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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만 된다면"…식지 않는 '개발공약'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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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표만 된다면"…식지 않는 '개발공약' 열기

[2007 대선감상법⑤]'악마의 유혹' 또 기승 부리다

대선을 위한 진용도 갖추지 못한 채 자중지란에 빠진 여권과 달리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공약 경쟁은 이미 지난해부터 달아올랐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운하', 박근혜 전 대표의 '한-중 열차 페리' 구상은 대권을 향한 이들의 의지를 엿보게 하는 일종의 지표다. 범여권에선 최근 고건 전 총리가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표'가 되는 공약 하나가 얼마나 파괴력을 갖는지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내세운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잘 보여준다. 당시 노 후보는 이 공약 하나로 97년 'DJP 연대'에 버금갈 만큼 강력하게 충청권을 흡입했다. '수도를 이전하겠다'는 약속에 충청권은 술렁였고 결국 민주당은 이 지역에서 51.8%를 득표해 한나라당을 11%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행정복합도시 등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지방균형발전 대책이 그 취지와 무관하게 전국적으로 부동산 값을 상승시킨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현재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선거전이 전개됐던 셈이다.

한반도 대운하, 열차페리, 한일 해저터널 구상도 우람한 청사진에 비해 객관적 검증은 상당히 취약한 상태이지만 정치적 효과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판단이다. 이번 선거에서 개발공약이 발휘할 위력과 그 후유증에 대해서도 식자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 있다.

"돼도 그만, 안 돼도 손해 볼 것 없고…"

이 개발공약 경쟁의 선두주자는 단연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경부운하와 호남운하를 묶어 일컫는 그의 내륙운하 구상은 통일 후 북한 지역까지 물길로 연결하는 한반도 대운하 구상으로 덩치를 키웠다. 그러나 이 가운데 비교적 내용이 갖춰진 것은 경부운하 구상이다. 이 전 시장은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10여 년 전부터 '경부운하'에 관심을 가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부운하'의 기본적인 골격은 서울-구리-하남-팔당호-양평-여주-충주-충주호(충주댐)-월악산 수로터널-문경 조령천-상주 영강-상주 낙동강-구미-대구-창녕-물금-부산 낙동강 하구언을 잇는 총 500.5km의 물길을 뚫겠다는 것.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항에서 수도권과 영남권을 잇는 수송망의 중심을 도로에서 운하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물류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 전 시장 측의 주장이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즉각 '무책임하고 필요도 없는 개발공약'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 전 시장은 "정치권 외곽의 인사들이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 전 시장을 원내에서 지원하고 있는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으려면 아무 것도 안하면 된다"고 말했다.
▲ '한반도 운하' 개요(왼쪽)와 지난 10월 독일 뒤스부르크 내항을 운행중인 유람선에서 내륙운하 컨테이너 부두를 살펴보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안국포럼

각종 환경적 부작용이나 공약 자체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검토가 취약한 것과는 달리 정치적 노림수는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지난 해 유럽을 방문한 이 전 시장은 "경부운하의 거점항만은 대구"라고 했다. 그의 당내 라이벌인 박근혜 전 대표의 텃밭인 대구를 노린 것이었다. 이 지역에서 운하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게 이 전 시장 측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구가 부산과 뱃길로 4~5시간 안에 연결될 수 있어 만만치 않은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가 먹혀들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해 대구시에서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지 못하면 낙동강만으로라도 운하를 만들자"는 주장이 시장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나온다.

대구뿐만 아니다. 물길을 따라 곳곳에 관광벨트를 구축하고 경제 거점으로 육성겠다는 것이 이 전 시장의 구상. 영남, 호남, 충청권 등 전국에 개발에 따른 이익을 약속한 것으로 2002년 행정수도 이전 공약과도 비교가 안 되는 큰 규모다. 여기에 통일 후 북한 신의주까지 하나의 물길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남북관계 문제를 내다본 포석이기도 하다.

성공회대 우석훈 교수는 이같은 거대 '토목 공약'에 대해 "해당 지역에서는 돈이 들어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작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경선이든 본선이든 선거에서 개발 공약은 일단 먹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좌관 부산 카톨릭대 교수도 "이명박 전 시장의 입장에서는 소위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것"이라며 "다시 말해 '한반도 운하'는 돼도 상관없고 안 돼도 일단 지역민들의 표심을 사로잡은 마당에 손해 볼 게 없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찬성이든 반대든 논란이 붙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는 이득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구축됐다는 얘기다.

