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고 전 총리는 현 정치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국민통합'을 꼽으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중도실용개혁'의 노선에 입각한 대안정치 세력의 형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근태, 내 주장을 파악이나 하고 말한 것인지…"
29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고 전 총리는 "내년 3~4월 경에는 새로운 대안정치 세력이 모습을 갖춰야 한다"며 "중도실용개혁의 정치노선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기존 정당의 벽을 넘어서 기득권을 버리고, 내가 주도하겠다는 헤게모니 의식을 버리고 새로운 광장에 모여서 함께 참여하는 연대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린우리당이 통합신당 추진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상당한 불신도 엿보였다. 그는 "대안정치세력의 통합이란, 말은 '헤쳐모여'라고 하면서도 자기당 중심의 헤게모니를 전제한다거나 사실상 당 대 당 통합을 추진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견제했다.
이는 최근 열린우리당 내에서 '고건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특히 고 전 총리는 김근태, 정동영 등 열린우리당의 양대 계파의 수장의 신당추진 합의가 사실상 열린우리당 기득권의 문턱을 높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김근태 의장이 자신을 '논쟁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서도 "중도개혁실용 노선에 참여하는 다수 인사들이 국가적 정책적 과제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맞대응 했다.
그는 또한 김 의장이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고 전 총리의 비판적 견해를 문제 삼은 것과 관련해 "김 의장이 내 주장을 파악이나 하고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반박하며 'DJ 햇볕정책'에 대한 계승과 변용을 내세운 '가을햇볕정책'을 길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승'보다는 '변용' 쪽에 방점이 찍힌 듯 보였다. 고 전 총리는 "북한 핵실험 후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핵실험 이전과 이후가 같아서는 안 된다"고 여전히 대북 제재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고 전 총리는 특히 정부의 대북 쌀, 비료지원 중단 조치를 "타당한 조치였다"고 평가했고, 북미간 대화국면으로 접어든 현 상황에서도 "북한의 기근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봐서 (재개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즉각적인 재개에는 난색을 표했다.
그는 'DJ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 지표나 다름없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송금특검 수용 문제와 관련해선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행위에 속하느냐의 판단의 문제이지만 지난 일을 놓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즉답을 꺼렸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의 경쟁과 관련해 고 전 총리는 "중도실용개혁 노선에 뜻을 같이 한다면 누구든지 환영한다"면서 "새로운 대안정치세력이 형성돼 경쟁하게 된다면 민주적 경선은 문호가 개방돼야 하고 누구나 환영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대통령 권한대행 때…"
고 전 총리의 기용을 '실패한 인사'로 규정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한 논의는 고 전 총리 측의 요청으로 이날 공식 인터뷰에는 담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인터뷰 이후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고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시절) 국회에 나가서 변호사 아닌 총리가 변호사 대통령을 변호하느라 애썼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한 "2002년 대선 사흘 뒤 신계륜 비서실장이 찾아와 총리를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사양했다. 그러나 그 후 가까운 인사들이 내가 맡는 게 좋겠다고 권유해 수락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 총리를 맡게 됐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보였다.
고 전 총리는 특히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던 시절 마련된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 '입법과제조정회의' 등을 거론하며 "2가지 시스템을 정비해 냈다"고 국정운영 능력을 자부하기도 했다.
그는 "관계장관이 참여하는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통해 40여 건에 달하는 사회갈등 문제의 가닥을 추렸다"고 했고, "'입법과제조정회의'를 통해 한·칠레 FTA, 방송법 개정 등 굵은 것들을 다 처리했다"고 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이후보다 당시에 더 많은 입법현안을 해결했다"고 비교하기도 했다.
이날 인터뷰는 서울 종로의 고 전 총리 개인사무실에서 김창희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
"대안정치세력이 모습을 갖추면 지지율도 올라갈 것"
프레시안 : 고 전 총리에 대한 지지도를 보면 최근 들어 상당히 감소했다. 어제 오늘 사이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그런 감이 없지 않다. 본인의 지지율 추이를 어떻게 해석하나?
고건 : 지지율 추이는 항상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정당 기반이 없는 내 입장에선 근래의 정치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 소속이 없는데 언론에서는 나를 여권 후보로 보고 있다. 내가 주장하는 국민통합신당이라는 것도 여권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정치를 위한 대안정치세력을 만들자는 것 아닌가? 대안정치세력이 모습을 갖춰 가면 지지율도 변화가 오리라고 기대한다.
