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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訪美, "챙길 것 확실히 챙겨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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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訪美, "챙길 것 확실히 챙겨오라"

<데스크칼럼> '자주'ㆍ'신뢰' 추상적 논란 벗어나자

“클린턴하고 딱 마주 앉으니까 클린턴이 다리를 꼬데, 그래 나도 꽜지.”

지난 93년 7월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에서 클린턴과의 정상회담 장면을 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일화다. ‘승부사적 기질’ ‘오기정치’ 등으로 유명한 YS의 성격이 외국 국가원수와의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 발휘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 얘기다.

***‘담판형’ YS의 정상외교**

실제로 YS 집권 시절 공식통역을 담당했던 박진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YS는 외국정상과의 회담에서 국내 정치인들과 하던 것처럼 ‘담판’을 벌이려는 자세로 임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YS의 이러한 승부사적 기질은 94년 이른바 ‘북폭위기’ 당시 실제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당시 영변에 대한 제한폭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던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 대해 YS는 자신이 정면으로 맞서 폭격계획을 무산시켰다고 여러차례 회고한 바 있다.

YS 집권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바 있는 김영춘 한나라당 의원의 전언에 따르면 YS는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다. 만약 북한을 폭격할 경우 우리 60만 군대는 나의 명령에 의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알아두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실제로 그러한 YS의 압력 때문에 미국이 북폭계획을 취소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자체적으로 불가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고, 중국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YS가 외국 정상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으려 했는지를 드러내주는 좋은 사례인 것만은 분명하다.

***‘과시성 정상외교’에 매달렸던 군사정권**

군사정권이었던 전두환, 노태우 전임 대통령들은 외국 순방과 정상외교를 자신의 중요 치적으로 내세우려는 경향이 강했다. 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레이건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미국측에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구걸’하기도 했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과시성 정상회담에 얼마나 매달렸는지를 드러내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지난 92년 6월, 한­중간에 비밀 수교교섭이 한창일 무렵 한국 측 수교교섭 팀에게 노태우 대통령의 중국 공식방문을 관철시키라는 갑작스런 지시가 떨어졌다. 당시 한중 수교교섭은 대단히 험난한 과제였다. 암호명 ‘동해작전’으로 불릴 만큼 비밀리에 추진됐고, 한국전쟁에서 맞서 싸웠던 나라와의 수교이며, 중국-북한 관계, 한-대만 관계 등이 얽혀 있는 최고난도 협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협상 과정에 갑자기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라’는 지시가 떨어졌으니 우리 협상팀의 입지가 얼마나 좁아졌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당시 협상 지휘를 맡았던 한 외교관은 “정상회담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는 과거사 정리, 북한과 중국간의 관계, 대만 문제 처리 등의 주도권을 잃게 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해 8월 한중수교가 체결됐고, 한달만인 9월 노태우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성사됐다. 정상회담을 얻기 위해 다른 많은 실익을 포기해야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YS의 ‘담판형’ 정상외교도 큰 범주에서 이러한 과시성 정상회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원래 ‘승부사적 기질’이 강한데다 ‘문민대통령’이란 정통성까지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한 YS는 외국정상과의 만남에서 국가적 실익을 어떻게 얻어낼 것인지 골몰하기 보다는 그저 ‘강대국 정상들과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의 연출에 더욱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서보다 더 대접받은 DJ의 정상외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나마 실리외교를 추구한 첫 대통령이라 할 만하다. 당선 직후부터 IMF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외교에 매달려야 했던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시대상황도 많이 바뀌어 정상회담을 두고 ‘과시성’ 운운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제 정상외교를 위한 외국 순방 횟수에서 DJ는 총 23회, 지구 열 바퀴에 해당하는 40만8443km를 기록해 역대 최고다. 그 이전 최고기록이었던 YS의 15회 순방에 비해 대폭 증가한 숫자다.

