번 입증받았다. 그의 앞길은 당분간 탄탄할 것이다. 인디영화 <죽어도 좋아>로 데뷔했을 때를 생각하면 상황이 변해도 크게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박진표의 장점은 바로 그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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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목소리 ⓒ프레시안무비 |
지난 주 흥행 1위 자리에 올랐던 <최강 로맨스>가 한주 만에 2위로 처졌다. 순위는 상위권이지만 그 기세가 확 꺾였다. 물론 이런 류의 영화가 1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는 건 감지덕지한 일일 수 있다. 무엇을 위한 영화인가. 영화를 보다 보면 우울해지고 그러다 보면 아예 한국영화를 찾지 않게 될 것 같아 더 우울해진다. 중국의 460억원짜리 영화 '황후花'가 감독 장이모우의 이름값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개봉 2주째, 전국 80만 관객을 넘겼으며 요즘 개봉되는 중국산 영화치고는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다. 극장에 가보면 40대 이상의 장년층이 이 영화를 보러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장년층은 역시 사극을 좋아하는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4,50대의 틈새시장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인 셈이다. <클릭><아포칼립토><미스 포터><스쿠프> 등의 흥행기록을 보면서 확실히 요즘 관객들이 영어권 영화에 대해 예전만 같지 않은 감정들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담 샌들러건 르네 젤위거건 이제는 한국 극장가에서 별로 통하는 기색이 없다. 이럴지니 국내에 진출해 있는 할리우드 메이저들이 서로 몸을 섞는다 어쩐다 하며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영화가 안된다는 것을 두고 마음아파할 하등의 이유는 물론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처럼 논쟁이 가득한 영화는 조금만 더 관심을 받았으면 좋았을 성 싶다. 멜 깁슨이 문제적 감독인지 아니면 미친 감독인지 바깥에서는 말이 많은데 여기서는 일언반구 관심이 없다. 그래도 17만명 정도가 이 영화를 봤다면 요즘 추세로 볼 때 괜찮은 것인가. 안타까워 해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다행이라며 안심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우디 앨런 감독의 <스쿠프>는 비상업영화 전문수입사이자 극장체인인 스폰지가 의욕적으로 100개까지 스크린을 벌려 개봉했지만 달랑 4만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다. 젊은 관객들이 스칼렛 요한슨이라면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정말로 외화로 성과를 내기가 도통 어려운 나라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됐다. 세계영화계에서 참 드문 시장이다. 다 좋은데, 반복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균형감각이 생겼으면 좋을 성싶다. 괜찮은 영화는 괜찮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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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태권브이>와 <천년여우 여우비>는 애니메이션치고 상당한 수준의 반응을 얻고 있다. 그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겨울방학 특수 덕을 보고 있는 것이라는 점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 애니메이션이 시장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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