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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병역은 공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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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병역은 공평한가

[진단] 복무기간 몇 개월이 아니라 형평성 제고를

대학교 졸업반인 김모(28. 남) 씨. 그는 10년 전 징병신체검사에서 2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대학 재학 중 재검을 받아 고혈압으로 4급 보충역 판정을 다시 받았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는 등급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문계열임에도 불구하고 '4급'의 이점을 활용해 '산업기능요원'을 뽑는 한 IT업체에 취직했다. 4급은 현역(1~3급)과 달리 별도의 자격증이 없어도 '취직'만으로 산업기능요원이 될 수 있다. 김 씨가 취직한 곳은 신생업체여서 연봉은 1000만 원 수준으로 열악했지만, 공익근무요원으로 '차비' 받으며 단순 업무를 하는 것보다 IT기업에서 경력을 쌓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 씨의 생각은 주효했다. IT관련 경력을 쌓은 김 씨는 1년 후 대형 IT업체로 이직을 했고, 연봉은 2400만 원+α가 됐다. 김 씨는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도 받았고, 2년 2개월의 '복무기간'을 다 마친 뒤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으로 돌아왔다. 일단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으로 돌아온 김 씨는 복무기간 동안 받았던 월급을 모아 해외여행을 하고 대학 등록금도 납부했다. 'IT 기획 경력 2년'이라는 어디 내놓아도 뒤쳐지지 않을 경력도 생겼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군대에서 썩는다'는 발언을 계기로 현역병 복무기간 단축에서부터 유급지원병제도까지 다시 군 복무에 대한 논란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병역의 '형평성'에 관한 문제는 논의에서 밀려나고 있다.

대한민국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씻고 찾아보면 현역으로 군대에 가지 않을 방법은 다양하다.
▲병무청의 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 취업포털 화면

■ 산업기능요원 현역기피 수단?: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월 1일 기준으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고 있는 인원은 3만7876명이고, 전문연구요원은 8608명이다. 이 중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 중인 현역입영 대상자는 1만4032명이고,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 중인 현역입영 대상자는 8125명이다. 산업기능·전문연구요원의 48%(2만2157명)가 현역으로 입영해야 했을 사람들이다.

당초 이 제도는 군 소요인원의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국가의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국가산업을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로,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현역은 자격증을, 전문연구요원은 석사이상의 학위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 제도 자체가 병역의 형평성을 깨트린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본래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는 등 국방의 의무를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IT 붐'이 불고 지정업체가 확대되면서 많은 인력이 국방과는 관계없는 민간기업에 투입되고 있다. 국가적인 '병역의 의무'가 사기업의 인력채용에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또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반 현역병들에 비해 병역의무 이행에 따른 기회비용의 차이가 엄청나다. 당국도 이를 의식해 산업기능요원을 점차 줄여나가고 있는 추세지만 형평성 시비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 전문연구요원은 이공계 전유물?: 석사급 이상의 우수 연구 인력에게 연구의 기회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된 전문연구요원도 형평성 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문사회계열 연구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전문연구요원 채용 기관으로 선정된 연구소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건설엔지니어링', '생명공학', '전기전자' 등 이공계 연구분야 일색이다. 인문사회계열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상위권 이공계 대학생들에게는 '군대' 자체가 먼 얘기다. H대 공대를 졸업한 이모(30. 남) 씨는 대학원을 갈 때 모 대기업으로부터 대학원 재학 기간 동안의 학자금 등 장학금을 모두 제공받는 것은 물론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을 마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반면 인문사회계열 연구자들은 전문연구요원 혜택을 기대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학원에 가기 전 병역 해결은 필수다. 석사를 마치고 군대에 가는 '늦깍이' 입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밖에 우리나라는 의사들에게는 공중보건의, 변호사들에게는 공익법무관, 수의사들에게는 공익수의관 등의 대체복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의 '능력'을 사회 공익적인 부분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제도로 평가되지만, 특정 직업에 대해서만 특혜를 주고 있다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다.

