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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도 노조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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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도 노조 만들 수 있다"

고법 "노동부의 설립신고서 반려, 근거 없다"

그 동안 가로 막혀 왔던 이주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는 판결이 1일 처음으로 나왔다.

노동부가 지난 2005년 이주 노동자들이 낸 노조설립신고서를 반려함으로써 이주노동자의 노조 설립 권한에 제동을 걸었던 것과 관련해, 서울고등법원 제11특별부 재판부(재판장 김수형 판자)는 이날 "서울지방노동청은 이주노동자 노조에 대해 한 노조 설립 신고서 반려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노동부의 결정을 뒤집고 이주노동자의 노조 설립권을 최로로 인정한 것이다. 이주노동자 노조는 즉각 환영 성명을 내고 "노동부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여 이주노조를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고법, 1심 판결 뒤집어…"노동부, 조합원 체류자격 심사권한 없다"
▲ 지난 2005년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출범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조는 지난 2005년 5월 서울지방노동청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노조가 보완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즉 불법체류자가 노조의 주된 구성원이라는 점을 들어 설립필증을 내주지 않았다.

노조는 같은 해 7월 행정법원에 반려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냈지만 행정법원은 지난해 2월 이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인만큼 출입국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관련 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하지만 서울 고법은 "불법체류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이상 노동조합 결성과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조합원의 대다수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노조 설립 신고서를 반려한 노동부의 입장과 관련해, 재판부는 "노동부는 노조의 조합원이 적법한 체류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심사할 권한이 없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노동부가 이를 심사하기 위해 아무런 법령상 근거 없이 이주노조에 대해 조합원 명부의 제출을 요구하고 그 보완요구를 거절했다고 신고서를 반려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주노조 "숨죽이는 40만 이주노동자에게 한 줄기 희망 되길"

소송 당사자인 이주노조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주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들을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 행정기관의 인식을 깨고 최초로 이주노동자들을 노동의 한 주체로 인정한 것"이라면서 "이 판결이 지금 이 순간에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단속추방 때문에 숨죽이고 사는 40만 이주노동자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주노조는 이어 "노동부는 지금 당장 이주노조 설립신고를 받아들이고 이주노조를 인정해야 한다"며 "앞으로 이주노동자의 인권 및 노동권 확보를 위해 애쓰는 노동부가 되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성명을 통해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상태에서 근로관계를 맺고 있다 하더라도 그 근로관계의 실질이 부정되거나 노동관계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 근로관계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판결이 우리 사회에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보장과 권익 신장을 위한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선택은?…'노예 같은' 현실 바꾸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 많다
▲ 서울 고법에서 이주노동자의 노조 설립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노예 같은' 현실을 바꾸려면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프레시안

처음으로 법원에서 이주노동자의 노조 설립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나온 것은 열악한 이주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 있어 획기적인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대법원 판결 등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아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1995년 "불법취업의 경우 당사자는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상대방에 대해 근로계약상의 의무이행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해 사실상 불법체류자의 노조 설립 등을 통한 권리 주장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따라서 대법원이 고법의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노조 인정이 곧바로 열악한 처지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고법의 판결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정식 노조로 인정받아 합법적인 틀 안에서 권리 보장을 요구할 수 있다면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얻는 일이 지금보다는 수월해지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가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어 조직화도 쉽지가 않다.

이주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의 중요성은 분명하나 끝이라기보다는 갈 길이 먼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의 단속추방정책과 노동자성 불인정으로 인한 노예 같은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화에도 힘을 더 쏟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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