프레시안 : 국민과 언론은 고 전 총리를 범여권의 중요한 대선주자, 핵심인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대안정치세력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범여권 후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고건 : 그렇다. 한나라당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범여권이라는 말을 쓴다면 하는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대안세력을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현재의 여당과는 확연히 구분돼야 한다.
프레시안 : 최소한 한나라당이 아니라는 점에선 여권과 한 묶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근 김근태 의장은 고 전 총리의 의견을 두고 '논쟁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을햇볕론을 겨냥해서 말한 것 같다. 김 의장의 지적에 대해선 어떤 답변을 하겠나?
고건 : 김 의장의 말은 두 가지 의미인 것 같다. 하나는 가을햇볕정책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일반적인 논쟁이다. 중도개혁실용 노선에 참여하는 다수 인사들이 국가적 정책과제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정치적 지향성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론으로 말하자면, 정치적 과제에 대한 논쟁, 인식을 공유하느냐 아니냐는 토론과 논쟁은 선행돼야 한다.
가을햇볕정책에 대해선 김 의장이 내 주장을 파악이나 하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당초 햇볕정책은 튼튼한 안보를 토대로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북한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정책 노선으로, 남북관계에 진전과 전환점을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다만 북한의 핵실험을 막는 것까지는 한계가 있었다. 중요한 상황 변경이 있기 때문에 햇볕정책도 탄력적으로 운용돼야 한다. 포용과 제재, 대화와 제재가 잘 배합되는 가을햇볕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옳다.
북한의 핵실험 후 나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핵실험 이전이나 이후가 같아서는 안 된다. 핵실험에 상응하는 조치는 있어야 한다. 따라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을 계속하되 국고보조금 부분은 핵실험 뒤엔 중단하는 게 옳다.
프레시안 : 6자회담 등 대화국면이 재개됐다. 초점이 북핵에서 BDA 문제로 넘어가 있기는 하지만,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가 풀리면 우여곡절을 거치더라도 정리되는 국면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재는 여전히 필요한가?
고건 : 그렇다. 북핵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한미공조, 국제공조를 토대로 6자회담을 통해, 협상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게 대원칙이다.
"말로만 '헤쳐모여' 방식인가"
프레시안 :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제외한 세력, 즉 반(反)한나라당으로 엮일 수 있는 세력이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범여권 다수의 원칙에 동의하나?
고건 : '반한나라당'이라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정치 시장은 한나라당의 독과점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과 경쟁관계에 있는 새로운 대안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뜻에는 동의한다. 내년 대선은 중도개혁세력과 한나라당이라는 전통보수의 경쟁구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레시안 : 결국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그 중도실용개혁 세력의 범위에 속한다고 봐도 되나?
고건 : 반드시 그렇다고 한정할 것은 아니다. 나라를 위해 무엇이 실익이냐는 실사구시 정신, 중도개혁실용 노선에 동의하면 어느 당에 소속돼 있어도 상관없다. 한나라당에 있더라도 상관없다.
프레시안 : 통합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양 극단에 해당하는 세력이 우리당과 민주당 안에 있다고 보나?
고건 : 내가 있다 없다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런 얘기들이 더러 보도가 됐기 때문에 양극단 세력을 배제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하고 있다.
프레시안 : 범여권의 통합신당 논의라는 것이 대개 현존하는 두 당과 당 밖에 있는 세력이 헤쳐모이는 통합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통합의 실질적 형태에서 그런 구상과 고 전 총리의 구상은 어떤 차이가 있나?
고건 : 내 구상은 중도실용개혁의 정치노선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기존 정당의 벽을 넘어서 기득권을 버리고, 내가 주도하겠다는 헤게모니 의식을 버리고 새로운 광장에 모여서 함께 참여하는 연대통합 방식이다. 헤쳐모여가 그런 뜻이라면 좋다. 다만 말은 헤쳐모여라고 하면서도 자기당 중심의 헤게모니를 전제한다거나 사실상 당 대 당 통합을 추진한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프레시안 : 하지만 그런 방식을 하더라도 '도로 민주당', '도로 우리당'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회자가 된다.
고건 : 당 대 당 통합을 한다거나 어느 당 중심의 통합신당을 추진한다거나 할 경우에는 당연히 그런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프레시안 : 그 모든 세력 속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혹은 노 대통령과 의기투합한 소위 친노 세력들이 상당수 있다. 그들도 같이 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가나?
