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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김대중 '짝퉁'을 선택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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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김대중 '짝퉁'을 선택할 텐가?"

[2007 대선감상법⑦]산업화-민주화 넘어선 미래는?

스스로 미래담론을 창조하지 못한 정치권이 과거의 두 사람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의 살아 있는 힘이다. 여야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은 대개 이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거나 적어도 어느 한쪽의 '그늘'에서 자신의 정치적-정신적 뿌리를 찾는다.

두 사람이 정치와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의 질감은 물론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분신들을 통해 우상으로 환생했다. 고단한 삶과 맞물린 근육질 카리스마에 대한 대중적 갈구가 그를 되살려낸 측면도 있다. 반면 김 전 대통령은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현실 정치인'이다. 'DJ 노선'은 길을 잃은 여권의 이정표다. 그는 햇볕정책 하나만으로도 현실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큰 손이다.

하지만 산업화 담론과 민주화 담론의 마지막 충돌이 될지 모를 이번 대선에서 이들은 각각의 시대를 상징하는 뚜렷한 깃발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정치권이 전환기에 걸맞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2007년 대선은 박정희와 김대중이 펼치는 36년 만의 리턴매치가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누가 박정희를 불러냈나?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4일 공무원들 앞에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시대가 성장의 기틀을 잡은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연일 긴급조치 하고 사람 잡아 놓고 죽인 5.16 쿠데타가 없었더라도 경제 성장은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직자들의 공을 강조하던 중에 나온 말이지만, 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을 직격한 부분에 주목한 한나라당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빙자해 한나라당의 대선주자들을 비판하는 우회적 네거티브"라고 발끈했다. 듣기에 따라선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이 과대포장 됐으며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부풀리는 박정희 이미지의 실체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민감한 반응은 자기당 소속 대선후보들의 경쟁적인 박정희 추종을 스스로 드러낸 격이 됐다. 오래 전부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중들의 뇌리에 반복적으로 '박정희'를 환기시켜 왔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천륜"이라며 가는 곳마다 '아버지'를 찾는 박근혜 전 대표는 두말 할 것도 없고, 이명박 전 시장도 '박정희 선글라스'를 낀 한 장의 사진으로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내륙운하 구상에도 '제2의 경부고속도로'라는 박정희 딱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정치인들이 신통치 않은 모델을 추종하는 경우는 없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은 정치세력이 대선 국면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현상은 뚜렷하다"고 '박정희 효과'를 인정했다. 박정희 시대의 역사적인 공과(功過)에 대한 논쟁과는 별개로 정치적으로는 분명히 '박정희 현상'이 특정세력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누가 박정희를 현실 정치의 영역으로 불러냈을까.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한나라당 주자들의 '박정희 벤치마킹'을 비판하며 "완전히 과거담론으로 빠지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현상'을 부추긴 세력은 노무현 정부를 포함하는 민주개혁 진영이라는 지적이 많다.

손 교수는 "노무현 정부시절에 확대된 사회적 양극화, 독재시절보다 심한 양극화가 박정희 향수의 중요한 원인"이라며 "민주화 세력의 실정 등 부정적 측면으로 인해 박정희에 대한 우경화된 긍정평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도 "민주화 세력이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먹고 사는 방식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박정희 현상을 고조시켰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대중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삶이 더욱 파괴적 상황으로 몰리고 돌파할 비전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명박 전 시장 등 보수세력이 신개발주의를 제출하면서 박정희 신화가 고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누가 DJ의 품을 찾나?

박 전 대통령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또 다른 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공간도 의도했건 아니건 노무현 대통령과의 갈등을 통해 커졌다. 손 교수는 "호남의 지지기반을 통해 반한나라당 통합신당 구상을 가진 김 전 대통령의 정치노선은 영남권에 지지기반을 두고 '도로 민주당'을 비판하는 노 대통령과의 대립관계 속에서 부각됐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여권의 진로 논쟁 태동기에 "민주당과 갈라선 것은 큰 불행이었다"고 재결합을 촉구했고, 사분오열 양상이 전개되는 최근에는 "올해 대선은 결국 양당 대결이 될 것"이라고 범여권 대통합을 필연화했다. 그의 일련의 발언들은 노 대통령의 구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범여권의 진로를 주조한 것이다.
▲ ⓒ프레시안

'정치 불개입'을 선언한 김 전 대통령이 이처럼 지속적인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기에 올해 선거에서 그의 정치적 영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조희연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이 역사적 상징으로서 정치 개입력을 가지고 있다면 김 전 대통령은 생존한 인물로서 보다 직접적인 개입력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를 둘러싼 메가톤급 이슈가 대선 정국의 변수로 작용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입김은 더욱 강해졌다. 여권은 '햇볕정책의 계승'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명분을 내세워 호남권과 민주-평화 세력의 결집이라는 'DJ 정치노선'으로 모여들 개연성이 크다. 당장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다 해도 결국 호남의 민주당과 고건 전 총리, 열린우리당을 매개하는 정신적 지주는 김 전 대통령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역시 적어도 남북정책에서 만큼은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또한 호남에서의 의미 있는 득표율을 위해서라도 김 전 대통령과의 유화적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이명박 전 시장이 연초에 동교동을 예방한 일이나 한나라당이 김 전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는 비판을 삼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뒤만 쳐다보면 답이 나오나?

이렇게 볼 때 올해 대선 지형도는 두 전직 대통령이 크게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형성돼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여야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내세우는 가치도 두 사람의 유산을 빼면 알맹이가 별로 없다.

이명박, 박근혜 등 한나라당 주자들의 박정희 적자경쟁이 단적인 예다. 김근태, 정동영, 천정배 등 열린우리당 주자들은 햇볕정책을 매개로 한 'DJ 노선' 추종자다. '중도'를 표방한 고건 전 총리는 박정희와 김대중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며 부단히 '국민통합'을 강조한다.

하지만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태도는 자기 전망을 찾지 못한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우리 사회가 두 시대를 뛰어넘고 가야 할 단계가 됐음에도 정치권이 미래의 실체를 잡지 못해 뒤를 쳐다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희연 교수도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기의 성과와 리더십 측면에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달리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모방의 자원"이라며 "그러나 현실 정치인들이 이를 모방하는 것으로는 미래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특히 "신개발주의를 보수진영이 제시한 일종의 비전으로 본다면 보수는 오히려 편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라는 국제적 흐름에 역류하는 것까지 감수하고 분배와 성장을 조화시킨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 하는 진보진영은 답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교수는 그러나 "민주정부를 원하는 대중들의 일반정서가 진보진영 집권기의 실패로 인해 강한 정부를 요구하는 대중적 욕구로 치환됐고,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이 이를 '강한 리더십'을 내세워 유인하고 있지만, 결국 보수진영도 그동안 비판해 온 민주진영의 의사결정 시스템이나 분배 문제 등을 수용하지 않은 채 성장 일변도의 동원방식을 채택하면 국민적 저항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요컨대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새로운 비전 모색에 실패하면 올해 대선은 박정희-김대중 '모조품'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불행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게 조 교수의 경고다.

이런 측면에서 두 전직 대통령과 함께 '구시대의 막내'를 자처한 노무현 시대까지도 넘어선 '미래'를 어느 세력이 보다 진지하게 모색해 가느냐에 초점을 두고 올해의 대선 정국을 음미해 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싶다. 대선은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모색'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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