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프로그램을 외주제작으로만 편성하는 '편성전문채널' 설립문제가 문화관광부(장관 이창동)와 방송위원회(위원장 노성대)간 방송정책 결정권을 둘러싼 대리전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광부는 4일 발표한 '방송영상산업진흥 5개년 계획'에 모든 프로 그램을 외주제작물로 편성하는 '외주전문채널' 설립을 지상파 방송의 매출액 중 일정부분을 외주제작물에 투자하도록 하는 '제작비 쿼터제'와 함께 중요한 목표로 설정했다.
반면에 노성대 방송위원장은 같은날 자신의 취임후 첫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런 계획을 발표한 문광부에 대해 "월권이자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방송위와 문광부의 대립**
'편성전문채널'은 우리나라 공중파방송의 외주비율이 현재 35%에 이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공중파 방송3사가 모두 법정고시 외주반영비율조차 기형적 외주, 위장자회사, 부분외주의 편법을 통해 채워지고 있는 현실에서 대안으로 제시돼 왔다.
방송위측이 우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편성전문채널'이 문광부의 지시를 받는 '국영방송화'할 가능성이 크고 이 사안이 문광부 안으로 관철될 경우 방송위의 위상과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관계자들도 "편성전문채널이 일반화된 미국도 뉴스는 자체제작을 한다"며 참여정부가 '외주전문채널'에 대한 방송업계의 요구가 높은 점을 이용해 정부입장을 대변할 '방송국'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위의 주도나 적극적인 협조로 '편성전문채널'이 설립되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 채널이 현재 방송위원의 구성비율로 볼 때 결국 정부와 여당의 '나팔수'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주체가 누구든 새로운 방송국의 설립은 결국 3공영(KBS,MBC,EBS)과 2민영(SBS,편성전문채널)이 말 그대로 '피 튀기는' 시청률 전쟁을 할 것이 불을 보는 뻔하다는 것이다.
언론노조 양문석 정책위원은 “외주정책으로 빚어지는 독립제작사와 방송사간의 부작용보다는 외주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문화관광부의 외주전문채널 추진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편성전문채널이 '화제'가 된 것은 미군이 채널2를 돌려준다는 전제하에 구상하던 것으로 안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외교 후에 이미 이 계획의 현실성은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방송계 한 소식통은 "청와대에까지 구체적인 보고서가 올라갔다는 말이 독립제작사들 사이에서는 돌고 있다"며 "독립제작사(외주업체)들은 디지털 방송의 전면시행에 맞춰 일을 추진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프레시안은 '편성전문채널'을 발족을 위해 뛰고 있는 '독립제작사협회'(KIPA)의 심재주 사무총장을 만나 현재 방송외주업체들이 겪는 어려움과 그 대안으로서의 '편성전문채널'의 가능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심 총장 사진>
다음은 심 총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심재주 사무총장 인터뷰**
프레시안 : 우리 방송환경에서 외주제작이 지니는 의미를 설명해 주기 바란다.
심재주 사무총장(이하 심 총장) : 현재 방송구도는 10년 동안 3사가 끊임없이 경쟁을 해 온 체제였다. 그 결과 모든 프로그램이 대응편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결국 방송의 다원화, 전문화라는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게 됐다. 한 예로 사극이 시청률이 높으면 다 같이 사국으로 몰리고 다큐멘터리는 밤 1시에도 보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다양성과 전문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외주비율을 법으로 정했으나 방송국들의 편법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프레시안 : 공중파 방송이 어떤 식으로 외주제작을 편법으로 채우나?
심 총장 : 초기에는 방송국의 자회사를 이용한 외주제작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외주제작의 의미를 퇴색하게 하자 정부는 자회사는 ‘특수관계자’로 정의하고 순수한 외주비율을 더 높였다. 여기에 방송국들은 퇴사한 PD들을 사장으로 앉히는 식이다. 최근에는 편성시간과 비율이 높은 드라마를 외주제작에 활용하고 있다. 연예기획사를 끼고 제작을 하면서 배우정도만 기획사의 도움을 받고 자신들의 촬영장비와 PD는 그대로 쓰는 방식을 쓰고 있다. 외주제작에 한해 작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기업의 제작지원이나 협찬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점을 교묘히 이용해 방송국이 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독립제작사를 압박해 드라마를 만든 경우도 있다.
프레시안 : 독립제작사들이 받는 구체적인 제작여건의 압박을 설명한다면?
심 총장 : 현재 외주비율은 35%에 이르고 궁극적으로 40%까지 끌어 올리도록 방송법에 명시 되어 있다. 하지만 독립제작자들에게 방송국이 지급한 제작비는 전체 방송제작비의 10%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말해 공중파 방송은 이제까지 3분의1 가격으로 방송의 35%를 채운 셈이다. 일부 외주사는 선금은 아예 받지도 못하고 자신들이 비용을 대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방송이 끝이 난 후에 제작비를 받기도 한다. 방송국들이 이렇게 하고 어떻게 뉴스시간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압박했다는 뉴스를 내 보낼 수가 있는지 궁금하다.
