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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허리에 실 매도 '개혁 완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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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허리에 실 매도 '개혁 완수'일까?

[기자의 눈] '졸속 행정' 스스로 드러내는 국조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추진하고 있는 국무조정실에 대한 비난이 높다.

국무조정실이 초안을 작성했던 법안의 내용에 대해선 야당과 언론, 방송계를 막론하고 '절대 다수'가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방송위원회 노동조합을 비롯한 언론단체들은 입법을 졸속으로 추진하는 국무조정실의 행태가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국조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졸속 추진'을 숨기지 않고 있어 더 큰 비난을 사고 있다. 오히려 내년 2월에 국회에서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공표하는 등 당당하게 '빠른 입법'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미 지난달 23일 국조실은 관계부처 간의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입법예고를 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같은 날 철회한 바 있다.

'20일 이상'인 입법예고 기간을 9일로 단축한 까닭은?

성급한 입법예고로 비난을 받았던 국무조정실은 지난 6일 다시 '입법예고'했다.

행정절차법 41조에 따르면 입법예고란 '국민의 권리 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령 등을 제정하거나 개정 혹은 폐지하는 경우 입법안의 취지 및 주요내용을 미리 예고해 그 내용에 대한 문제점을 검토하여 국민의 의사를 수렴 반영하여 국민의 입법 참여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다. 또 입법예고는 관보·공보·신문·방송·PC통신 등의 방법으로 하며 그 기간은 '특별사정'이 없는 한 20일 이상으로 한다.

그런데 이번 법안의 입법예고기간은 6일부터 14일까지 겨우 9일이었다. 그렇다면 국무조정실의 '특별사정'은 무엇이었을까?

국조실 관계자는 "이 건은 논의가 시작된 지 오래됐다"며 "1998년부터 공식적으로 논의가 시작돼 한해에만 수십차례 관련된 회의가 열렸다"며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음을 강조했다.

또 그는 "사안이 시급하다"며 "이번에 (통과가) 안되면 내년에는 대선이 있기 때문에 조속히 국회에 제출할 필요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2007년에는 대선이 있어 4월 이후로 넘어가면 국회에서 심의 자체도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입법예고를 관보에 게재했고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 띄웠고 또 신문에 보도가 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며 "일반적으로 다른 방법은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바늘 허리에 실 매자는 국조실 태도가 정상인가"
▲ 11일 공청회에 대한 공고는 하루가 지난 12일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한시가 다급하다는 국무조정실은 얼마나 성실하게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국조실이 짧은 시간동안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온 직원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도 모자랄 듯 하다.

그러나 지난 11일 열렸던 공청회에 대한 '공고'는 하루가 지난 12일에서야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공청회 준비로 바빴던 국조실 직원들이 그럴 수 있다며 너그럽게 넘어간다고 치자.

그러나 이날 공청회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별관 3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누구든지 의견을 개진해달라던 국무조정실은 이날 공청회가 시작되기 전 '미리 참가신청을 하지 않았던 이는 입장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참석자들에 대해 소지품 검사를 실시해 "이것이 열린 공청회냐"라는 힐난을 받기도 했다.

공청회에 참가한 한 방송관계자도 기자를 보자마자 "한마디로 대충 바늘 허리에 실 매자는 식의 태도였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방청회 자체가 어설펐다. 방청객 질문에 대해 왜 교수나 변호사인 토론자들에게 답하게 하나. 그들이 법안을 만든 사람들도 아닌데. 국조실 담당자들이 답변을 하게 하는 게 정상 아닌가"라고 방청소감을 토로했다.

또 그는 "국무조정실이 이렇게 중요한 방통융합기구개편을 대충 넘어가려고 하면 안된다"며 "최소한 공청회 1회 추가에 심야토론, 끝장토론이라도 해야 정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조실 관계자는 "입법예고 후에도 공청회를 할 수는 있겠지만 알다시피 정부에서는 방통융합 추진 자체가 시급한 사안이다보니 금년 내로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목표가 있어서 쉽지 않을 것"이라며 "또 주로 나오는 의견들이 동일하기 때문에 공청회를 꼭 해야 할 필요성 자체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흘 남겨놓고 '충분한 시간 있다'더니…

또 공청회에서 국무조정실의 박종구 정책차장은 "14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이 잡혀 있어서 국민들이 의견개진을 할 시간이 많다"고도 했다.

지난 6일 입법예고됐던 법안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기간은 당시로서 '3일' 남은 상태였다. 얼마나 많은 의견이 수렴됐길래 '충분한 시간'이라고 하는 것일까?

국무조정실은 12일 오후까지 국무조정실에 들어온 의견은 '서너 건 정도'라고 밝혔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한 회사에서 따로따로 똑같은 내용으로 많이 보낸 한 뭉치가 있고, 또 의견이라기 보다는 빨리 법안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어느 대학에서 부처를 하나 신설해달라는 희망사항을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11일 언론단체들로 구성된 '시청자 주권을 위한 방송통신융합 대책위원회'가 열었던 긴급기자회견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의견을 제출해야지 언론에다 대고 말한 건 공식적인 의견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급하게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제대로 못하면 늦추든가"

의견수렴의 절차를 중요하게 여겨서일까? 국무조정실은 입법예고 기간 동안 공식적인 기자간담회를 열지 않았다. 기자는 지난 12일 기자들을 대상으로 국조실에서 설명회를 연다는 말을 들었다. 공청회에서 집중적인 포화를 맞은 뒤였기에 행여 국조실이 방송통신위 설립을 급하게 추진하는 '솔직한' 이유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국조실에 연락해봤더니 "이미 식사 예약이 끝나서 추가 참석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좀 더 빨리 '신청'을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사실 참석이 필요없는 자리였다. 그 자리는 국조실이 '미디어 또는 통신분야 전문지' 기자들과 안면을 트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을 뿐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전날 공청회에서 나왔던 내용 이외에는 별다른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국무조정실의 이 같은 태도가 경제관료 출신들의 방송관련 지식과 철학의 빈곤 때문인지, 정통부의 영향력에 휘둘린 때문인지, 아니면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방송계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시점에서 '뭔가 개혁을 이뤄놓아야 한다'는 조급증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설립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내걸었던 공약 중 하나다.

급하게 추진해야 한다면 제대로 하기라도 하든지,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급하게 추진하지 말든지. 성과 달성에 눈 먼 정부의 재촉과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시민사회의 비판 가운데서 오도가도 못하는 국무조정실이 차라리 안쓰러웠다. 그리고 앞으로 임기말을 맞아 이런 일들이 또 얼마나 많이 벌어질른지…. 어느 쪽 길이든 제발 한 쪽을 확실하게 선택하는 '임기말'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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