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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성' 고건, '히어로'냐 '들러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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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식물성' 고건, '히어로'냐 '들러리'냐

[2007 대선감상법③]'정글의 법칙'과 '필패론'의 늪

고건 전 총리는 한나라당 주자들을 제외하면 가장 당선권에 근접해 있는 대선주자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서 조만간 그를 능가할만한 대선후보가 등장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범여권의 대선경쟁을 거쳐 '본선진출권'을 거머쥘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론이 높다.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점이 당장 가시적인 위협 요인이지만 그것보다는 본선 경쟁력, 즉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꺾을 수 있는 카드냐는 결정적 질문에 어느 누구도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대세론'만큼이나 위험한 '필패론'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당초 열린우리당의 덩치, 민주당의 호남기반,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을 하나로 모아 전열을 정비해보자는 범여권 통합의 기본 논리도 시간이 갈수록 '고건 변수의 해체'로 성격이 뒤바뀌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고건, 독자신당 차릴 수 있겠나"

고 전 총리는 당분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새해 초부터 열린우리당 및 민주당 의원들과의 접촉빈도를 늘리고는 있지만, 양당이 전당대회를 거쳐 당 내부 정비를 끝내고 본격적인 범여권 통합 협상에 나설 때까지는 주도권을 쥘만한 계기가 사실상 별로 없다. 고 전 총리가 '헤쳐모여 신당'의 징검다리 격인 원탁회의 구성 시점을 3~4월까지로 늦춰놓은 것도 세력이 없는 개인의 비좁은 활로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다.
▲ 고건 전 총리ⓒ뉴시스

양당의 내부 정비기 이후 전개될 본격적인 길항과정에서도 고 전 총리 쪽이 구사할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 고 전 총리 측은 정치권을 비롯해 장외세력까지 아울러 신당추진에 속도를 붙이겠다는 계획이다.

고 전 총리 측의 한 관계자는 "고 전 총리는 창조적 파괴를 위한 주춧돌이기를 바라는 것"이라며 "어차피 정계개편이 시작되면 현역 의원들이 (기존 당에) 남아 있기 힘들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정당의 기득권을 버리고 뛰쳐나와 그의 주변으로 모이거나 장외 유력 인사들이 느닷없이 고건 신당에 합류할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 의원들을 규합해 '소형' 독자신당 형태로 입지를 구축하는 정도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게 현실적인 시각이다.

열린우리당 내에 안영근, 김성곤 등 친 고건파 의원들이 있기는 하다. 안 의원은 "현재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내려가고 있는 데 대해 개의치 않는다"면서 "'고건 신당'이 생겨난다면 범 여권의 정계개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중심의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대다수 통합 신당파들에게 고 전 총리는 '흡수통합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김근태 의장이 과연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고 전 총리를 '논쟁의 대상'으로 규정한 점은 고 전 총리를 바라보는 우리당 다수의 시각을 반영한다. 최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제3 후보'로 주목받는 것도 고 전 총리의 상품가치가 얼마든지 급전직하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통합신당파인 민병두 의원은 "'고건 신당'이 생긴다고 해도 열린우리당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우리당에서 '고건 신당'으로 빠져나가는 의원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민 의원은 이어 "고 전 총리가 독자적으로 살아남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고 결국은 열린우리당 중심의 정계개편에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목희 의원은 아예 '고건 신당'의 창당 자체가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의원은 "고 전 총리에게 신당을 만들 동력이 있기나 하냐"면서 "범여권에서 통합의 추동력이 생겨나기 시작할 텐데 이미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한 고 전 총리가 어떤 힘으로 통합신당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의원은 "고 전 총리가 당의 간판을 내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계개편에 크게 유의미한 당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당사자의 판단에 달린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열린우리당의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 측은 "열린우리당 오픈 프라이머리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지 않았느냐"며 "열린우리당이 우리당의 틀을 실제로 유지하면서 통합신당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맞받았다.

DJ가 비토하는 호남 후보?

사실 우리당보다는 민주당이 '고건 신당'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고 전 총리가 민주당과 지역적 기반이 같다는 점, 민주당이 독자적인 대선후보를 배출할 능력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더해 그간 고 전 총리를 견제해 온 한화갑 대표가 지난달 22일 대법원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함에 따라 당내 친(親)고건파의 움직임에 숨통이 트인 측면도 있다.

고 전 총리와 가까운 인사로 꼽히는 최인기 의원은 "'고건 신당'은 고 전 총리-민주당-열린우리당 일부-미래세력이 연합해서 만드는 파트너십 정당이 될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은 '통합신당' 운운하고 있지만 반드시 실패할 것이고 일부 세력이 분화되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의원은 "민주당이 딱히 내세울만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대선 후보로서 고 전 총리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며 "내년 2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진로와 지도체제를 정하면서 고 전 총리와의 관계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상층부의 기류와 달리 당의 대의원과 지역위원장의 80% 이상이 한화갑계로 분류되고 있어 2월 전당대회에서 이들의 당심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직 단정하기 이르다.