▲ 시위진압 등 복무 부담이 큰 전투경찰은 현역 입대자들의 기피 1순위이다. ⓒ프레시안

■ "'3, 8, 전'만 안 가면 된다":
얼마 전 의정부의 한 보충대로 입대한 박모(21. 남) 일병은 보충대에서 만난 동료로부터 부대 배치를 받기 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 "'3, 8, 전'만 안 가면 돼." 여기서 말하는 '3'은 3사단(백골부대), '8'은 8사단(오뚜기부대), '전'은 전투경찰을 말한다. 그 동료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3, 8사단은 빡세도 폼이라도 나지. 전경 가면 진짜 죽고 싶겠다"라고 말했다.

현역으로 입대하고서도 강제로 차출돼 전경이나 경비교도대로 이른바 '전환복무'를 하는 제도도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돼 왔다. 현재 전경은 1만7000여 명, 경비교도대는 38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이 지원해 가는 의무경찰은 3만200명이다.

보통 전경으로 가면 현역에 비해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전쟁을 '대비'하는 현역과 달리 시위진압 등 항상 현장에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도 훨씬 크다. 게다가 병역에 대한 관심이 온통 현역 국군장병에게만 쏠려 있고, 처우 개선도 국방부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있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이 전경·경비교도대 강제 차출을 금지하고, 지원제로 전환하는 대신 지원 기피 대안으로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정하도록 한 법률을 국회에 발의해 놓은 상태다.

■ "병역 불공평하다"=78%: 인터넷 취업포털 잡링크(www.joblink.co.kr)가 대학전문지 전교학 신문과 공동으로 지난해 여름 대학생 123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병역 등 국가를 위한 의무에 있어서 모든 구성원들에게 형평성이 있다고 보는가?"를 묻는 의견에는 21.9%(271명)만이 '평등하다'고 응답했다. 병역 형평성에 대해 느끼는 국민들의 감정을 잘 알 수 있는 사례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의 성적에 따라 '국위선양'을 이유로 병역혜택을 부여하고 있지만, '이 종목도 넣어야 한다', '어떤 종목은 16강이고, 어떤 종목은 4강이냐'는 형평성 문제가 국민적 논란거리로 떠오르는 것만 봐도 국민들이 병역 형평성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규모면에서 전체 현역 군복무자의 5% 수준인 산업기능·전문연구요원만을 상대로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 있다. 이들이 국가에 기여하는 바도 무시할 수 없다.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그러나 병역이라는 것이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든지 거쳐 가야 할 관문이기 때문에 다른 사회 현안에 비해 개인이 직접 체감하는 정도는 상당히 높은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97년, 2002년 두 차례 대선에서 모두 아들의 병역 문제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게다가 대다수의 남성들에게 '불공평'의 현장이 멀지 않다. '누구의 친구 누구는 아버지가 병역특례 업체 사장이어서 그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 한다더라', '나는 땅개 가서 2년 썩고 왔는데, 누구는 병역특례 하는 동안 3000만 원을 모았다더라'는 등의 불만 섞인 푸념이 20~30대 남성들 술자리의 안주거리가 된 지 오래다. 오히려 '누구는 군대 가서 전화 한 통 받더니 대대장 당번병으로 갔다'는 얘기를 하면 '그래도 훌륭한 녀석이군, 현역으로 군대를 갔으니. 대대장 당번병 쉽지 않은데'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다.

"몇 개월 줄이는 게 문제가 아니다": 한 때 '신의 아들'이란 말이 있었다. 사지 멀쩡한데 징병신체검사 받아 병역면제 판정을 받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만큼 병역비리는 흔했고,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병역비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병역비리를 근절코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현역 판정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80% 초반이던 징병신체검사의 현역 판정률이 몇 해 전부터 90%를 웃돌고 있다.

복무기간 단축은 병력 운용계획, 장래 인구수 등에 의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사안이고, 면밀한 계획하에 진행돼야 한다. 군복무 기간이 26개월에서 24개월(육군, 해병대)로 줄어든 것은 대학생들이 휴학 등으로 학기를 낭비하지 않게 하는 큰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과연 우리의 병역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부과되고 있다고 군대에 곧 갈 또는 군대에 다녀온 대한민국 젊은 남성들이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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