박근혜, 맞불은 놨지만…"나도 답답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전 시장의 운하계획은 건설 프로젝트일 뿐 국가운영의 청사진은 아니지 않느냐"고 깎아내리면서도 이에 대한 정면대응보다는 열차페리 공약으로 맞불을 놓은 것도 이 전 시장 측의 노림수를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열차페리 구상은 서해안의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중국까지 배로 열차를 실어 나르겠다는 것. 인천과 중국의 옌타이항, 다롄항을 삼각으로 연결하는 게 일차적인 계획이다. 평택과 군산, 목포, 부산까지 거점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의 이정현 공보특보는 "인천항의 경우 100억 원 정도만 투자하면 바로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실현가능성에 의심을 받고 있는 운하 구상과는 다르다는 얘기였다.
▲ 지난 12월 열차페리 거점 중 하나인 군산항을 방문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박사모

인위적으로 땅을 파헤치고 산을 뚫는 토목공사식 개발공약이 아니라는 점도 일정 부분 인정을 받는다. 우석훈 교수는 "열차페리의 경우 일단 무조건적인 개발공약으로만 볼 수는 없다"면서 "중국과 연결되는 항구를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지겠지만 그것은 공약 자체가 거대한 개발 프로젝트인 운하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운하 구상에 비해서는 대중적인 인지도나 선거에서의 파급력도 밀린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의 김재원 의원도 "현재로서는 한반도 운하 구상이 열차페리보다 선거에서의 파급력이 더 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도 답답하다"며 "박근혜 캠프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공약을 내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이명박 시장의 '한반도 운하' 구상이 주목받기 시작하자 지난 해 11월 내 놓은 박 전 대표의 열차페리 공약 역시 정치적 조급증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우석훈 교수는 "박 전 대표는 '이명박은 운하 하는데 박근혜는 뭐 하는가'라고 몰리는 상황에서 열차페리 구상이 나온 점을 주목하라"고 말했다.

'정치가 실종된 선거'의 자연스런 귀결

자체 진용정비에 급급한 범여권 후보들이 아직까지 이에 맞대응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일단 내부 문제가 한 고비 넘으면 이들 역시 경쟁적으로 개발공약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과 같이 '회심의 카드'가 될지, 아니면 '졸속 편승'에 그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범여권의 유력 주자인 고건 전 총리가 거제도와 일본 쓰시마, 규슈를 잇는 235km 구간을 해저 철도와 해저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한일 해저터널' 건설 공약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봐선 후자가 가까워 보인다. 이 역시 건설비가 최소 60조 원~최대 200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이명박 전 시장의 내륙운하, 박근혜 전 대표의 열차페리 구상에 대한 맞불 성격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정치적 대립선이 분명하지 않은 현재의 정국 상황은 결국 이같은 장밋빛 개발공약의 홍수와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마비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여야 후보들도 진지한 고민과 면밀한 검토의 결과라기보다는 '뭔가를 내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의 포로가 되어 결국은 개발공약의 희생물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각 후보자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으면 앞으로 더 쏟아낼 이같은 거대 구상들은 오로지 '표'를 노린 공약이다 보니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진영 모두 개발주의 아니면 경제적 효과만을 고려한 장밋빛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며 "보다 중요한 양극화 등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또다시 넘어갈 건가?

또한 세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에 반해 양측은 공약의 구체적인 계획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아직 그 흔한 자료집 하나 나오지 않았다.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말만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박근혜 대표 측은 "열차페리를 포함한 공약들은 다 준비가 되어 있다. 곧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기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이명박 시장 측의 정두언 의원은 "최종적인 답은 (이명박 전 시장이) 대통령이 된 후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최종 계획을 확정해서 각 컨소시엄에 공모해서 세부계획이 나오는 것이지 지금 설계도까지 내놓으라는 이야기냐"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막판 '행정도시 이전'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이던 정두언 의원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도 '크게 떠들어 표만 얻으면 된다'는 정치우위의 사고는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비판했었다.

적어도 이명박-박근혜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은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큰 상황인 만큼 '크게 떠들어 표만 얻으면 된다'는 사고는 올해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의 우려는 바로 이렇게 '크게 떠들면 표가 된다'는 명제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그 얘기는 유권자들이 바로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이라고 할 만한 이런 공약들에 자신들의 마음을 내줄 가능성이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시장판에서처럼 설렁설렁 넘어가려는 이런 대형 공약의 이면을 넘겨다 볼 줄 알며, 환청이 생길 정도로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환상적인 계획을 찬찬히 뜯어볼 줄 아는 유권자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2007 대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정확히 살피지 못하는 한 다음 5년은 더욱 극심한 개발 광풍과 부동산 가격 상승의 낳을 수밖에 없으면, 그같은 악마적 유혹에 유권자 스스로 영혼을 팔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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