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어느 날은 섬마을 금일도에 삼성이 세운 보건진료소를 찾아 마을 아주머니의 지친 어깨도 주물러 주는 예쁜 '딸'이 되기도 한다. 이 광고는 윤은혜를 통해 삼성의 사회공헌활동을 보여주는 소위 '기업 이미지 광고'다.
최근 부쩍 이같은 광고가 늘었다. 각 기업들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신들이 벌이는 사회공헌활동을 광고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것은 기업이 모름지기 자신의 이윤만 쫓기보다는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그런 것일까? 11일 열린 토론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비정규 노동'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사회공헌활동이 CSR의 일부일 수는 있지만 둘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개별 기업이 고민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진정한 책임은 무엇일까?
"CSR의 1차 영역은 그 기업의 노동자 문제"
이날 토론회의 토론자로 나선 홍진관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해외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CSR이 우리 나라로 들어오면서 후진적인 재벌체제의 지속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며 "재벌의 사회공헌이 탈세의 면죄부가 되거나 노동자에 대한 부당해고의 방패막이로 이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CSR의 정의와 관련해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국제적으로 확립된 CSR의 1차적인 영역은 그 기업의 노동자의 문제"라며 "이는 '핵심 구성원에 대한 책임'의 관점에서 법률과 단협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광표 부소장은 "CSR 논의의 핵심은 기업의 역할을 '이윤 추구 및 법률 준수'를 뛰어 넘어 지역 및 이해당사자에 대한 폭넓은 책임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논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날 KTX 여승무원 문제와 라파즈한라시멘트의 하청업체인 우진산업의 노동자들의 얘기가 우리 나라에서의 CSR과 연관된 주요 사례로 소개됐다.
비록 CSR과 사회공헌사업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2005년 사회공헌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지난해에는 'KORAIL 사회봉사단'을 만들어 사회공헌사업에 나서고 있는 철도공사와, CSR을 잘 수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라파즈 그룹이 경영하고 있는 라파즈한라시멘트가 정작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화학에너지광산일반노련(ICEM)의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인 윤효원 씨는 "한국철도공사는 공기업이면서 동시에 대륙철도연결 사업을 위해 다른 나라에도 지부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라며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TX 여승무원의 불법파견 여부는 지난해 노동부의 적법판정으로 비록 일단락됐지만 자사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철도공사의 태도는 CSR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안 그러는 기업도 한국에만 오면 달라진다?
이날 소개된 라파즈한라시멘트의 경우 더 상황은 심각하다. 라파즈한라시멘트를 운영하는 프랑스의 라파즈 그룹은 2005년 국제건설노련(IFBWW), 국제화학에너지광산노련(ICEM), 세계목공노련(WFBW)과 함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국제 노사관계에 관한 협약'이라는 국제산별협약을 체결한 기업이다. 이 협약은 자국 내의 고용된 노동자뿐 아니라 사업 파트너, 하청 회사, 부품공급사 노동자에 대해서도 '노동권 보호'를 하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라파즈한라시멘트는 국내의 여타 기업과 마찬가지로 '옥계면/라파즈한라 장학재단'의 설립, '사랑의 집수리 운동' 등 여러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정작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탄압으로 악명이 높다.
불법파견이냐 도급이냐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는 사내하청업체 우진산업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20일 만에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는 원청업체인 라파즈한라시멘트가 노조 설립 이틀만에 우진산업에게 계약기간 중에 업무조정을 시도함으로써 사실상 노조 활동을 못하도록 했다는 것.
이유민 신세계 노무법인 노무사는 "라파즈한라시멘트 하청 노동자들에게 법률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노동 진영이 더욱 강조해야 할 지점은 국제적인 CSR 기준의 준수와 이행의무를 확약하고 있는 라파즈라는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서는 자신에게 부여된 최소한의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고 최소한의 노동기본권마저 보장하지 않는 현실을 방조하거나 조장했던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운동, 적극적인 CSR 활동 통해 날개 달자"
바로 이 지점에서 CSR과 노동운동이 만날 수 있다. 노동운동이 CSR을 통해 날개를 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간 노동운동이 CSR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못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CSR의 개념이 왜곡되면서 알려진 탓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
윤효원 ICEM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기업 스스로 지켜나가는 것이 아니며 정부 역시 이와 관련 적절한 행동을 하리라는 기대는 별로 없을 수 있다"며 "그러나 CSR은 정부나 기업이 나서서 약속한 사안이며 국제기구들이 참여하고 권장하는 사안인 만큼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적극적인 CSR을 통해 노동운동이 힘을 얻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광표 부소장도 "CSR을 단협의 범주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으며 홍진관 정책국장도 "산별교섭이 제도화되면 CSR 문제는 주요하게 언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동운동이 개별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산별체제로 전환하는 시점에 CSR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노동운동이 다시 날개를 달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전망이다. 1987년 이후 급변하고 있는 노동운동을 둘러싼 현실 속에서 "CSR은 기존의 단협으로 보장되지 않던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창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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