프레시안 : 방송국과 독립제작자 사이의 계약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심 총장 : 이렇게 말을 하면 독자나 시청자들의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한 변호사가 우리들이 방송국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계약서의 사본을 본 후 “이 계약서만 가지고도 방송국 사장들을 지위남용으로 재판에 걸 수 있겠다”고 말할 정도다. 방송계에서는 이를 ‘노예문서’라는 표현보다 ‘약탈문서’또는 ‘착취문서’라고 부르고 있다. MBC의 경우 일단 방송국에 납품을 하면 현재 존재하는 모든 판권은 물론이고 앞으로 개발되지 않은 매체가 파생시킬 판권까지 모든 권리가 방송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승인하는 조항까지 있다.
<5월22일 토론회 사진>
프레시안 : 방송국이 판권이나 저작문제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있나?
심 총장 : 한마디로 말하면 ‘필요가 없는 탐욕’이다. 저작권이나 판권이 각 독립제작사에 있다면 외주사들이 비슷한 성격의 프로를 조정하고 편집해 한 시즌이나 1년을 방영할 프로로 만들어 외국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방송국들은 국내 뿐 아니라 외국판권도 꽉 쥐고 있는 상태다. KBS가 2년쯤 전에 약 1년 정도 저작권을 돌려줬다가 취소한 적은 있다. 방송사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도 해외에 판매할 여력이나 열정이 없으면서 ‘다 내꺼다’하고 무조건 쥐고 있는 형국이다.
프레시안 : 최근 이런 산적한 문제의 대안으로 편성전문 채널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심 총장 : 편성전문 채널인 영국의 ‘채널4’는 BBC와 ITN이 시청률 위주로 경쟁하면서 다양한 소스의 독립제작자 프로그램들을 틀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 나왔다. 지금 우리 실정과 유사한 점이 있다. 본격적인 디지털TV시대가 도래하면 채널숫자에 제약이 줄어들게 된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편성과 송출만 전문으로 하는 방송국이 필요할 것이다.
프레시안 : 우리 현실에서 외주제작사의 프로그램만으로 방송국 편성이 가능한가?
심 총장 : 현재 공중파 3개사의 외주비율만 해도 35%로 이를 합치면 100%가 넘는다. 그리고 EBS는 현재 외주비율이 50%에 육박한다. 프로그램이 모자라기보다는 넘칠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현재 선진국들의 실제 외주비율은 어떻게 되고 있나?
심 총장 : 미국은 보도국 외에는 대부분 영화사나 독립프로덕션이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방식이고 일본도 민방은 70%까지 외주비율이 올라간 상태다. NHK 정도가 다른 방송사가 할 수 없는 큰 기획이나 대하드라마 때문에 자체제작 비율이 조금 높은 편이다.
프레시안 : 결국 민방만 하나더 늘려 시청률만 생각하는 '저질프로'를 양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심 총장 : 다시한번 영국의 경우를 예로 보자. 기존의 공영과 민영이 시청률 전쟁을 벌이자 새로운 대안으로 '채널4'가 나왔다. '편성전문채널'은 재미도 있으면서 사회에 '공기'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외주를 늘리거나 편성전문 방송이 생기면 현재도 ‘7~8년 걸려야 겨우 한 프로그램 한다’는 방송국 PD들의 원성이 더 커질 것 같기도 한데?
심 총장 : 개인적으로는 나도 공중파 방송국(MBC) 출신이지만 현재 방송국의 PD 시스템은 월급만 많고 효율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진짜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면 이제 나와서 싸워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 나는 소설가와 PD가 비슷한 성격의 창조자라고 본다. 이제까지 방송은 PD들을 월급을 주며 관리했다면 이제는 진짜 소설가처럼 직접 나서서 자기책임 하에 작업을 해야 한다. ‘월급을 받는 소설가’는 뭔가 어색하다.
프레시안 :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공중파 채널이 없다는 기술적인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가?
심 총장 : 그 문제 해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UHF채널을 이용하는 것도 지난번 토론에서 검토되기도 했다.협회는 사실 지금 당장 채널을 확보하는 것 보다는 디지털방송이 전면적으로 시행할 때 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디지털방송이 시작되면 채널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기술적인 제약이 없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생각해 주기 바란다.
프레시안 : 공중파 방송국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면?
심 총장 : 지금은 21세기라는 점을 알기 바란다. 독과점체제의 공룡이 살아남기는 힘들다. 특히 외주업체를 방송제작비를 줄이는 지렛대로만 여기지 말고 진정한 협력 체제를 구축해 주길 바란다.
프레시안 :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심 총장 : 이제는 편성전문 채널이 필요한 시기다. 방송국은 주로 보도와 송출만 담당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현재 외주업체들은 공중파 방송과의 계약관계에서는 공정거래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부분이 시정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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