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남겨 놓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유동적인 결론이기는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을 이주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이제 이주노동자는 한국의 생산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력이다. 특히나 한국인들이 취업을 꺼리는 영세 소기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경험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다소 미숙한 측면은 있겠지만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제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아직도 '이방인'일 뿐이다. 물론 개별 노동자로 보면 이들은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이주자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돌아가더라도 이들의 빈 자리는 또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와 메꿀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이미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포함한 새로운 '우리', 새로운 '공동체' 개념을 만들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에서 온갖 차별과 멸시를 겪다 돌아간 수십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를 생각하면 그것조차 너무 늦었지만,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된다.
오랫동안 이들을 위해 일해 온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석원정 소장은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익숙한 모든 것에 이주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적응하기를 강요하는 태도로는 한국 사회를 새로운 공동체로 구성하는 일이 영원히 해결하지 못하리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그가 상담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훌륭한 교과서인 셈이다. <프레시안>은 현장에서 다양한 문제로 이주노동자들을 상담해 온 그의 글을 20여 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초원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보니…"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 학술적으로는 '자신이 살던 지역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주하여 임금을 대가로 노동하는 사람'이다.
이주노동자 지원활동가들에게 정의를 내려보라고 한다면? 어떤 활동가는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뿌리를 싹둑 잘라 생판 다른 토양에 심어놓은 풀 한 포기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적어도 '한 사람이 신천지에 적응해내기 위해서 내지르는 소쩍새 울음'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목격해야 하는 활동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감성에 따라 정의 내리지 건조하게 말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20대 후반의 한 젊은 몽골 남자가 상담소를 찾아왔다. 그날 아침에 사업주로부터 갑작스런 해고통고를 받고 어찌할 바를 몰라 상담소로 달려온 것이다. 취업한 지 고작 한 달이 됐을 뿐이었다.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한데 사업주가 왜 해고했느냐고 물었더니 이유를 정확히 대지 못했다.
세상에 이유 없는 무덤이 어디 있는가. 그렇게 갑작스레 해고를 했다면 사업주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 그간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이런 경우 회사에 연락하면 십중팔구 당사자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자칫 상담소에서 말을 잘못 하기라도 하면 회사 쪽으로부터 진탕 욕이나 먹기 십상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고 회사로 전화해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업주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 공장에는 입사날짜가 비슷한 몽골남성 여섯 명이 일하고 있었다. 처음이라 일이 서툴긴 했지만 나름대로 일을 익혀갔고 그런 대로 무난하게 일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 달이 잘 흘러갔고, 월급날이 되어 기분 좋게 월급을 주고 또 받았다. 그게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러니까 바로 어제였다. 아침에 공장에 갔더니 이 몽골 남자들이 한 사람도 출근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냐' 싶어서 숙소로 가보았더니, 술병이 쌓여 있고, 방안에 술 냄새는 진동하고, 모두들 쿨쿨 자고 있었단다. 흔들어 깨워보았지만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근 하더라고.
그 멀쩡한 얼굴들을 보고 화가 나지 않을 사업주가 어디 있겠는가. 잔뜩 열 받은 사업주, 대뜸 "나가!"라고 소리친 것이다.
매우 부드러운 말투로 사업주에게 "너무 화내지 마시라. 일단 본인들에게 왜 그랬는지를 물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사자들에게 확인을 해보았더니 사실이었다.
"아니, 그렇게 술을 많이 먹고 집단으로 결근하면 어떡해요. 도대체 왜 그랬어요? 전날 무슨 일이 있었어요?"
기가 막혀 하는 상담원의 표정과 말투에 약간 기가 죽어 주섬주섬 늘어놓는 이 친구의 변명.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한국 와서 아침 8시 반부터 하루 12시간 씩 일했다. 몽골에선 그렇게 많은 시간을 일하지 않는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으니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간만에 친구들하고 술을 좀 마셨다. 소주하고 맥주. 소주는 몽골의 보드카와 맛이 비슷하면서도 훨씬 순했다. 아주 순하게 목으로 술술 넘어가더라. 많이 먹지는 않았는데 그냥 좀…."
그 변명에 통역자와 상담원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몽골이 한국처럼 아둥바둥 쫓기듯 살아야 하는 산업사회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참 대책 없는 젊은 친구들이지 않은가. 9월부터 시작되는 겨울이면 달리 할 일이 없으니 부지런을 떨 필요가 없고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 속에서 보드카를 즐겨 마시는 몽골인들의 생활을 생각하면 철이 없다고 하기도 그렇고, 너무 열심히 일해서 좀 쉬어야겠다며 무단결근하는 대담함을 보면 안쓰럽다고 하기도 그렇고, 웃음이 나올 수밖에. 한참 웃고 나서 약속을 받아냈다.
"사장님에게 다시 연락해서 얘기를 잘 해보겠지만 무엇보다 본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사장님에게 사과해라. 다음에 술을 마시고 싶을 때는 휴일 전날 마셔라" 등등 몇 가지를 일러주고 사업주에게 다시 연락했다.
'젊은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서, 그것도 외국에서 안 해 본 힘든 일을 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일은 잘 하더라고 사장님도 인정하시지 않았느냐. 새 사람 채용하시는 것보다 일도 웬만하게 익혔으니 그냥 채용하시는 게 낫지 않겠냐. 본인도 실수한 걸 알고 있고, 그 회사 계속 다니고 싶어 한다. 그러니 이번엔 이해해주시라….'
드디어 사업주에게서 반승낙을 받아놓고, 얼른 공장으로 가라고 돌려보냈다.
걱정이 조금 가신 표정으로 씩 웃으면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니 얼마 전 찾아왔던 다른 몽골인이 생각났다. 그 사람도 졸지에 해고당한 사람이었다. 회사에 전화해서 해고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사모님이라는 사람이 팔팔 뛰면서 불만을 쏟아놓았다.
그 중에는 "수세식 변기에서 볼일 보고는 물도 내리지 않더라. 그게 다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그런다"는 대목도 있었다.
그 말을 할 때 사모님의 어투는 단지 불만의 표출만이 아니었다. 혐오감이 섞여 있는 사모님을 상대해주면서 정말 짜증나겠다고 그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부분에 대해 공개적으로 무안을 당했을 그 몽골남성을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야외에서 볼일 보는 게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살아 온 사람한테 수세식 변기의 물을 내리는 게 그렇게 쉽게 습관이 들겠는가 말이다.
이들이 한국생활에 적응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해프닝이 벌어질까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생활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새 환경에 적응할 여유도 갖지 못하고 내몰리는 현실이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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