고건 :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지킨다고 했으니까 논외로 하자. 친노냐 반노냐는 것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계보야 어떻게 됐든 각자의 노선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어느 계보에 속하든 새로운 정치를 위해 중도실용개혁에 뜻을 같이 한다면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연말쯤 새로운 당을 구성하지 않을까 했는데 늦춰졌다.
고건 : 국민통합신당을 위한 대화협의체, 가칭 원탁회의는 중도실용개혁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동등하게 참여해서 시작해볼까 한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정치세력의 모습을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봤을 때 내년 3, 4월까지는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정이 변화가 있게 된 것은 각 당이 진로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과 긴장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대화기구가 각 당의 당내 갈등에 휩쓸려서는 좋지 않겠다고 판단했고, 기계적인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정치권 동향에 따라서 탄력 있게 진행시킬 계획이다. 내년 3, 4월경에는 새로운 대안정치 세력이 모습을 갖춰야 한다.
프레시안 : 김근태 의장이나 정동영 전 의장과는 만날 계획이 없나?
고건 : 현재로선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프레시안 : 연대를 위한 협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 좀 애매하다.
고건 : 그것은 대화협의기구다. 지금은 개별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접촉해서 의견을 교환하는 단계다. 적절한 시점이 되면 대화협의기구를 공개건 비공개건 가져야 한다.
"정운찬 총장과의 경쟁 환영"
프레시안 : 고건 브랜드는 중도통합 혹은 국민통합으로 얘기된다. 한 때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표현도 썼다. 가을햇볕정책 등 몇 가지 슬로건 내지는 정책으로도 대표되는 것 같다. 고 전 총리가 보기에 내년 국면을 규정하는 시대정신은 뭐라고 생각하나.
고건 : 새해의 시대정신은 국민통합이다. 그래서 중도통합이 우리가 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국가를 재도약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아무리 좌우 대립을 통해 해결하려고 해봐야 불가능하다. 좌우대립을 극복하는 중도통합을 이뤄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국가를 재도약 시킬 수 있다.
프레시안 : 총체적인 국가 위기가 극복되고 국민통합도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통합'이 비전을 주는 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다. 국민통합이 꼭 이뤄져야 할 일이로되 우리사회의 비전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국민통합을 넘어선 지점에 있는 비전은 무엇인가?
고건 : 앞으로 10년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 뒤부터는 생산연령 인구가 절대적으로 감소한다. 앞으로 10년 동안 성장 동력을 재구축해서 국민 1인당 GDP 3만5000불 시대를 달성해야 한다. 10년간 해야 할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가깝게 5년으로 보면 최우선 정책목표로 좋은 일자리 200만 개 창출을 정치적 목표로 세우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프레시안 :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대단히 많은 것에 비해 대통령을 하기에는 연세가 조금 많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만약 대임을 맡을 경우 고 전 총리의 나이가 우리 나이로 일흔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 70대에 임기를 시작한 사람은 이승만, 김대중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격변사회에서 새 새대와의 간격이 너무 넓지 않느냐는 얘기인데….
고건 : 중요한 것은 사고의 연령이다. 공직생활 하면서 나름의 수칙을 지켜 왔다. 그 중 하나가 일일신(日日新)이다. 매일매일 새로워지려고 하는 노력이다. 일일신의 사고로 공직을 수행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프레시안 : 지나간 10년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시대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5년을 구상하고 있는 것인가? 고 전 총리가 대임을 수행한다면 두 정부를 과연 어느 정도나 계승하는 정부로 봐야 하는가?
고건 : 일반론적인 측면에서 정책의 연속성은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처음의 말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것 같다. 범여권의 통합 혹은 개편 논의와는 다른 각도에서 대안적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한 것은 현존하는 여권의 정치적 자산을 계승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연속성을 강조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 않나?
고건 : 시대정신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음 정부는 새로운 시대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다른 것이다. 시대정신부터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정부는 다른 정부가 돼야 한다. 그러나 일반론적으로 정부가 새롭게 출범했다고 모든 정책을 부정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정책의 연속성은 고려하되, 더 큰 의미의 시대정신은 다른 것이라는 뜻이다.
프레시안 : 현 정부의 정치적 자산 중에서 계승할 것을 특정한다면 어떤 것이 있다고 보나?
고건 : 권위주의 타파라든지, 정경유착 고리를 끊는 데 노력했다든지, 정치개혁 부분이라든지 그런 것은 이어나가야 한다.
