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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흥정' 속의 사학법…'사학 민주화'의 원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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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흥정' 속의 사학법…'사학 민주화'의 원칙은?

[기고] "민주시민은 민주적인 학교에서 키워진다"

1년 만에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다시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말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 끝에 국회에서 통과된 사학법 개정안을 두고 한나라당 측이 이를 다시 개정하라는 요구의 수위를 높여 온 가운데, 김형오 원내대표는 13일 "사립학교법 재개정은 어설프게 로스쿨법과 빅딜을 할 대상이 아니다"며 사학법 재개정 우선 방침을 확인했다. 사법개혁관련 법안과 사학법 재개정안을 여야가 서로 맞바꿈으로써 국회 정상화까지 이룬다는 소위 '빅딜'설을 정면으로 거부한 셈이다.
  
  이로써 사학법을 둘러싼 공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정치권의 송년 행사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공방 속에서 정말 곱씹어봐야 할 쟁점은 잊혀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언론 역시 사학법의 개정과 재개정을 둘러싼 정치적 '게임'만 중계할 뿐, 한국의 사립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학법의 개정 방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해양대 김용일 교수 역시 이런 답답함을 느끼던 이들 중의 한 사람이다. 진보적인 교육학 연구자들의 모임인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소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가 최근의 정치적 공방에 가려 있는 '사학 민주화를 위한 사학법 논란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 <편집자>
  
  12월 국회가 사학법 재개정 논란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임시국회 첫날인 11일, 인사청문회를 제외한 국회일정을 모두 보류하면서까지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전의'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찾아간 곳은 국회 대신 사학법인연합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였다. 두 단체의 수장을 예방하여 사학법 개정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전달하고 지지 입장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14일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하고, 조만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과도 만날 예정이라니 한나라당의 장외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나라 압박에 무원칙하게 밀려난 여당…정치적 흥정대상이 된 사학법
  
  한나라당의 압박 전술에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번에도 '질서 있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은 '학교법인 이사장 친인척의 학교장 임명금지', '이사장의 학교장 겸직금지', '학교장 임기 4년 중임제한' 등의 완화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지난 1일 국회에 제출했다. 열린우리당 제6정조위원장이자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는 점에서, 이 개정안은 곧 당 차원의 '후퇴' 의사 표시로 해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개방형 이사제 부분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했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장외 행보를 계기로 이런 입장마저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타협론'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인데, 이에 대한 의원들의 반응 역시 제각각이다.
  
  아직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한나라당의 절충안은 총동창회나 학부모협의회도 개방이사 추천대상에 포함시키고 임시이사 파견 주체를 관할 교육청에서 법원으로 변경하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은 '합리적인' 안으로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반면, 같은 당 내에서도 교육위 소속 의원들은 일단 부정적인 입장을 개진했다고 한다. 사학법이 국회 정상화라는 명분과 사법개혁법안 처리 등을 위해 말 그대로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어가는 형국이라 할 만하다.
  
  '친인척의 학교장 임명금지'가 핵심…여당은 '핵심'을 양보했다
  
  우선 지난해 말 개정 법률안을 통해 열린우리당이 일찍이 양보한 내용부터 점검해보기로 하자. 핵심은 역시 학교법인 이사장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자의 학교장 임명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 제54조의 제3항이다.
  
  한나라당은 이 조항이 헌법상의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라면서 줄곧 삭제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런 요구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관할 교육청의 승인을 받는 자"라는 조건을 달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조건부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현행 사학법 개정 당시의 입장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작정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지탄의 대상이 되어 온 이른바 '족벌경영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길을 터준 것이다. 이것이 현재 열린우리당이 내놓고 있는 이른바 '이은영 개정안'의 핵심 내용인 것이다.
  
  사실 이 조항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현실적으로 헌법재판소의 몫이다. 또 위헌성 여부에 대한 상이한 견해는 현행 사립학교법으로의 개정 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개진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이 위헌 시비 때문에 물러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뜻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친인척 경영 위주의 우리 사학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런 궁금증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풀린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학교 설립자나 법인 측으로서는 개방형 이사제보다 오히려 친인척의 학교장 임명 금지 조항이 훨씬 치명적이다. 다른 무엇보다 학교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개정 사학법의 테두리 안에서도 여전히 학교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과거와는 매우 다른 조건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비리 혹은 분규의 소지가 있는 사학의 경우 조바심은 한결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학교장의 임기를 4년으로 하고 중임을 1회로 제한하는 등의 조치는 필연적으로 학교 경영에 대한 장악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사학법이 개정됨으로써 학교 지배권 자체가 약화되거나 시간이 흐를수록 무력화될 공산이 커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교장, 학장, 총장이라는 명예와 일자리를 내놓아야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상당수의 건전한 사학의 경우도 이해관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 변화에 뒤처진 '학원 민주주의'…건전 사학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아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개정 사학법에 대한 '결사항전'은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외길 수순인 것이다. 이런 판단 혹은 조건이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 정치세력을 결집시키는 기본 동인이 됐다. 종교계 사학이 선봉에 서고, 정당 차원에서는 한나라당이 그 대행자를 자임 혹은 위임받았다. 여기에 수구ㆍ보수 성향의 언론, 학계, 시민사회단체가 가세했다.
  