특히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온전한 계승을 거부하고 있는 고 전 총리에게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DJ가 지지하지 않는 호남후보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고 전 총리는 새해 첫날 김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DJ 끌어안기'에도 적극성을 보였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의 '친고건' 기류도 고 전 총리에 대한 '절대적 지지'라기 보다는 당면한 국면에서 활로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고건 카드'를 활용하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햇볕정책의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거리가 적지않게 벌어진 이상 민주당과 고 전 총리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강이 놓여 있는 셈이다.

통합신당 '들러리'로 끝날지도…
▲ 고건 전 총리ⓒ프레시안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고 전 총리 스스로 상황을 반전시킬만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직을 수행하며 얻은 안정적인 이미지로 대권후보 반열에 오른 이후 고 전 총리가 독자적인 노력으로 지지율을 관리해 온 흔적은 거의 없다.

독보적이던 그의 지지율은 2006년 초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 효과'를 바탕으로 치고 올라오자 단박에 역전당했으며, 그 이후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2위자리를 내줬다. 올해 초 각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14%까지 지지율이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 전 총리는 이와 관련해 "범여권 후보로 취급되면서 지지율이 하락된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의 측근도 "앞으로 정운찬 전 총장 등과의 상호 경쟁이 생기면 지지율이 오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랫동안 15%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 측의 항변대로 15%의 지지율은 범여권 후보들 가운데 독보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지율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위험한 징후다.

이와 관련해 그의 주요 지지기반이던 호남과 충청권에서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해진 점이 주목된다. 지난달 28일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그는 충청권에서 8.7%, 호남권에서 35.9%를 얻는데 그쳤다. 열흘 전인 17일 조사에선 충청권에서 20.6%, 호남권에서 54.4%를 각각 기록했었다.

한편 고 전 총리는 현안 대응능력에서도 적지않은 문제점을 노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총리기용을 "실패한 인사"로 규정한 것에 대한 고 전 총리의 무대응에 대해선 일부 측근들 사이에서도 답답하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정치 현장의 중심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을 회피하는 전형적인 '식물성 정치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는 3~4월 이후부터 벌어질 본격적인 정치게임에서 고 전 총리가 적절한 공격력과 상황주도력을 보일 수 있을지 회의하게 만든 대목이다.

또한 '국민통합'이라는 그의 대선 의제도 정치적 매력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고 전 총리는 정계개편의 주도권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대중의 뇌리에 박힐만한 기치나 명분을 하나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그는 또한 '반(反)한나라당 전선'에서의 고 전 총리의 역할과 관련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 한다"고 일축했다. 즉 "한나라당과 대조될 만한 기치를 전혀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평가의 요지였다.

그는 이어 "유권자들은 한나라당 후보의 대항마로 나설 후보를 찾고 있으며 2002년에 노무현을 찾아냈듯 2007년에도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할 후보를 찾아낼 것"이라며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고 전 총리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 측은 "현재 정치판이 '의제'를 가지고 모이고 있느냐"고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그는 또한 "앞으로 정책 공약이 하나씩 드러나면 추세가 뒤집힐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민통합'과 '중도개혁'의 기치, 과연 어필할까?

어쨋든 고 전 총리가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지지율을 반등시킬 계기를 지속적으로 창조해내지 못하는 이상 그는 우리당과 민주당이 주도하는 범여권 신장개업의 들러리로 전락할 위험성은 도처에 널린 셈이다.

'강력하지는 않으나 유의미한 변수'로만 남아 있기를 바라는 기존 정치세력의 노림수는 그의 난망한 처지를 잘 보여준다. 이목희 의원은 "범여권의 지지자들은 새로운 중도개혁세력이 논의와 토론을 통해 통합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고 전 총리가 우리와 정체성이 맞는 인물인지와는 별개로 고 전 총리가 범여권의 통합 과정까지는 의미 있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범여권 통합 논의가 매듭지어지고 한나라당과의 대결구도가 형성되는 본격적인 대선국면에선 고건 변수가 급속도로 해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고 전 총리가 자신의 신당을 근거지로 항전태세를 갖추거나, 혹은 기득권 정당 중심의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한다고 해도 전망은 비슷하다.

박정희와 김대중 사이를 오가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중간쯤에 위치한 그의 노선과 정체성이 과연 어떤 변용 과정을 거쳐 범여권의 지지층이 그를 전략적으로 지지할만한 동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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