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땅에서 성전환자로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대법원이 지난 9월 발표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신청 사건 등 사무처리 지침'에 따르면 △만 20세 이상, 혼인한 적이 없고 자녀가 없을 것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을 것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할 경우 병역의무를 이행했거나 면제받았을 것 등이 성전환의 조건으로 제시돼 있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 대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성전환자 인권을 오래 전부터 고민해 온 이들은 "많은 성전환자들이 호르몬 요법이나 1차 수술(대체로 가슴수술)로 외관만 일정한 성징을 갖춘 채 생활하고 있다"며 "성기수술을 조건으로 내건 것은 많은 형태의 성전환자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남성성기 형성수술 기술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성전환자들에게 남성 혹은 여성 중 하나의 정체성만을 강요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는는 것이다.
지난 6월 대법원 판결에 앞서 성전환자의 인권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던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의 활동가 한무지 씨는 "성전환자들처럼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 바깥에 있는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그저 '외계인'일 뿐"이라며 안타까와 했다.
한 씨는 이런 안타까움을 "남성/여성, 이분법에 갇힌 세상"이라는 글에 담아 전했다. 이글에서 한 씨는 "주민등록번호, 화장실, 목욕탕, 병실 등 수없이 많은 제도와 공간들이 자신의 성별을 밝히기를 요구한다"며 "세상은 그것(성별)이 불확실해 보이면 끊임없는 폭력을 행사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폭력은 '남성/여성 이분법' 바깥을 경험하지 못 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선 것일 수밖에 없다. 한 씨의 글은 우리 사회가 이런 낯선 폭력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다음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에 실린 한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한 2년여 전쯤이었을까요. 트랜스젠더인 후배와 함께 술을 한 잔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화장실엘 다녀온다고 해놓고는 감감 무소식인겁니다. '화장실에 빠졌나, 싸움이라도 붙은 걸까.'
이래저래 걱정이 되어 밖으로 나가보니 화장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일으켜 세우며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 친구 대답이 이랬습니다. "형, 나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그를 보며 말문이 턱 막혀버렸습니다. 그는 어떠한 치료도 시작하지 않아 외관 상 남성, 여성 그 어느 쪽도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보니 선뜻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그렇다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갈 수도 없었을 터입니다. 어느 쪽에도 들어갈 수 없는 그 자신이 불완전하다 느껴졌을 테고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이 그를 짓눌러 주저앉아 울게 만들었겠지요.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괜찮아, 네가 잘못된 게 아니고 저 화장실이 잘못된 거야"하는 말을 읊조리며 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려두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남성과 여성, 그 이분법
세상은 남성과 여성, 이 둘을 철저히 구분 짓습니다. 주민등록번호, 화장실, 목욕탕, 병실 등 수없이 많은 제도와 공간들이 자신의 성별을 밝히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확실해 보이면 끊임없는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여자냐, 남자냐"하는 소리부터 "당신, 이거 당신 신분증 확실해? 이거 경찰서에 가서 확인해야겠는데", "어머! 남자가 왜 여자화장실에 들어와!" "뭐야, 왜 여자(혹은 남자)가 남성(혹은 여성) 병실에 들어오는 거야?"까지 각종 언어폭력, 심지어 물리적 폭력까지 서슴지 않고 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별 가르기'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 사회에서 성전환자들은 그 폭력의 한가운데에서 상처받는 일이 더 잦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호르몬치료 전의 성전환자이든, 호르몬치료에 의해 어느 정도 원하는 성의 외관을 가지고 있는 성전환자이든, 예외를 두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말 그대로 '어정쩡하게' 드러나 보이거나 외관상의 성별과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일치하지 않거나 하는 것 모두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니 어떤 식으로든 배제되기 마련이고, 가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들도 일어나곤 합니다.
"내가 외계인인거지 뭐."
교통사고로 입원을 했던 한 성전환자가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야, 사고가 나는데 아찔하더라고. 가게에서 남자로 일하고 있잖냐. 근데 기절해서 실려가봐. 이거 완전 일 나는 거야. 뭐 어쩌겠어, 정신력으로 버텼지. 병원수속 밟고 바로 기절했다니까. 근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 딱 깨니까 여자 병실인 거야. 옆에선 수군대고 있고, 이거 눈을 떠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입원해 있는 내내 옆 침대 아줌마랑 싸웠다니까. 남자가 왜 여자병실에 입원하냐고 시비를 걸어대는 통에, 결국 신분증 까면서 여자 맞거든요! 하고 소리쳤지 뭐. 야, 그 순간 진짜 말로 다 표현 못하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말하는 그의 얼굴에선 그 때의 그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그 긴장과 "여자 맞거든요!"하며 소리쳐야 했던 그 모멸감을 열심히 설명하던 그는 결국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 내가 외계인인 거지, 뭐."
여성입니까? 아니면 남성입니까?
그가 자신을 '외계인'이라 정의하기까진 수없는 상처와 고민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취직을 하기 위한 면접 자리에서 "당신같은 사람들은 모조리 정신병원에 넣어야 돼!"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고, 불심검문 때에는 신분증으로 신분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서까지 가서 지문을 확인받은 적도 있을 것입니다.
호르몬주사를 맞기 전에는 밖에서 화장실은 아예 가지도 않으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인생을 통틀어 수영장 한 번 가보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성(性)은 오로지 남성과 여성 두 개뿐'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 온 사람일 것이고 그것으론 도무지 자신이 설명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분명 이상하다 느꼈을 것이고, 사람들 또한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인 듯 대했을 것입니다.
정신적 성과 육체적 성이 일치하지 않는 것,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은 결국 나는 남성인가, 여성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나의 타고난 신체가 끔찍이도 싫었고, 성적 정체성이 확립되기 이전에도 남자라 말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누가 '언니'라 부르면 잠을 못잘 정도로 성별 위화감이 심했고, 끊임없이 남성성을 과시하려 했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성의 신체를 타고 태어났고, 여성으로서 대해지던 시간들(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를 '온전하지 못한 남성', '잘못 태어난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거쳐, '트랜스된 남성(TransMan)'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구태여 여성으로서의 시간들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저 자신을 부정하는, 옳지 못한 일이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한 쪽 성에 온전히 편입하기를 강요합니다. 대법원의 성전환자 관련 사무처리 지침에는 버젓이 '외부성기를 비롯한 신체적 외관을 갖췄을 것'이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가슴도 없고, 페니스도 없는 저는 여성입니까? 아니면 남성입니까?"
"사고로 페니스를 잃은 남성은 여성입니까? 아니면 남성입니까?"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은 여성은 여성입니까? 아니면 남성입니까?"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