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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정한 판타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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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정한 판타지 영화다!

[특집] <판의 미로>에 시선이 모아지는 세 가지 이유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시리즈를 시작으로 몇 년 전부터 12월 극장가는 매년 판타지 영화 열풍으로 들끓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을 끝으로 막을 내린 <반지의 제왕>과 올 겨울 4편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선보이는 <해리포터> 시리즈는 개봉 때마다 가히 세계적인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이 두 시리즈의 기록적인 흥행에 자극 받아 이후 여러 판타지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막을 내린 지금, 지난 해 개봉한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 여러 신생 판타지 영화들이 <반지의 제왕>의 빈 자리를 노렸지만 뚜껑을 열어 본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런 가운데 이번 겨울 개봉을 준비하는 판타지 영화 한 편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멕시코 출신의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새로운 판타지 영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그것. 지난 6월 칸 영화제에서 상영돼 22분 간의 기립 박수를 받아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유명 영화 온라인사이트 살롱닷컴의 평론가 앤드루 오헤어는 "내가 칸에서 만난 최고의 영화"라고 말했을 정도. 그렇다면 이 <판의 미로>가 지금까지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외면해 온 칸 영화제를 새롭게 매료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알아 본다.
<판의 미로>는 어떤 이야기?
프랑코군의 승리로 스페인 내전이 끝난 지 5년이 지난 1944년. 정교 분리와 농지 개혁의 구호를 내걸었던 좌익 인민전선은 산 속으로 숨어 들어 게릴라 부대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를 여읜 오필리아(이바나 바케로)는 어머니가 비달 대위(세르지 로페즈)의 아이를 임신함에 따라 어머니와 함께 비달 대위의 부대로 거처를 옮긴다. 부대와 마주한 산 속에 거주하는 인민군 게릴라 색출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비달 대위는 살인과 고문을 일삼는 냉정한 인물. 동화책 읽기를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소녀, 오필리아는 비달 대위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어느 날 요정으로 변하는 곤충을 따라 숲 속의 미로로 들어가게 된 오필리아는 지하세계의 사자이자 나무의 신인 '판'(더그 존스)을 만나 사실은 자신이 지하세계의 공주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서 지하세계의 공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세 가지의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 오필리아는 '판'으로부터 마법의 책과 마법의 돌을 받아 들고 침대로 돌아온다.
원작도, 컴퓨터 그래픽도 없다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시리즈,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나니아 연대기>는 모두 유명한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판타지 소설의 고전으로 불리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 세계 최고의 베스트 셀러로 꼽히는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대니얼 핸들러의 잔혹 동화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바로 그것들. 현실 세계가 아닌 상상의 공간과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판타지 세계를 그려 보이기 위해서는 작가의 오랜 구상이 녹아 있는 문학의 힘을 빌어와야 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듯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세트 스케치와 영화 속에 구현된 장면 ⓒ프레시안무비
그러나 <판의 미로>는 다른 판타지 영화들과 달리 그와 같은 든든한 문학적 지원군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에 이 영화는 전적으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상상력을 빌어 태어났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요정 '판'과 '거대한 두꺼비', 식인 괴물인 '창백한 남자'는 각각 감독이 스케치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탄생됐다. 이 과정에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그림 형제, 아더 래크함, 에드문드 둘락, 케이닐슨의 동화책을 참조했고 요정 일러스트로 유명한 아서 래컴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신공양과 어둠, 함정의 모티브가 많은 켈트 신화도 참고했다. 특히 눈동자를 손바닥에 달고 오필리아를 뒤쫓는 '창백한 남자'의 캐릭터는 고야의 그림 '새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새턴'은 고야가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자신의 자식들을 잡아먹는 장면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 '창백한 남자'의 식당 벽면에 붙어있는 그림에서 '새턴'의 향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더욱이 <판의 미로>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자랑하는 여타의 판타지 영화들과 다리 컴퓨터 그래픽의 비율을 현저히 낮추고 직접 세트를 만드는 등의 강도 높은 수공예 작업을 통해 완성됐다.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거나 컴퓨터 그래픽을 대거 사용하지 않은 탓에 제작비는 대폭 절감됐다. <판의 미로>의 제작비는 2천만 달러 선. 다른 판타지 영화의 제작비와 비교할 때 턱없이 낮은 액수다. 음울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세트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윌리엄 스타우트의 작품으로 바스크 시골의 건축물을 참고한 것이다. <판의 미로>의 특수효과는 <킹콩>, <언더월드>,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블레이드3>를 작업했던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팀 베프 반스, 마이크 보즐릭, 에버렛 버렐이 맡았다.
