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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사법부 오판 시정 기회 2번이나 놓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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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사법부 오판 시정 기회 2번이나 놓쳐"

재심 청구 2번 거절당한 '신귀영 간첩사건' 재심 권고

최근 '인혁당 재건위' 재심 사건 무죄 선고로 '긴급조치' 등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내려진 법원 판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법원은 재심에 인색했던 것이 사실. 두 번이나 법원에서 재심이 거부당한 '신귀영(71) 씨 간첩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진실화해위)는 6일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며 "법원의 재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군부가 등장한 1980년 간첩 혐의로 체포·기소돼 징역 15년의 형기를 모두 채우고 1995년 출소한 신 씨는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에 대해 '억울하다'며 법원에 두 차례의 재심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당했다.

신 씨는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 귀국해 외항선원이 됐다. 70년대 수출선을 타고 일본에 갈 기회가 생긴 신 씨는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서 자리 잡은 형을 만났다. 신 씨보다 형편이 나았던 신 씨의 형은 그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부산경찰서는 신 씨를 군사기밀을 탐지해 조총련 간부에게 유출했다는 혐의로 연행해 조사를 벌였고, 신 씨의 사촌 등 2명 역시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검찰에 넘겨져 재판을 받고 10~15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 한국인권재단의 심포지움에서 증언으 하고 있는 신귀영 씨. ⓒ프레시안

"아래선 인정하는데 위에만 가면…"


불법체포와 고문에 의해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신 씨는 1994년 처음 재심을 청구했다. 1심이었던 부산지법은 95년 7월 "피고인들의 검찰에서의 자백 등은 진술의 신빙성이 박약한 증거일 개연성이 크고, 신 씨의 형이 조총련 간부가 아니라는 진술서를 더하면 확정판결은 범죄사실에 대한 충분한 증명이 없는 상태에서 간첩행위 등을 유죄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재심 결정을 내렸다.

2심인 부산고법도 같은 해 8월 "확정판결이 범죄사실을 정당하게 인정했는지 여부에 관해 의문을 일으키게 한다"며 역시 재심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같은해 11월 대법원은 신 씨 형의 '조총련 간부가 아니다'라는 진술서를 부정하며 재심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부산고법은 3년여가 흐른 1997년 9월에야 "진술서 등이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재심 결정을 거부했고, 대법원도 1998년 2월 재심 결정 거부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신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1999년 7월 부산지법에 다시 재심을 청구했고, 부산지법은 2001년 8월 "재심사유가 있다"며 재심을 결정했다. 그러나 부산고법은 2002년 7월 "증인들의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인터뷰나 민사소송에서의 증언만으로 확정판결에서 증언이 허위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1심의 재심 결정을 뒤집었다. 당시는 방송사 등에서 신 씨에 대한 판결의 오류를 지적하는 보도를 내보낸 뒤였지만 법원은 이를 '새로운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도 2004년 6월 "수사기관의 고문이나 감금 등 범죄행위로 얻어진 것임을 인정할 증명이 있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재심 거부 결정을 확정했다.

진실화해위 "불법체포·고문·판결오류 명백"

그러나 진실화해위는 조사를 통해 신 씨가 불법체포를 당해 불법적인 구금 상태에서 고문에 의해 허위 자백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신 씨를 수사한 경찰관들을 직접 조사해 "불법감금이 불가피했다"는 진술을 얻었고, "몽둥이 찜질은 기본이었다"는 진술 등을 근거로 당시 수사가 위법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이 사실만으로도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또 신 씨 등의 간첩 혐의에 대한 판결문을 분석해 판결문의 오류를 지적했다. 판결문에는 1972년 광복동 모 서점에서 피고인들이 지도를 구입했다고 돼 있으나 확인 결과 그 자리에 서점이 생긴 것은 1974년이었고, 판결문에는 1966년 버스를 타고 탄약창 근처에 가 사진을 찍었다고 돼 있으나 탄약창 근처로 가는 도로가 개설된 것은 1970년이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과 다른 진술 및 범죄사실이 상당부분 확인됐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순점들은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는 반증을 의미한다"고 결론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이어 "피해자들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고, 범죄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도의 개연성이 확인됐다"며 "확정판결은 범죄사실에 대한 별다른 증명이 없는 상태에서 증거재판주의에 위반해 피해자들을 유죄로 처벌한 위법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진실화해위 "사법부, 오판 시정할 기회 저버린 처사 유감"

진실화해위는 특히 "피해자들이 제기한 1차 재심청구에 대해 대법원이, 2차 재심청구에 대해 부산고법과 대법원이 종전의 입장에서 하급심의 재심개시 결정을 2차례 뒤집은 것은 무고한 피해자들을 9년에서 15년이라는 중형으로 처벌한 오판을 시정할 기회를 저버린 처사로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법원을 비판했다.

진실화해위는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법원에 권고했다. 또 정부에게는 "국가는 수사과정에서의 불법감금 및 가혹행위에 기한 허위 조작, 자백에 의존한 무리한 기소 및 유죄판결 등에 대해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총체적으로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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