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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뒤'에 나오는 사람들의 '뒷얘기'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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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뒤'에 나오는 사람들의 '뒷얘기' 아세요

화려한 드라마에 가린 보조출연자들의 '인간대접'

한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 주연 배우는 순식간에 '스타'가 된다. 그러나 인기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물론 그 배우만의 힘은 절대 아니다. 수많은 스태프들을 비롯해 조연이나 단역도 못 되는 수많은 '보조출연자'들의 존재가 없다면 드라마 자체는 존재하기 어렵다.

최근 안방드라마로 인기를 얻고 있는 사극의 경우 그런 현상이 더 심각하다. 연장방송을 둘러싼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는 드라마 <주몽>의 한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땡볕 더위와 차가운 칼바람을 가리지 않고 무겁고 불편한 의상을 입고 텔레비전 화면 한 구석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보조출연자들이 있다.

화려한 드라마 뒤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이상 보조출연자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삶'이 있는 것. 보조출연자 박모 씨는 "드라마 촬영 현장, 말도 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들이 한국노총 전국연합연맹 산하에 서울지역 보조출연자노조를 만들고 지난 18일 결성보고대회를 가진 것은 그 '말도 못할' 촬영장의 실정 때문이다. 구조적인 촬영장의 문제와 보조출연자에 대한 방송사의 부당한 대우가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싶어 나이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머리띠를 묶은 것이다.

"다른 사람 땀 밴 무거운 철갑옷으로 피부병 걸리기 일쑤"
▲ 화려한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얘기에 대해 드라마 시청자들을 얼마나 알까? 사진은 최근의 인기 드라마 <주몽>의 한 장면. ⓒ뉴시스

박모 씨는 "사극은 다른 작품에 비해 훨씬 힘들어서 젊은이들은 잘 안 하려고 한다"며 "그래서 보조출연자들도 60대에서부터 70대까지 연령층이 주류"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게다가 촬영장 자체도 워낙 지방 곳곳의 산골에 있는 경우가 많아 오가는 데에만 10시간 정도는 약과인데, 그 시간은 아예 노동시간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 그밖에도 현대물에 비해 열악한 조건은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

박모 씨를 비롯한 보조출연자들이 하나같이 호소하는 '고통' 중의 하나는 '의상'이었다.

"의상이 정말 더러워요. 그 무겁고 답답한 옷을 입고 있으면 땀이 많이 나는데 전혀 세탁해 주지를 않죠. 어제 다른 사람이 입던, 그 땀에 절은 옷을 또 입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 보면 피부병이 옮는 경우도 있어요."

또 다른 보조출연자 배모 씨는 신발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고 말했다. '목화'라고 불린다는 신발은 "애초부터 사이즈도 안 맞게 지급된다"는 것. 안 맞는 신발을 적당히 끈으로 묶어 신고 촬영 스태프의 요구에 따라 뛰다 보면 넘어지는 일은 다반사다.

"아들뻘 30대 반장님이 '야, 이 xx놈아!' 소리칠 때는…"

"<불멸의 영웅 이순신>을 촬영할 때였어요. 밤중에 매복해 있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뛰쳐나가는 장면이었는데 주변에 덩굴이 정말 많았죠. 하도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구요. 내가 맞지도 않는 신발을 신고 뛰다가 넘어졌거든요. 그랬더니 대번 '이봐, 거기 영감. 당신 그렇게 할꺼야'라는 말이 튀어나오더군요."

보조출연자들이 호소한 또 하나의 고통은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아들 뻘의 30대~40대인 진행반장에게 당하는 언어폭행이 심각하다고 털어놨다.

배 씨는 "우리를 아예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며 "'야, xx놈아. 저리 안 서!'와 같은 욕을 먹는 건 일상"이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 촬영 조건의 힘겨움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탁'을 할라치면 "주면 주는 대로 할 것이지, 하기 싫으면 관둬라"는 말이 바로 돌아온다. 배 씨는 "한 겨울의 촬영장에서 따뜻한 물 좀 마시게 해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요구냐"고 되물었다.

"드라마 보는 사람 절반이라도 우리 사정 알아줬으면"

서울지역 보조출연자노조 조합원 서현숙 씨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장시간 관광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밤새도록 피곤함을 달래고 눈을 뜨면 다음날 새벽 어느 세트장. 변변한 식당조차 없이 10평 안 되는 슈퍼마켓에서 라면과 삶은 계란, 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촬영스케줄에 맞춰 때로는 2박3일 동안 불과 몇 시간을 차량에서 새우잠을 자야 하고, 때로는 그마저도 잠도 못 잔 채 48시간~72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때로는 기획사에서 일을 주고도 당일 밤 11시 30분에 방송국에 가면 방송 사정상 연기됐다며 그냥 돌아가라고도 한다. 그런 날은 멀리서 온 보조출연자들은 차비도 없이 노숙자 신세가 된다."


사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방송사나 제작사에 인력을 공급하는 기획사에 등록돼 있어 기획사로부터 "내일 나와라"는 연락을 받으면 일을 하러 가곤 한다. 서울지역 보조출연자노조 쟁의지도부장 박남철 씨는 "많이 일하는 사람은 한 달에 15일~20일, 일이 적을 때는 5일~7일 정도밖에 못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촬영장이 지방인 사극의 경우 밤 11시 30분까지 모이라는 '집합 명령'이 떨어진다. 촬영장에 도착하면 새벽. 그때부터 꼬박 12시간을 특별한 쉬는 시간도 없이 '고고(go go)' 소리에 따라 뛰어다니고 나면 받는 돈은 3만7000원 가량.

방송 제작비는 일부 주연급 배우들의 뛰는 몸값에 덩달아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지만 이들이 받는 돈은 형편없는 수준인 것. "한 달 꼬박 일을 해도 100만 원이 못 되는 돈인데 그마저도 두 달이 지난 후에야 손에 쥘 수 있다"고 이들은 말했다.

배 씨는 "촬영장에 한두 번 가보면 정말 가기 싫다"면서도 "아이들도 나더러 '촬영 하러 이제 가지 마시라'고 하지만 나 먹고 사는 문제를 아이들에게 부담주기 싫어 할 수 없이 다닌다"고 말했다. 화려한 드라마 뒤에서 고달픈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보조출연자들은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의 절반만이라도 우리 사정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작은 바람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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