또한 ASEAN, ASEM 등 다자간 회담 참여 형식을 통해 1회 순방에 수많은 외국 정상을 한꺼번에 연쇄 접촉하는 방식의 실무외교 틀이 자리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DJ 집권시절, 특히 후반부에 청와대에 재직했던 측근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DJ의 외국순방과 정상외교에도 개인적인 고려가 짙게 깔려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국에 가면 외국 정상들도 DJ를 존경하는 빛이 역력하다. 우선 연령이 자신들보다 훨씬 위이기 때문에 연장자 대접을 해준다. 또 수십년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옥고를 치른 대통령에 대한 경외감이 있다. 게다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에 대한 예우도 깍듯이 갖춘다. 그래서 외국 정상들은 DJ와 마주앉을 때부터 공손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취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정무수석으로 재직했던 조순용 전 수석의 전언이다. 국내에선 아들이 둘씩이나 구속되고 임기말 레임덕까지 겹쳐 힘이 빠졌지만 외국에만 가면 존경받고 대접받는 대통령. 이런 이유에서 아마도 DJ는 임기 후반부에 갈수록 외국 순방을 즐겼던 것 같다.

***노 대통령 방미에 대한 두 가지 주문**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취임 후 첫 외국 방문이며, 노 대통령 개인적으로도 첫 번째 방미다.

대통령의 방미에 대해 이런저런 주문이 많다.

한쪽에선 ‘당당한 자주외교’를 주문한다. 민주노총, 전농, 민교협, 민노당 등 진보 성향의 학계·시민단체·대학생 등 300여명은 10일 오전 서울 YWCA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화를 사랑하고 한미관계의 새로운 정립을 바라는 한국민의 의지를 믿고 당당하고도 슬기롭게 자주외교를 펼쳐라”고 대통령에게 주문했다.

구체적으로는 “이번 회담에서는 북미 핵 갈등의 평화적 해결,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한 공개사과, 한미 SOFA 전면 개정, 전시 작전지휘원 반환 등이 요구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이전 “할 말은 하겠다”던 노 대통령으로 돌아가 달라는 요구다.

반면 다른 한편에선 ‘한미간 신뢰회복’을 강조한다. 한나라당 최병렬 의원은 지난 2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방미에선 부시와 신뢰를 회복하기를 바란다. 미국이 노 대통령을 생각하기에 아직도 의심을 가지고 있다. 이랬다 저랬다 하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보수 성향의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신뢰회복’을 주문한다. “부시 대통령은 DJ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한미관계가 삐걱거렸고, 북핵문제도 점점 더 꼬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직 반신반의하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한국이 미국과 입장이 다르지 않고 한미공조가 최우선임을 확신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일단 ‘신뢰’ 쪽에 무게중심을 둔 듯하다.

9일 언론사 외교안보통일분야 논설위원들 및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위원들과의 오.만찬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책임 있는 양국 정상이 만나 한국의 반미감정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신뢰를 더 하는 것을 첫째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또한 “방미 목표를 좀 낮게 잡고 욕심부리지 않겠다”면서 ▲한미간 신뢰강화 ▲굳건한 한미동맹관계 유지 ▲주한미군의 현상 유지 ▲한국 경제안정과 개혁에 대한 신뢰감 조성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참여와 한미투자협정 제기 ▲한미 양국 국민간 상호 오해 해소 등 6가지를 방미 목표로 제시했다.

***선택된 목표 최대한 달성하는 방미길 되길**

이러한 방미목표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지금 당장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외교는 각자 자신의 국익을 위해 실리를 추구하는 치열한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어떤 목표를 내걸고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지 매 순간 전략적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전략적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좀더 시간이 흐른 뒤 실제로 우리나라가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대차대조표가 나와 봐야 알 수 있는 문제다.

또 노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6가지 방미목표는 이미 그 자체가 외교적 언급이다. 표면에 내건 목표와 달리 우리가 챙겨야 할 목표는 따로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노 대통령의 방미에 대해 지나치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서 ‘자주외교’가 우선인지 ‘신뢰 회복’이 우선인지 추상적 논쟁을 벌이는 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런 논란에 매달리다가는 앞서 전임 대통령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적 이익은 뒷전에 둔 채 대통령 개인의 정략적 목표나 ‘모양새’ 내기에만 급급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국내의 상반되는 주장에 좌고우면하다가 정작 할 일은 제대로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물론 부시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 임하는 노 대통령의 기본자세에 대한 논란이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때가 지났다.

현 시기 국제상황과 우리의 처지를 고려해서 이미 전략적 선택이 내려졌다면 이젠 그렇게 선택된 목표가 최대한 달성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노 대통령의 방미길,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라는 애매한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주고, 더 많이 얻을 것인가”라는 구체적 고민과 함께 하길 바란다.

“확실히 챙겨 오겠다”는 실무형 협상전문가로서의 대통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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