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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과거사 청산 위해 움직일까? "…"

대법원 재심대상 224건 선정…'입법'-'재심' 동시 고민중

진실화해위원회의 '긴급조치 판결분석 보고서'가 공개된 가운데 대법원은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실명 공개라는) 방식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사법부의 과거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와 관련해 대법원이 사법부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1972~87년 사이의 시국·공안 사건 중 재심 대상 사건을 이미 분류한 것으로 알려져 대법원의 차후 행보는 '재심'과 '별도 입법'의 두 갈래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법원 "몇몇 현직 법관 아니라 사법시스템 전체가 짊어질 과오"

대법원은 보도자료에서 "진실화해위원회의 논의가 진실과 화해를 향한 바람직한 길로 가는 데 보탬이 되길 소망한다"면서 "사법부가 법의 지배를 실현하며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지지와 성원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대법원은 다만 "30년 전 시대 상황에서 사법시스템 전체가 짊어질 과오를 우연히 현직에 남은 몇 명의 현직 법관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결코 진실과 화해에 바탕을 둔 미래지향적인 과거사 정리를 이룩할 수 없다"며 "긴급조치와 관련된 판결은 당시 실정법 처벌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한 결과이므로 개별 판결의 잘잘못을 따지는 재심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되기는 어렵고 입법을 통한 해결과 같은 포괄적인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재심대상 사건 224건 분류

이와는 별도로 대법원이 2005년 9월부터 1년간 판결분석을 통해 유신 이후부터 전두환 정권까지(1972~87년) 시국·공안 사건 중 불법 구금과 고문 등 재심 사유가 있는 사건 224건을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대법원이 분류한 224건 중 간첩사건이 141건(62.9%)으로 절반이 넘고, 이 사건에는 1981년 진도 간첩단 사건, 1983년 납북어부 간첩 사건, 1982년 송 씨 일가 간첩단 사건 등 주요 간첩 사건이 포함됐다.

이밖에 긴급조치 위반 사건이 26건(11.6%), 반국가단체구성 사건이 13건(5.8%),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이 12건(5.4%), 기타가 32(14.3%)건인 것으로 전해졌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분석한 긴급조치 위반 사건만 1412건인데 대법원이 재심 대상으로 분류한 '긴조 사건'이 적은 이유는 당시 긴급조치 9호 위반자 중 상당수가 재판 진행 중 79년 긴급조치의 해제로 면소 판결을 받았고, 또 당시 법체계에서는 긴급조치 위반도 실정법 위반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재심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재심'과 '입법' 두 가지 방향 고려…당장 움직일지는 미지수

재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불법 감금·고문 등에 의한 증거 조작이 입증되거나 새로운 증거가 발견돼야 하는 등 재심 인정을 받기 까다롭다. 주요 인사들의 긴조위반이나 시국·간첩 사건은 불법 감금이나 고문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아 재심 대상에 해당되지만, 재심 사유를 엄격히 해석할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을 욕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상당수의 긴조사건이 재심 대상에서는 벗어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긴조위반 사건의 경우는 특별법 등 입법의 형태로 구제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입법을 통한 해결과 같은 포괄적인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대법원의 입장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파악된다.

다만 최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같이 불법감금·고문이 수반된 사건의 경우에는 재심의 문호를 넓히는 방향으로 해결책이 모색될 전망이다. '제도적' 방식과 '재심'의 방식 두 가지가 모두 고려되고 있는 셈이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대법원 관계자는 "최근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대법원으로 올라오면 과거 사건들에 대한 사법부의 견해를 판결문에 담으려 했으나, 검찰의 항소 포기로 불가능해졌다"며 "그러나 인혁당 사건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사건이나 다른 재심사건 등이 대법원에 오면 과거사 정리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재심 사건이 대법원 상고심까지 올라오면 대법원이 사법부의 공식적 입장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침은 이용훈 대법원장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재심 결정부터 1심 선고까지만 해도 3~5년의 상당한 시간이 걸려, 당장 사법부가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어떤 공식적 입장을 밝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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