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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아니라 돌봄의 결핍 고민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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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아니라 돌봄의 결핍 고민해야 할 때"

[화제의 책]<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사람들은 집을 짓느라고 너무 바쁩니다. 고층 아파트가 사람 살기에 좋은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돈이 된다고 아파트로 몰려갑니다. 아이들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그곳으로 몰려갑니다. 집에 돈을 넣는 만큼 집안은 가난해지고 아이들은 피폐해집니다. 집은 많아지고 나라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다는데 왜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까요?"

자고 나면 치솟는 수도권 아파트 가격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넋을 잃고 있는 요즘, 한국 사회가 진정 고민해야 될 '거시적인' 문제는 가족과 학교, 그리고 마을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조한혜정 외 지음, 또 하나의 문화 펴냄)는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한 책이다.

최근 부동산 열기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인들의 불안증은 가족과 마을 공동체의 해체로 인한 돌봄의 결핍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 개개인이 직면하는 외로움과 무기력함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돌봄의 관계망'을 용납하지 않는 지구화된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 책의 공저자들은 끊임없는 경제 성장과 팽창을 도모하는 토건국가적 발상으로는 현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돌봄의 결핍이 사회 토대 허물고 있다"
▲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조한혜정 외 지음, 또 하나의 문화 펴냄). ⓒ프레시안

"식량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식욕이 문제가 되고 경제 생산이 중심이 되듯이, 애정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외로움과 무기력함이 문제가 되고 사회적 관계성의 생산이 중심이 돼야 한다. 지금은 그 어떤 것보다 애정, 곧 관계성과 돌봄의 결핍이 사회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

전통적으로 관계성과 돌봄은 여성의 영역이었다는 점에서 돌봄의 결핍은 여성의 책임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일방적으로 부과되던 '돌봄 노동'을 여성들이 계속 떠맡아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하지도 않을뿐더러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여학생 10명 중 8명이 대학에 진학하고, 여성들의 절반 이상이 취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남성=부양자/여성=돌봄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

또 공공 영역의 경쟁과 노동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노동자들은 노동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적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투입해야 한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는 "경쟁적 시장과 공적 영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성을 불문하고 돌봄의 능력이 퇴화된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변해야 하는 게 여성인가, 사회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환자, 노인, 장애인들은 여전히 돌봄이 필요하다. 누가 이들을 돌볼 것인가?

시장을 통해 '돌봄 노동'이 상업화 되는 것, 즉 필요한 사람이 돈을 주고 '돌봄 노동'을 사는 쪽으로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은 결코 정답이 아니다. 허라금 이화여대 교수는 이 책에서 "가난한 여성이 돌봄의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난 후, 남아 있는 가족은 최소한의 돌봄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수가 많다"며 "'돌봄 노동'의 상업화는 '돌봄의 계급화'를 심화시킨다"고 밝혔다.

따라서 상업화가 아니라 '돌봄의 사회화'가 필요하다고 허 교수는 주장한다. 이는 "가족의 돌봄을 공적인 서비스로 해결하자"는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돌봄의 사회화'는 돌봄을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하던 기존 인식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다. 돌봄을 사회적인 영역으로 들여와 이를 개인의 의무인 동시에 권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돌봄 노동을 둘러싼 성별 분업을 해소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기존 남성 중심 체제에 여성을 편입시키는 것은 '돌봄이 결핍된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성도 '돌봄 노동'의 주체가 돼야 한다. 남성들도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에 대한 의무와 동시에 타인을 돌보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권리를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 이 과정은 돌봄 노동을 하찮고 사소한 것으로 보는 사회적 가치 평가에 대한 자연스러운 문제제기로 이어질 수 있다. 넬 나딩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우리는 변해야 하는 것이 여성인지 사회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조한혜정 교수는 "'돌봄 결핍증'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남녀 모두가 공공 영역의 시민이자 돌봄의 대상과 주체가 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향한 전환이 시급해지고 있다"면서 "이는 기술주도적인 '차가운 근대'(cold modern)를 어떻게 상호 소통과 돌봄을 중심으로 한 '따뜻한 근대'(warm modern)로 만들어 갈 것인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의미에서 가족과 학교, 그리고 마을을 새롭게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은 기존의 가치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라고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2부에는 성미산 학교, 해남 서정분교, 꿈틀학교, 하자센터 등 대안학교 구성원들의 이야기와 3부에는 경기도 일산 후곡마을의 '녹색마을 만들기', 경기도 고양시 원흥동의 '마을 가꾸기 사업',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자투리 공간 프로젝트' 등 실제 가족, 학교, 마을 공동체를 재구성하려는 이들의 경험담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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