프레시안 : 계승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건 : 코드 인사와 편가르기 이런 것들 아니겠나.
프레시안 : 요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부각되는 기류가 있다. 정 전 총장이 같이 경쟁하는 관계가 되는 상황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고건 : 중도실용개혁 노선에 뜻을 같이한다면 누구든지 환영한다. 새로운 대안정치세력이 형성돼서 경쟁하게 된다면 민주적 경선은 문호가 개방돼야 하고 누구나 환영받아야 한다.
프레시안 : 기존 정당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만나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을 구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대안 정치세력이 그 시간표대로 단일화 되지 못한다면 각자 후보를 선출하고 최종적으로 단일화하는 경로도 가능하다고 보나?
고건 : 지금으로선 그런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대통합 신당이 된다는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
프레시안 : 그 말은 여권이 기득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에는 고 전 총리 페이스대로 대선 끝까지 완주를 한다는 뜻인가?
고건 : 중도대통합 국민신당이 이뤄진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전제에 상치되는 전망은 하고 있지 않다.
쌀-비료지원 재개 '아직은…'
프레시안 : 한미 FTA 협상이 묘한 지점에 처했다. 협상은 난관에 처해 있지만 협상을 중단시켜선 안 된다는 입장을 양국 정부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어떤 모습으로 귀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고건 : 우리 경제는 대외지향적 전략으로 성장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시장인 미국과의 FTA를 동북아에서 제일 먼저 선점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 효과를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한미FTA 협상에는 두 가지, 즉 국내협상과 대미협상이 있다. 국내 협상에서는 피해를 보는 분야, 예를 들면 농업이나 농민 등과 진지하게 대화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잘 안되고 있다. 정부가 대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충분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내가 총리를 할 때 한·칠레 FTA를 체결했다. 직접 국회에 나가서 여야를 불문하고 반대하는 농촌 출신 의원들과 직접 협상을 하면서 통과시켰다. 그때 내가 세운 대책이 119조 원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그처럼 농민들과 진지한 대화를 해서 피해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가야 한다.
대미협상에서도 문제가 있는데 무역구제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미국이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측에서도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미국의 요구사항 중에서 들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사항에 대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전략적으로 판단해서 임해야 할 시기다. 또 하나는 미국 민주당이 다수 의석이 됐다고 해서 그런 상황에 이끌려가서는 안된다. 손익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적인 판단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전략적 판단이라 함은 부시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거나, 이월되거나, 결렬되는 경우까지 배수진을 치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겠나?
고건 : 그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인지 등에 대한 협상 전략을 세워서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프레시안 : 전략대로 안 된다면 이월되거나 결렬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고건 :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선을 지키기 위해선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타결이든 결렬이든 이 정부 내에서 끝내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인가?
고건 : 어차피 현 정부에서 되지 않겠나. (내년 3월까지인) 미국의 TPA 기간이 있기 때문에 타결이 되느냐 아니냐는 어차피 현 정부의 기간이 아닌가.
프레시안 : 대북문제와 관련해 쌀, 비료 등 인도적 지원이 중단된 상태다. 이를 지금 재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고건 : 북한의 기근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북한의 상황을 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다만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전제가 서지 않는 한, 대화와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한 경제적 제약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쌀 비료 지원은 인도적 지원의 영역으로 보고 있나?
고건 : 북한의 기근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닌가? 상황이 심각하다면 그것을 인도적 지원이라고 볼 수 있다는 국민적 합의를 거쳐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미사일 실험 직후 현 정부가 쌀.비료 지원을 중단했던 조치는 잘 한 조치였나?
고건 : 타당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핵실험이건 미사일 발사건, 그 이전이나 이후나 변화가 없다는 게 문제다. 그에 상응하는 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지원이 중단된 것이 온당했다면,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상황변화가 다시 재정리되어야 지원도 재개되는 게 온당할 것이다. 그러나 쌀과 비료 지원을 인도적 영역으로 본다면 그것은 북 핵실험 상황이 정리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 아닌가?
고건 :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핵실험이 있었을 때, 미사일 발사가 있었을 때, 평양에서 핵보유 선언을 했을 때 한반도 비핵화 약속위반 아니냐는 항의와 경고와 함께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 조치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선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에 대해 비판적 견해가 비등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고건 :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행위에 속하느냐는 판단의 문제인데, 지난 일을 놓고 말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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