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설렁탕과 피마골의 음식문화**
인사동길 허리의 네거리에서 서쪽 태화관길로 접어들면 도심 뒤편의 빌딩 숲 한가운데 태화빌딩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3.1운동 당시 당초 예정대로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 시민들을 뒤로 한 채, 민족대표 33인이 그들만의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던 명월관 분점 태화관 자리이다. 여기서 다시 삼성생명 빌딩 쪽으로 난 음식점 골목을 따라 걸어가면 오른편으로 90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이문설렁탕의 간판이 보인다.
<사진> 피마골 음식문화의 상징 이문설렁탕
이문설렁탕은 1920년대 종로1가 교보문고 옆에 있던 일삼옥설렁탕과 함께 하이칼라 청년들까지 이곳 설렁탕이 아니면 식사를 거른다고 할 정도로 세도를 누렸던 곳이다. 채반 위에 털도 안뽑힌 삶은 소머리가 놓여있고, 높이가 한 자밖에 안되는 식탁과 목침 높이만한 걸상에 쪼그려 앉아 오지 뚝배기 그릇에 담긴 설렁탕을 먹는 것이 옹색하기는 했지만, 보통 한 그릇에 15전으로 값이 싼 데다 맛으로나 영양으로나 손색이 없어 당시 피마골 설렁탕집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고 한다.
이문설렁탕은 본래 장안빌딩 뒷골목 피마골과 화신백화점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는데, 지금은 화신백화점 자리에 새로 들어선 삼성생명빌딩 뒤편으로 장소를 옮겨 예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1920년대 연계탕과 갈비구이의 원조 전동식당 자리, 지금도 삼계탕집이 그 맥을 잇고 있다.
피마골은 설렁탕 말고도 오늘날 우리가 대표적인 대중음식들로 손꼽는 갈비, 연계탕, 대구탕, 해장국, 냉면, 떡국 등을 상품으로 개발한 골목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1920년대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연계탕과 갈비구이의 원조로 손꼽히는 전동식당은 그러한 한식집의 선두주자였다. 좀 시끄럽지만 조촐한 식당 내부에 냉면, 비빔밥, 상밥, 대구탕반 20전, 갈비 한 접시 30전, 술 한 순배 50전 등의 간단하고 값싼 차림표를 갖추고, 손님을 끌던 오늘날 대중 한식집의 원조였던 것이다.
지금의 공평빌딩 남쪽 골목 중간쯤이 바로 그 자리인데, 옛 지번을 가지고 찾아가 보니 '종로 닭 한마리'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 연계탕의 원조 전동식당이 이름을 바꾼 게 아닌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주인 말이 이제 개업한지 2년째란다. 비록 주인도 이름도 바뀌었지만, 연계탕 원조 자리에 삼계탕집, 참 우연치고는 묘한 우연이다. 아마 특정한 공간이 갖는 규정성이란 게 이런 것인가 보다.
***청진동 해장국 골목에서**
삼성생명빌딩 옆 횡단보도를 건너 제일은행 본점 옆으로 난 종로1가 피마골 골목을 한 블럭 지나면 이번 피마골 풍물기행의 종착점인 청진동 해장국 골목이 나온다.
청진동 해장국 골목은 대중음식점과 선술집들로 이루어진 피마골의 완결판에 해당하는 곳이다. 술집에서 시달린 속을 해장하는 장소이자, 빈 속에 곡기를 채우고 힘찬 내일을 준비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아니 해장국집 그 자체가 술과 해장과 요기가 어우러진 피마골 전체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청진동 해장국 골목은 직장생활에 지친 장년층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 저녁 해질 녘의 청진동 해장국 골목
현재 청진동 해장국 골목은 도심재개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에서는 도심재개발과 관련해 기존의 고층건물 위주의 획일적 방식에서 벗어나 역사성과 문화자원 등 지역별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그 정책을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재개발 자체도 마땅치가 않다.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를 보라. '전통문화'란 이름 말고 거기에 어디 고풍스런 양반문화가 남아 있는지. 그게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특성화한 개발인지. 박제품이나 화석은 박물관에서 보는 것으로 족하다. 그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한 재개발은 짠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고,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사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피마골
우리네 서민문화의 보물창고로서 청진동을 포함한 피마골 전체가 가지는 공간 아이덴티티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만이 풍기는 사람 내음이고, 시골 장터처럼 시끌벅적한 가운데 피어나는 인정이다.
이곳이 누추해서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누추함이야말로 피마골을 피마골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피마골의 1m 남짓한 조븟한 골목길은 6.25전쟁의 총탄세례도, 근대화와 도시화의 거센 물결도 어쩌지 못한 서민들의 강인한 생명력 그 자체다. 피마골의 골목길이 좁고 누추해 관광객들이 다니기에 불편하다고 혹이나 그 골목을 확장한다면 그 피마골은 더 이상 피마골이 아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눈높이를 생긴 그대로의 피마골에 맞추자. 이곳을 청결하고 깔끔하게 가꾸는 데 신경을 쓸지언정, 성형수술하듯 인위적인 칼을 들이대지는 말자. 그리고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피마골만의 맛과 멋과 소리를 먹고 마시고 느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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