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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킹'은커녕 '킹메이커'나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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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근태, '킹'은커녕 '킹메이커'나 되겠나"

김근태를 보는 당 안팎의 냉정한 혹은 불안한 시선들

"해법은 간단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노 대통령의 숙원인 한나라당과의 연정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 아닌가. 한나라당에서 입당을 안 시켜주면 어떡하지? 음, 물론 안받아주겠지. 그게 문제군."

노 대통령의 여야 영수회담 제안, 한나라당의 거부, 전효숙 헌재소장 지명철회, 김근태 의장의 청와대 만찬 참석 거부, 노 대통령의 임기 발언으로 진행된 일련의 해프닝이 일어난 뒤에 여의도에 떠도는 허무개그 중의 하나다.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당적 문제가 최근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갈등의 핵심 문제가 되어 버렸다. 적어도 현재까지 노 대통령의 입장은 "당을 지키겠다"는 뜻이 분명해 보인다. 통합신당을 지역주의로 규정하며 자신이 만든 우리당의 해체를 앉아서 지켜보지 않겠다는 의지다.

현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카운터파트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김 의장은 1일 "통합신당을 지역당으로 비난하는 것은 제2의 대연정과 다를 바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6자회담의 교착, 부동산 문제, 한미FTA 갈등을 나열하며 노무현 정부의 총체적 국정운영 실패를 건드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화개혁세력의 결집"을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아젠다인 '지역주의 극복론'에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평화개혁세력 결집론'으로 응수한 것.

앞으로도 상당기간 양측은 이같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겠지만, 노 대통령이 당에 남느냐, 아니면 떠나느냐는 문제의 최종 결론은 열린우리당의 몫이다. 하지만 이 결론을 이끌 주체가 지금의 열린우리당 지도부, 그 가운데 김근태 의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김 의장의 지도력에 대해서는 당내의 경쟁세력뿐만 아니라 그를 수장으로 여기는 재야파, 특히 민주화운동 경력을 가진 의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하나, 민주화운동 세대의 불신

김 의장의 정치적 자산은 사실 당내 보다 당 바깥에 더 많다. 정치권 바깥에 머물고 있는 민주화운동 출신 인사들에게 김 의장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에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그에 대한 비판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민주화운동권의 허리세대이자 정치권 진출이 늦었던 70년대 중반 학번, 소위 '긴급조치세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그들을 건드린 결정적인 계기는 "민주화 운동 세력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무력했다"는 김 의장의 발언. 보수 언론이 이 발언을 민주개혁 세력의 무능을 확인하는 확실한 증거로 대서특필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무능한 사람들'로 도매금에 넘어간 민주화 운동 출신자들의 분노는 만만치 않았다.

특히 대학시절은 물론 20대와 30대 중반까지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느라 사회 출발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각 분야에서 중추로 활약하거나 견실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불특정 다수에게는 매우 불쾌한 폄하로 받아들여졌다.

이 범주에 포함되는 한 인사는 "정치권에 진출한 자기네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무능했다고 이야기를 했어야지, 왜 민주화 운동권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하느냐"고 격정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민주화 운동 노장세대, 즉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 학번들에게서도 무언가 불안한 시선이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 밖에 포진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김근태와 견줄만한 정치인이 없다는 인식이 신앙처럼 자리 잡고 있다. 김 의장에 대한 확고한 사랑과 믿음이 '긴조세대'에 비해선 확실히 견고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그들 사이에서도 한두 마디 씩 불만 섞인 소리가 나온다. 이 불만은 김 의장을 직접 겨냥했다기보다는 김 의장의 일부 핵심 참모진을 향해 있다.

"모 씨가 근래에 김 의장의 눈과 귀를 모두 장악하고, 노장세대를 포함한 외부 인사들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다"는 얘기는 한두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 아니다. 이런 참모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김 의장이 당을 장악하고 나아가 대권에 도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둘, 재야파의 자괴

김근태계로 알려진 우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김 의장은 이미 대권 주자는커녕 킹 메이커 역할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는 매우 충격적인 평가가 나왔다. 이 평가의 근거는 매우 단순하지만 대단히 예리하다. "김 의장이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정치역량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는 것.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워야 하는 때에는 쉽게 물러서거나 그저 변죽만 울리다 만 것이 지지그룹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국가지도자로서 인상을 심어주는 데 실패한 원인"이라고 이들은 파악한다.

한 재야파 의원은 김 의장이 2004년 분양원가 공개 문제를 둘러싸고 노 대통령과 벌인 소위 '계급장 논쟁'을 결정적 분수령으로 봤다. "그 때 당연히 계급장을 떼고 토론을 했어야 했다"는 것이 그의 평가.

당 의장으로 취임한 뒤인 지난 6월 김병준 교육부총리 임명에 대한 당의 반대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하지 못했던 점도 대표적인 사례다. "청와대와의 대결에서 번번히 꼬리를 내린 김 의장을 노 대통령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의장을 무시하는 듯한 노 대통령의 행동은 그동안 수차례였다. 심지어 독대할 때 '육두문자에 가까운 발언'으로 김 의장의 기를 꺾어놓은 일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까운 예만 봐도 김 의장이 의욕을 가지고 발표했던 뉴딜 구상, 광복절 사면에 기업인 포함 요청 등이 묵살됐다. 김 의장 스스로 "네 차례나 면담을 요청했는데도 청와대가 거부했다"고 밝힌 대목은 그 중 압권이다. 그 의원은 "청와대가 천정배 의원은 요청하니까 바로 만나주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28일 청와대 만찬 거부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그 의원은 "김 의장이 한 건 했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다음날 노 대통령의 임기 및 탈당 발언으로 국면이 뒤집혀 버리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김 의장의 청와대 만찬 거부 기사는 신문 정치면의 윗자리에 하루도 채 머물지 못하고, 노 대통령의 사퇴 발언에 묻혀 버렸다.

게다가 김 의장의 청와대 만찬 초청 거부에 대한 평가도 싸늘했다. 김 의장이 만찬 참석을 거부할 때 초청 받은 다른 지도부와 사전 논의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의원들에게 나는 안갈 테니까 당신들은 가고 싶으면 가라는 식으로 접근했다는 것.

"만약 다른 의원들이 청와대 만찬에 참석하고, 거기서 청와대가 당에 주는 선물을 한두 개 내놓았더라면 김 의장은 완전히 왕따가 됐을 것 아니냐"는 게 그의 지적이다. 자칫하면 결정적인 패착이 될 수도 있었던 패가 다행히 김한길 원내대표 등이 어떻게 우리만 가느냐고 불참 대열에 동참함으로써 체면을 세우게 됐다는 것이다.

이 해프닝에 숨은 뜻은 김 의장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수를 뒀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정치적 감각에 해당하는 문제이자, 당 의장으로서 지도부 내의 컨센서스를 모아내는 데에도 실패한 '리더십'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 의장이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 관계자를 만날 때 늘 개인적 의견을 말할 뿐 당의 결집된 의사를 전달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지적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당의장으로서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당론을 결집해내고, 나아가 이를 무기화해 청와대를 압박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민주화운동 세대의 폭넓은 총애를 바탕으로 정치권에 등장한 재야파의 자괴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이 없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아직까지는 김 의장을 다시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면 김 의장이 결자해지 할 수 있을까? 당장 눈앞엔 노무현 대통령이 넘어야 할 큰 산으로 서 있다. 김 의장의 각오는 결기에 가까워 보인다. 노 대통령과의 '마지막 승부'가 이미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있음을 직감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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