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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돈 없어 대학 못 다닌다는 말 들어봤나"

대학생 양극화<3> 미국의 힘, 풍부한 대학생 재정 지원

미국 대학 등록금이 비싼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영리 교육단체 '칼리지보드'(College Board)에 따르면 2005-2006학년도 4년제 공립대학교의 연간 등록금은 평균 5500달러(약 550만 원)이고, 사립대학교의 경우 2만1000달러(약 2100만 원)에 이른다. 여기에 기숙사비 6700~7700달러를 합할 경우 대학에 내는 돈만 공립은 연간 1만2000달러, 사립의 경우 3만 달러에 이른다. 원화로 환산하면 학비만 연간 최소 1200만 원~3000만 원이 있어야 대학에 보낸다는 얘기다.

미국, 저소득층 중심의 풍부한 학자금 지원제도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의 경제력 규모와 대학 수준에 비하면 당연한 차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미국의 학부모들도 등록금 부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공화당 조사 자료(2004년)에 따르면 미국 학부모의 70%가 대학 등록금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등록금을 인상하자 하원에서는 등록금 인상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정도로 미국 사회도 대학 등록금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학부모들과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대학등록금에 대해 느끼는 부담의 정도는 판이하다. 미국은 대학생들에 대한 장학금과 학자금 보조 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학자금 보조 정책은 크게 '그랜트'(Grant)나 장학금(Scholarship)과 같이 갚을 필요가 없는 무상지원과 학자금 융자(Loan), 근로장학금(Work-study) 등 세 가지로 이뤄져 있다.
▲ 미국 대학 캠퍼스.ⓒCollege Board

미국 애리조나에 거주하며 캘리포니아의 주립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성연(21. 미국명 새라 김) 씨는 대학에 원서를 내기 전에 별도의 서류를 한 장 작성했다. '연방 학비보조 신청양식'(FAFSA. Free Application for Federal Student Aid)이다. 성연 씨의 부모는 신청양식에 세금 납부 내역, 은행계좌 잔고 등의 재정 상태를 상세히 기술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성연 씨의 가정이 부담할 수 있는 학비(EFC. Expected Family Contribution)를 산정하고, 학비에서 EFC를 뺀 금액을 무상 학비보조금(Grant)과 저리의 융자(Subsidized Loan)로 지원한다.

성연 씨의 부모는 세금 납부 기준으로 연 소득이 4만7000달러인데 1년 학비는 등록금과 기숙사비, 각종 학내 시설 이용료 등을 합쳐 1만8000달러에 달했다. 연방정부에서 심사해 성연 씨의 가정이 부담할 수 있다고 인정받은 EFC는 1800달러. 결국 1만6200달러가 모자란 셈이다. 하지만 성연 씨는 '그랜트'로 1만 달러를 받고 6200달러는 융자를 받았다. 물론 대학을 졸업해 상환능력이 생길 때까지 이자는 정부에서 내준다. 2003년 미국 연방정부가 대학교 재정보조금으로 지출한 금액은 모두 740억 달러에 이르는데, 대학생 1명당 6600달러 정도를 보조해주고 있는 셈이다.

성연 씨는 2학년이 되면서 재정 프로그램을 약간 수정했다. 근로장학생 활동을 추가한 것이다. 장차 로스쿨 진학이 꿈인 그는 로펌에 다니며 경력도 쌓고 장학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 중산층의 기반, 적극적인 인재 육성 철학"

대부분의 대학들은 기업들의 기부금을 활용해 많은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계획만 잘 짜면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그랜트나 장학금의 혜택은 대부분 저소득층 자녀에게 우선 지급된다. 즉 돈이 필요한 사람(Need-base)에게 우선 지원하는 것이다.

대학들은 FAFSA 외에도 대학 자체적으로 학생의 재정상태를 파악해 장학금 등의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보통 입학할 때 대학이 지정한 서류를 내면 대학에서는 학교를 다니면서 드는 총경비에서 부모의 분담금(EFC)를 제한 나머지 비용에 대해 그랜트는 얼마, 장학금은 얼마, 근로장학금 얼마, 융자 얼마 등의 식으로 학생에게 재정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학생이 이를 수용하는 형식이다. 대학 당국이 학생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재정프로그램까지 관리해주고 있는 것이다.

재미교포 재정전문가 오영석(43) 씨는 "혹시 미국에서 공부는 잘 하는데 돈이 없어서 대학 못 다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말했다.

오 씨는 "자본주의의 최정점이라고 불리는 미국이 고소득층이나 유학생들로부터 등록금을 많이 받아 자국 저소득층에게 풍부하게 지원하는, 심하게 말하면 공산주의적 학자금 지원 제도를 갖고 있다"며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돈이 없어 우수한 인재가 공부를 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확고한 교육철학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 프랑스, 독일 등 대학교육이 공교육으로 이뤄지는 나라는 제외한 그래프이다. 자료: 한국금융연구원.

오 씨는 이어 "물론 미국에서도 대학시절 받은 융자금이 졸업 후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학자금 지원제도가 미국 중산층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며 "이런 튼튼한 재정적 기반 덕에 미국이 대학교육과 인재배출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오 씨는 "물론 풍부한 그랜트를 받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때 성적(GPA)이 좋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제도는 시민권자가 아니더라도 사회보장번호를 부여 받은 영주권자까지도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는 별도의 '인터내셔널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물론 적용되는 혜택은 미국 국내인보다 적다.

"아르바이트보다 장학금이 더 많으니 장학금 타기 위해 노력해야죠"

'대학까지는 부모 책임이다'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학 학비 부담 책임을 자녀가 지고 있는 미국의 문화적 인식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 배경은 미국 학생들의 '자립심'이 특출해서라기보다는 학자금지원 제도가 풍부하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성연 씨는 "부모님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500달러 씩 받고 있는데 학비 부담이 없기 때문에 부모님이 내게 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연 씨는 이어 "대학 다니면서 받은 융자는 내가 갚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며 "솔직히 점원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면서 버는 돈보다 장학금이 훨씬 큰 데에다 장학금을 많이 받는 것이 나중에 융자부담을 줄이는 길이기 때문에 각종 장학금을 더 많이 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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