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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와 차병직이 보는 '사법부 과거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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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천정배와 차병직이 보는 '사법부 과거 청산'

[화제의 책]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

최근 '인혁당 재건위' 재심 사건 무죄 판결, 진실화해위원회의 '긴급조치' 판결 분석 공개 등으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방식에 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현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낸 천정배 의원과 참여연대의 상임집행위원장인 차병직 변호사, 두 '법원 밖의 법조인'이 사법부의 과거 청산 방식에 대해 나눈 대화가 책으로 나와 눈길을 끈다.

2일 출간된 천정배 의원과 차병직 변호사의 대화를 엮은 책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법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도서출판 강 펴냄)은 '사법개혁',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인권', 'NGO와 정치' 등 법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주제로 벌인 두 사람의 토론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대화는 천 의원이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5월 무렵 이뤄졌다.

천정배 "사법부 인적 청산, 사법부 인사권자에게 맡기는 수밖에"
▲ 천정배 의원. ⓒ김중만

그 중 '사법부의 과거 청산'에 대해 천 의원은 "법원의 과거 청산에도 두 부분이 있는데, 잘못된 재판의 청산과 그 재판에 관여했던 법관들의 인적 청산"이라고 갈래를 나눠서 접근했다.

천 의원은 사법부의 '인적 청산'에 대해 "인권 유린 행위자들의 처벌과 달리 그 선별이나 판단이 쉽지 않다"며 "재판 행위 자체가 명백히 범죄행위를 구성하지 않는 한, 판사의 사실 판단이나 법률 판단을 정의나 부정의의 기준으로 재단하기는 극히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천 의원은 "하지만 권력추수형이랄까, 분명히 정치적 의도에 따라 행한 재판 행위도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천 의원은 "그런 경우는 일단 사법부의 인사권자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다"며 대법원장의 의지와 결단에 비중을 뒀다. 천 의원은 또 "일반 과거 청산 대상자를 정치적 또는 사회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의견과 같은 결론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차병직 "법원의 우유부단함은 전통의 체면 때문…완전한 착각"

법원의 '인적청산'에 대해 차 변호사는 천 의원의 '사회적 청산'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현재 대법원의 태도를 보면 인적 청산의 의지는 극히 의심스럽다"며 "과거의 인적 청산은커녕 현재의 인적 청산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차 변호사는 "법원은 세상의 범죄자를 심판하기 전에 내부의 범죄자부터 먼저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며 "이런 법원의 전통적인 우유부단함은 역시 전통의 체면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법원 내부의 법조비리 연루자들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를 겨냥한 것이다.

차 변호사는 "가능한 한 숨겨서 파장을 작게 하는 것이 그나마 법원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며 "내부 비행자를 냉정하게 징계하는 것이 오히려 상식적이고 정당한 권위를 세우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병직 "사법부 과거청산위 구성해 재심 대상 사건 심사·결정해야"

이어 차 변호사는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아야 함을 역설했다. 차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재판으로 확정된 사안들은 다시 재판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들이 지배적인 것 같다"며 "그래서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재심"이라고 말했다.

차 변호사는 이어 "현재 우리 소송법상 재심 사유는 극히 제한적이란 불평들이 많다"며 "따라서 과거 청산의 수단으로 재심 제도를 이용하려면 재심 요건을 완화할 수밖에 없고, 재심 요건을 완화하려면 우선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 변호사는 "재심의 문을 조금 더 열어놓으면 국민의 권리 구제와 관련해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일반적인 법적 안정성이나 재판의 경제성과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부정적이고, 남용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차 변호사는 "우리 사법부에서 과거 청산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재판 결과는 그 수가 한정돼 있고, 특히 그것조차도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며 "그렇다면 그 사건들의 해결에 집중하면 될 것"이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차 변호사는 구체적 방법으로 "과거와 미래의 모든 사건에 대해 재심 요건을 완화할 것이 아니라, 특정 사건에 대한 재심 가능성만 열어두면 된다"면서 "사법부 과거 청산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한 다음, 그 위원회에서 재심 대상으로 할 사건을 심사해 결정하도록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처럼 법원이 재판 피해자들의 재심 청구만 기다리고 있지 말고, 재심이 이뤄지도록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1972~87년 사이의 공안·시국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분석해 재심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사건 224건을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행 형사소송법상 재심청구는 당사자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대법원은 '파악' 이상의 조취를 취하지 않고 있고, 일각에서는 재심 대상 사건 판단의 객관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차병직 변호사. ⓒ김중만

천정배 "고 최종길 교수 손배소송 항소심…전전긍긍"

이 책에는 고 최종길 교수 유족들의 국가를 상대로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당시 법무부장관으로 '피고'였던 천정배 의원이 "소멸시효 항변을 철회하자"고 주장했던 일화가 소개돼 있기도 하다.

