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이바나 바케로, 세르지 로페즈
수입 유레카 픽처스 |
배급 프라임 엔터테인먼트
등급 15세 관람가 |
시간 113분 | 2006년
상영관 메가박스, CGV, 서울극장 판타지 영화가 항상 즐겁고 유쾌하며 모험에 가득한 얘기, 혹은 환상이 가득한 얘기여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판타지 장르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남미 출신의 별종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가 내놓은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영미권 판타지 영화가 말 그대로 단순한 '판타지'에 불과했음을, 진정한 판타지의 세계는 역설적으로 현실과 과거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던지는 내용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판의 미로>는 판타지 영화가 항상 해피 엔딩이 될 필요가 없으며 판타지 영화가 그 어느 슬픈 드라마보다 더 가슴이 아플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 오필리아(이바나 바퀘로) 집안의 하녀인 메르세데스(마리벨 베르두)가 오열하는 장면은 사람들의 가슴을 찢어 놓는다. <판의 미로>는 지금껏 나온 판타지 영화 가운데 가장 슬프고, 가장 서정성이 넘치는 작품이며 영화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너무 슬퍼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이상한' 판타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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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 오필리어와 세개의 열쇠 ⓒ프레시안무비 |
<판의 미로>는 때문에, 판타지 장르이면서도 꼭 판타지로 볼 필요가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특히 배경이 되는 시대상황을 살펴 보면 이 영화를 꼭 판타지스럽게 보지 않아도 충분히 볼 만한 구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줄거리의 배경은 1940년대의 스페인. 프랑코 장군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이에 저항하는 시민군 게릴라와 정부군의 싸움으로 내전상황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주인공 오필리아의 어머니 카르멘은 재단사였던 남편이 죽은 후 정부군 대위 비달과 만나 그의 아이를 갖게 되고 ,딸아이와 함께 만삭의 병든 몸으로 새 남편이 주둔하는 산골 마을로 이사를 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필리아는 아직 지하세계 공주 이야기를 그린 동화에 빠져 사는 꿈많은 소녀지만 부대에 도착하고 새 아빠 비달과 첫 대면을 하는 순간 엄마와 자신의 새로운 삶이 결코 평탄치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실제로 비달 대위는 잔악하기로 유명한 인물로 게릴라 소탕과정에서 무고한 인민을 살해하기 일쑤다. 어둡고 음습한 부대의 관사에서 엄마 카르멘의 병은 점점 더 깊어지고 새 아빠의 학대 역시 점점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이런 오필리아에게 어느 날 요정이 나타나고 그녀는 요정에 이끌려 지하세계 입구에서 오랜 세월 그녀만을 기다려 온 나무의 신 '판'을 만나게 된다. '판'은 그녀가 사실은 지하세계의 공주였음을 알려주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 개의 열쇠를 가지고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필리아의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오필리아가 겪는 꿈의 어드벤처가 사실은 이 어리고 연약한 여자 아이가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모든 건 아이가 꾸며낸 머릿 속 거짓말이지만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이런 환상이라도 없으면 여자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차라리 그 거짓말의 세계에 동참하고 싶게 만든다. (오필리아의) 판타지는 결코 (오필리아의) 현실과 유리된 채 존재하지 않는다. 판타지는 오히려 세상의 실제 삶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 준다. <판의 미로>는 어쩌면 지금의 세상이 어린 소녀로 하여금 고독하게 온 몸으로 싸우게 만들 만큼 가혹한 현실의 세계일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소녀가 꿈꾸는 환상과 이미지의 세계를 보면서 마냥 신기해만 할 것인지 아니면 소녀의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 속에서 함께 눈물을 흘릴 것인지, 그건 보는 사람들이 선택할 몫이다. 다만 그런 판단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여타 판타지 영화와는 확실하게 선을 긋고 가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판타지 장르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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