  이런 정치적 이해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한 결과가 바로 이은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학법 개정안인 셈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특히 비교적 비리ㆍ전횡ㆍ분규부터 자유로운 상당수의 종교계 사학이 제기하는 불만 혹은 반대 입장이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리 개연성이 있는 사학은 제쳐두더라도 상당수의 건전한 사학조차 학교운영에 관한 이해관계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에 비해 실질적 민주주의, 구체적으로 학원민주주의 발전이 얼마나 더디게 진행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문제 상황은 개방이사제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점은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재개정안에서 잘 볼 수 있는데, 해당 조문에는 한결같이 개방이사제 도입 취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지가 잘 반영돼 있다.
  
  현행법 제14조 제3항에서는 이사 정수의 4분의 1 이상을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가 2배수 추천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을 "이사 정수의 일부를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사회 외에서 추천된 인사 중에서 선임"하는 내용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개방이사의 비율도 정하지 말고, 이사 추천의 주체도 특정하지 말자는 얘기다. 계속해서 비리나 분규 사학의 계고기간(시정요구기간)도 현행 15일에서 3개월로 연장하고, 임시이사 선임주체를 관할청에서 법원으로 변경하자고 주장한다.
  
  문제 해결을 마냥 지체시켜 학교 구성원들을 괴롭게 만들 수밖에 없는 조건을 달고 있는 것이다. 개방이사에 관한 사항은 아니지만, 2인 이상의 감사 가운데 1인의 선임도 본래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방향의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한 자로 선임토록 되어 있는 것을 그 자격 요건을 명시하고 "2배수 이상 추천한 자 중에서 선임한다"고 하여 사학법인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키려는 것이다.
  
  충분한 양보 얻어낸 한나라당이 계속 밀어붙이는 이유는?
  
  한나라당은 이 모든 요구를 '사학의 자율성 보장'이란 말로 정당화하고 있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현행 개방이사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사학법인들의 집요한 요구 때문일 것이다. 정치적인 대행자임을 자처한 이상 이들의 요구는 다른 어떤 가치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현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설립자나 법인 측에서 더 '치명적'이라고 여긴 친인척 학교장 임명금지 등에서 이미 "자발적인 양보"를 받아낸 상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나라당의 이런 집요한 태도는 쉽게 이햐하기 어렵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이 말한 것처럼 '명분' 싸움도 있겠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한번 양보한 사람은 또 다른 것도 양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밀어붙이기 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원칙 없이 흔들려 온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즉 현 정권이 자초한 일이다.
  
  한나라당 요구대로 현행 사학법이 다시 개정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열린우리당은 '질서 있게' 대응하고 있지 못하며, 청와대는 일찌감치 사학법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속마음을 드러낸 바 있다.
  
  이윤동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학…국민 기대에 못 미치는 사학법
  
  그러나 필자는 부정과 비리 개연성이 있는 일부 사학을 제외하고 우리의 건전 사학 대부분이 개방형 이사제를 반대할 정도로 옹졸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여론도 그렇고, 건전 사학 대부분은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게 사실이다. 사회민주화에 걸 맞는 지배구조의 민주화가 학교와 대학의 교육력을 제고시키는 데도 매우 긴요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까지 우리의 사학은 사회적 공헌과 동시에 '장사'를 하면서 성장해 왔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상당수의 사학이 이윤동기(profit motive)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교육기관으로서 본말이 전도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현행 사학법이 이런 문제를 치유해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의 결과라는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의 발걸음이 너무 더뎌 양식 있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법인 이사 정수를 7인 이상에서 9인 이상으로 하고 개방이사를 이사 정수의 3분의 1 이상으로 하려던 것도 좌절ㆍ절충한 것이 현행 사학법이다.
  
  상대가 있는 '게임'에서 그만큼 변화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사학법을 둘러싼 긴장은 민주주의의 문제이고, 궁극적으로는 교육의 문제다.
  
  민주적인 지배구조는 의사결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학교와 대학에서 자원의 흐름을 왜곡시키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학교법인의 민주화는 흔히 말하는 사학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 말고도 인적ㆍ물적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도 크게 이바지 할 수 있는 유효한 장치인 것이다.
  
  민주시민은 민주적인 학교에서만 키울 수 있다
  
  더 이상 법인과 학교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 우리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각자가 일을 할 뿐 상명하복 내지 일방통행 식의 관계여서도 안 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상실한 조직은 이미 죽은 조직이기 때문이다. 학교법인의 민주화를 통한 사학 운영의 민주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더 큰 의의는 학교 운영체제라는 형식이 교육의 내용과 질을 규정한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민주적인 학교와 대학은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토양으로 작용하며, 거칠 것 없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공기와 같은 구실을 하게 된다. 학교와 대학은 미래 사회를 살아갈 사람들을 길러내는 마당이다. 그런 점에서 사학은 민주주의를 체험하게 하고, 새로운 삶의 조건을 탐색ㆍ실현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 공간으로 제 기능을 다해야 한다.
  
  정치권에 대해 당리당략을 떠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무리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여야 모두가 보다 교육의 미래를 내다보는 '긴 호흡'으로 사학 문제를 풀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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