천 의원은 "법률에 따라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국가의 소송 대표자는 법무부장관"이라며 "1심 재판 결과를 보니 국가 측에서 한 소멸시효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원고인 유족 측의 청구가 기각됐는데, 항소심에 가서 솔직히 내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최종길 교수는 1973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1심 재판부는 3~5년인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천 의원은 "그대로 원고가 또 패소하는 것은 정의에든 사리에든 맞지 않는다고 믿었고, 그래서 법무부 간부와 상의하며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우리가 아예 소멸시효 항변을 철회하자. 그래서 법원에서 소멸시효에 관계없이 판단하게 만들자'라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천 의원이 판단하기에 민사상 소멸시효는 피고 쪽에서 주장하지 않으면 법원이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피고로서의 방어 의무를 포기하자는 얘기였던 셈이다.

다만 법무부 관계자가 "그렇게 하기보다는 그 문제를 이 사건에 한정해서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유사한 모든 사건을 구제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만들자"고 더 적극적인 제안을 했고, 천 의원도 이를 받아들여 '입법 기간'을 고려해 항소심 재판부에 "재판을 일시 정지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천정배 "재판에서 지고도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2006년 2월 법무부의 요청을 무시하고 선고기일을 잡아 "중대한 인권침해를 한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며 국가 손해배상 책임의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고, 국가는 최 교수의 유족들에게 18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천 의원이 '바라던 대로' 판결이 내려진 셈이다.

천 의원은 "상당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피고 패소 판결을 선고해 유족들이 이겼다"며 "재판에서 지고도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에 대해 차병직 변호사는 "일반 변호사였다면 아주 형편없는 재판을 했다고 법조계에서 쫓겨날 뻔한 일"이라며 "하지만 법무부장관으로서는 과거 청산의 한 부분으로 현명한 작전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고 답했다.

차 변호사는 또 "법원으로서도 시효가 완성돼 소멸한 권리를 되살려주면서 흐뭇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시작은 비슷하나 현재 다른 곳에 서 있는 두 법조인의 대화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법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 ⓒ도서출판 강

1972년 서울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뒤 76년 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천정배. 그는 군 법무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압수한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면서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 있던 데다 이어서 광주항쟁 등이 터졌고, 그런 시국에서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을 보고는, 죽어도 그런 사람에게서 판사나 검사 임명장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1981년 사회에 진출하며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그 이후 조영래 변호사와 인연이 닿아 '인권 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고, 정치에 입문해 15, 16, 17대(현직)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제57대 법무부장관도 지냈다.

1978년 고려대 법대에 입학한 뒤 1983년 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차병직. 그는 "법대 다닐 때 법철학을 가르치신 심재우 교수님에게서 '인권 보장'을 매 수업 시간마다 빠짐없이 들어 인권에 대해 세뇌 교육을 받은 셈"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였지만 "'아, 이것이 인권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 것은 박원순 변호사의 권유로 민변 활동과 참여연대의 창설에 끼어들면서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참여연대에 속했다가 독립한 인권운동사랑방의 서준식 대표와 만나면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은 비슷했지만 현재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정치계에, 한 사람은 시민운동계에 서 있다. 이 둘이 만나 법과 형벌제도, 사법개혁,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인권, 시민운동과 정치 등 두 사람이 머릿속에 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대화를 엮은 책이 <여기가 로도스…>다.

두 사람 사이에서 '사회'를 본 소설가 서해성 씨는 "내가 보기에 법 공부하고 변호사 노릇을 했다는 점에서 둘은 얼핏 같아 보이면서도 퍽 달랐다"며 "'국민'이라는 말이 나올 때면 천정배는 목울대가 불거지는 편이었고, 차병직은 '시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라치면 저음이 한껏 낮게 깔리는 축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책의 부제에는 '법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주제목인 '여기가 로도스…'는 헤겔의 '법철학' 서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책 제목으로 삼은 사연은 차 변호사의 대학교 입학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 변호사는 "고려대 입학식에서 당시 김상협 총장이 헤겔의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여기 장미꽃이 피어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라는 구절을 패러디해 '여기에서 춤추어라'는 제목으로 입학식사를 했다"며 "환상과 허구, 불가능의 나라에 닿기 위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우리가 발을 딛고 선 바로 여기, 지상에 확실히 존재하는 현실의 땅에서, 비록 불만족스럽더라도 최선의 성과를 이루도록 노력하라는 격려였다"고 회고했다.

차 변호사는 "젊은 사람들, 특히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점에서 책 제목을 '여기가 로도스…'로 했으면 한다"고 제안했고, 천 의원이 동의해 책 제목이 정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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