판의 미로 ⓒ프레시안무비
판타지와 슬픈 역사가 만나다 <판의 미로>를 판타지 영화라고 부르는 것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가 된다. 영원한 삶을 누리는 지하 세계가 등장하고 요정과 거대한 두꺼비, 식인 괴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맞은 편에는 뼈 아픈 인간 세계의 역사가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1944년 스페인. 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1939년에 끝난 스페인 내전의 포화는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상태다. 산 속에서 숨어 지내는 게릴라 시민군을 체포, 저지하려는 스페인 정규군의 비달 대위는 영화 속에서 별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후 파시즘 정권을 수립한 독재자 프랑코를 빗댄 캐릭터인 셈이다.
판의 미로 ⓒ프레시안무비
따라서 <판의 미로>는 다른 판타지 영화들에 비해 판타지 부분의 비중이 적은 편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현실과 판타지를 아우르는 영화의 품이 더 넓게 느껴진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스페인 내전과 요정 이야기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요정 이야기에는 괴물이 있고, 정치가들 사이에는 전쟁이 있다"고 말했다. 게릴라 군을 생포하고 관련 인물을 색출할 때마다 고문 기구를 골라가며 잔인한 고문을 일삼는 비달 대위의 캐릭터 때문에 현실 부분은 길예르모 델 토로 특유의 공포 색채가 짙게 깔려 있다. 그 공포감이야말로 판타지 장면보다 오히려 현실 장면에서 보는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하는 요소다. 오필리아가 비달 대위의 눈을 피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인지, 게릴라 군을 돕던 메르세데스(마리벨 베르두)가 비달 대위의 고문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지, 영화는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감정을 무서운 힘으로 흔들어 놓는다. 길예르모 델 토로, 그의 이름을 기억하라
현장을 지휘하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사진 맨 오른쪽) ⓒ프레시안무비
<판의 미로>가 선보이는 판타지 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은 전적으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세계가 축적된 결과다. 1993년 모국 멕시코에서 <크로노스>로 데뷔한 그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비평가 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이후 할리우드로 활동 무대를 넓혀 <미믹>, <블레이드2>, <헬보이> 등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2001년에는 멕시코로 돌아와 <악마의 등뼈>를 만들기도 했다.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39년 고아원을 배경으로 죄 없이 죽은 소년의 비밀을 그린 <악마의 등뼈>는 <판의 미로>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영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 스스로도 "<판의 미로>는 처음부터 <악마의 등뼈>의 일부였다"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스페인 내전이나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의 황량함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즐겨 다루는 소재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판의 미로>와 <악마의 등뼈> 말고도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상업적 감각을 만끽할 수 있는 <헬보이> 역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영화들은 모두 파시즘에 대한 반감을 내비치고 있는데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직접 "파시즘은 조금씩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한다"고 말했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판타지적인 요소를 지녀 왔다. <크로노스>에서는 연금술과 시간여행장치가, <미믹>에서는 바퀴벌레의 천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괴물 '미믹'이, <악마의 등뼈>에서는 유령이 등장하고, <블레이드2>와 <헬보이>는 뱀파이어와 흑마술, 악마를 소재로 끌어들였다. <판의 미로>의 판타지가 보여주고 있는 어두운 색채는 길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 전편에 흐르고 있는 스타일이자 정서다. 판타지 장면뿐 아니라 현실 부분조차 음울하고 컴컴한 색채를 드러낸다.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요정 '판'의 성격 역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안티 히어로의 인물들과 닮아있다. 악마의 자식으로서 악의 세력과 맞서는 <헬보이>의 헬보이가 대표적인 안티 히어로 캐릭터였다. <판의 미로>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사실 자신의 첫 번째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밝힐 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작품이다. <판의 미로>는 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영화 대사 전부가 스페인어로 돼 있다. 그 점은 길예르모 델 토로가 대작 판타지 영화의 중심지인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영화적 색채를 온전하게 담아낸 새로운 판타지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비영어권 판타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판의 미로>의 흥행 여부가 주목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판의 미로>는 11월 30일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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