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디지털방송의 전송방식 선택을 둘러싼 논란이 교육부의 NEIS사업에 이어 참여정부의 정책능력과 방향성을 평가할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송방식 선택의 주요 결정권자인 정연주 KBS사장이 "백지상태에서 재검토할 것"을 지시함에 따라 미국방식을 고집해온 정통부의 입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제는 결론을 내릴 때"**
디지털방송을 미국식으로 할 것인가, 유럽식으로 할 것인가는 정보통신계의 오랜 논란거리였다. 그러던 와중에 KBS에 정연주 사장이 취임하면서 "이제는 결론을 내릴 때"라며 방송.시민단체들이 이를 문제삼고 나섰다. 정부도 디지털방송이야말로 경기부양 차원에서도 대대적 투자를 시작해야 할 신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어 이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빨리 결론을 내야할 상황이다.
전국언론노조, DTV소비자운동 등 방송·시민단체들은 지난 4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식 디지털방송 전송방식(ATSC)을 하루 빨리 변경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정보통신부가 고집하는 미국방식은 낮은 수신율로 인한 난시청 심화, 휴대·이동수신이 불가한 점, 주파수 활용의 비효율성, 국민부담 가중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어 더 이상 변경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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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은 특히 "시청자들이 디지털방송의 시작으로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TV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재 정통부가 준비중인 미국식 전송방식으로 가정용 TV세트로 시청할 때 약간의 화질 개선 외에는 별다른 전송효과가 없고 유럽식(DVB-MHP)은 이와 달리 다양한 환경에서 큰 제약이 없이 송·수신할 수 있다"며 정통부의 정책변경을 촉구했다.
방송·시민 단체들이 강력하게 이 문제를 들고 나온 데에는 정통부가 최근 여론악화와 시장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제조업체로 하여금 디지털텔레비전 수상기에 미국식 전송방식의 방송용 수신기를 강제로 장착시키는 방안을 산자부와 협의중인 것도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정통부 관계자는 "디지털 방송의 활성화를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정통부의 끝없는 '미국 사랑'**
디지털방송의 전송방식에 대한 논란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0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통부는 유럽식과 미국식 두 가지 전송방식의 연구가 진행중인 상태에서 '미국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미국식으로 전송방식을 정하고 업무를 추진했다.
당시에도 학계와 방송계를 중심으로 외국에서도 아직 개발단계에 있고 시장성도 불투명한 디지털방송의 전송방식을 미리 확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1년초 우리나라와 같은 논쟁이 벌어진 대만에서 필드실험을 한 결과 인터넷과 무선통신 등 다양한 매체로 컨텐츠를 전송할 때 유럽식이 미국식보다 더 우수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부터다.
이런 결과에 따라 대만은 그해 6월 애초에 미국식으로 결정했던 당초계획을 번복하고 유럽식으로 송출방식을 바꿨고, 국내에서도 2001년 12월 MBC가 방송위원회의 재정지원을 받아 테스트를 한 결과 유럽식이 이동중 수신에 좋은 효과를 보인 반면 미국식은 수신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방송계에서는 미국식 전송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확대됐다.
여기에 더해 미국시장의 디지털TV 보급율이 지난 4년6개월간 5.5%에 불과해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자, 시민·방송단체들의 미국식에 대한 재검토를 계속 제기했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최근에 '화질이 앞선다'는 새로운 이유를 들어 미국식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디지털TV의 전송방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통부 방송위성과 실무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인터뷰에서도 "정부는 처음에 디지털TV를 도입할 때부터 고화질을 우선적인 요소로 놓고 평가를 했다"고 밝히고 "이는 고화질을 기본으로 한 '홈씨어터' 개념이 내수와 수출에서 산업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무자는 "미국식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주장하는 '쌍방향성'이나 '호환성'도 좋은 화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며 "전자투표나 홈쇼핑을 할 때 노트북이나 TV화면에 자막이 잘 보이지 않으면 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일단 디지털로 전송된 HD(고화질)TV를 보면 누구나 정통부 입장이 이해가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통부의 '홈씨어터' 육성을 위한 미국식 전송방식 고수 주장에 대해 박병완 언론노조D(디지털)TV특별위원장은 "홈씨어터가 붐을 이룬 것은 HD(고화질)TV 때문이 아니라 DVD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이라며 "공중파 방송의 화질개선을 위해 TV를 바꾸는 '방송매니아'가 얼마나 있겠냐"고 반문했다
SBS 기술직 직원도 "화질은 유럽식도 미국식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개선이 된 상태고 계속 더 발전하고 있는 단계"라고 반박하며 "잘 보이기만 하고 쌍방향성이나 호환성이 없으면 어떻게 투표하고 선택을 할 것이냐"고 의문을 나타냈다.
***특정업체 이익 때문?**
정통부 실무자는 또 미국식이 노트북이나 이동전화를 통한 이동수신이 사실상 불가능한 점에 대해서는 "노트북을 이용한 TV시청 등은 이미 별도의 무선인터넷송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유럽식으로 방식을 정하면 한 가지 방식으로 가정에 있는 TV에서 핸드폰까지 송출이 가능하긴 하지만 서울에만 수십 개의 송신탑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KBS에서 기술직에 근무하고 있는 김용덕씨는 이에 대해"미국식으로 계속 갈 경우, 국민부담이 애초 50조원에서 이동통신설비나 인터넷송신을 위한 장비의 추가설치 등으로 인해 2배 이상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더 큰 문제는 국민의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 지상파TV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인 무료시청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반박했다.
정통부 실무자도 그동안 유럽식을 선택하면 미주 지역의 수출에 어려움이 있다던 정부의 기존 입장과 관련, "기업이 제조해서 판매·수출하는 '셋톱박스'라는 수신장비를 전체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칩을 몇 개 교환하는 정도라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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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취재해 온 한 언론인은 "방송과 통신으로 크게 입장이 갈라져 싸우는 양상에 기업이권까지 끼어들어 어느 한편을 들기가 조심스런 문제지만 대체적으로 정통부와 극소수 기업 외에는 유럽식을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언론인의 설명에 따르면, 정통부의 업무영역에 속하는 이동통신사 중 하나인 LG텔레콤의 모 회사라고 할 수 있는 LG전자가 미국식 전송방식의 라이선스를 지닌 '제니스'라는 미국 회사의 실소유주라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줄다리기를 하던 전송방식 선정문제는 노무현 정부 출범후 방송위원회와 KBS가 최근 인선을 마무리한 상태에서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특히 KBS 정연주 사장은 최근 "백지상태에서 두 방식을 똑 같이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다. 이로 인해 정통부의'미국식 굳히기' 노력은 앞으로 적잖은 난항에 봉착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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