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시이 가쓰히토
출연 반노 마야, 사토 타카히로, 아사노 타다노부, 테즈카 사토미
배급 스폰지 |
등급 전체 관람가
시간 143분 | 2004년 |
상영관 스폰지 하우스(시네코아) 일본영화는 이런 것이다. 아니 일본은 이런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원하는 일본은 이런 것이다. 영화는 종종 그 나라 문화의 진정한 숨결을 느끼게 한다. 이스라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다 미치광이 시오니스트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비상업 인디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여기 사람들이 모두 다 신사 참배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沒역사주의자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일본의 한 켠에서는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작은 것의 행복과 느리게 살아가는 것의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렇게 만드는 게 바로 지금의 일본 인디영화들이다. 오늘 소개하는 이시이 카츠히토 감독의 <녹차의 맛>이 그런 영화의 대표격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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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의 맛 ⓒ프레시안무비 |
<녹차의 맛>은 도쿄 외곽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들이 꾸리는 삶의 단위는 여느 가정처럼 평범하지만 구성원들의 면면을 살펴 보면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게 이 영화를 보는 묘미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처음 동안에는 이 구성원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가 힘이 들 정돈데, 그 각각의 모습들이 만만치 않은 재미를 준다. 이 가족의 중심에는 물론 '엄마'가 있다. 엄마는 그 동안 아이 둘, 그러니까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하지메(사토 타카히로)와 사치코(반노 마야)를 키우느라 중단했던 애니메이션 작화를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다. 남편은 정신과 상담의로 종종 가족들에게 최면술 연습을 하는 사람이고 약간 치매기가 있는 시아버지는 알고 보니 엄마의 옛날 사부이자 애니메이션계에서 나름대로 전설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남편의 동생이자 또 다른 애니메이터가 한 명 더 등장하고 도쿄에서 음향감독으로 일하면서 누나 집에 기숙하고 살아가는 엄마의 동생, 그러니까 아이들의 외삼촌도 나온다. 재미있는 건, 영화 속에 나오는 등장 인물 모두 자기만의 '아픔'과 '결핍'이 있다는 것이다. 외삼촌은 실연의 상처가 있고 엄마는 재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아버지는 일상에 좀 지쳐있고, 아들 하지메는 자기가 짝사랑하는 여학생마다 도쿄로 전학을 가 버린다. 무엇보다 어린 딸 사치코는 철봉에 매달려 한바퀴 몸을 돌리는 것이 안 돼 고민이다. 어찌 보면 매우 자잘한 고민에 불과한데다 극히 소시민적인 일상에 다름 아닌 것들이지만 우리의 삶이란 결국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쩌면 그 동안 항상 큰 얘기, 거대 담론에 해당하는 것, 국가나 사회나 이데올로기 같은 것에만 집중하는 척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문어체의 삶이지 구어체의 삶은 아니다. 이시이 카츠키토 감독은 이들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구어체의 삶에 보다 더 천착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그게 삶의 진실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가족의 평화는 거기서 찾아지며 세상의 안위도 거기서 찾아진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한편으로 보면 <녹차의 맛>은 군사적 팽창주의로 향하고 있는 작금의 일본에 대해 내밀하면서도 통렬한 자기 비판을 가하고 있는 영화인 셈이다. 반전과 평화는 거창한 정치적 구호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녹차가 갖는 은근한 향기처럼, 조용히 음미하게 되는 그 '맛'처럼 작지만 구체적인 삶의 행위로 실천되는 것이다. <녹차의 맛>이 작은 영화이되 큰 영화로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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