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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무릎 꿇으면 하인으로 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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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무릎 꿇으면 하인으로 살 것 같았다"

[인터뷰]전태일노동상 수상한 부천 세종병원지부

솔직히 의외였다. 어느 해인들 그렇지 않겠냐만 올해 노동계에도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았다. 이 와중에 부천 세종병원 노조가 올해 제15회 전태일노동상 수상단체로 선정된 것은 약간 뜻밖이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니 불과 30여 명의 조합원으로 181일을 싸운 끝에 병원의 노조 와해 움직임을 저지한,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더군다나 병원 측은 노조의 파업에 맞서 외부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조가 만들어진 부천 세종병원은 지난해 8월까지 매해 병원측과 별다른 탈 없이 단체협상을 체결해 왔다. 때문에 지난 10년 간 특별한 쟁의행위도 없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세종병원은 지난해 8월 단체협약을 해지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노조에 통보했다. 그 이후 노조의 교섭 요구에도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며 노조의 요구사항은 하나도 들어줄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병원이었다. 그러나 노조의 오랜 파업으로 병원은 지난 7월 19일 결국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단협 잠정합의안에 서명했다.

전태일노동상 심사위원회는 세종병원을 수상단체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세종병원지부는 일방적 단협해지를 통한 노조 와해음모를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용역경비의 잔혹한 폭력성을 사회문제화 시켜내는 등 중소사업장의 승리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용역경비 만행으로 파업참가 조합원 오히려 늘어
▲ 제15회 전태일노동상의 수상자가 된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노조 부천 세종병원지부의 김상현 지부장. ⓒ프레시안

9일 부천 세종병원의 주차장 한켠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김상현 지부장(32)은 "지난 2~3년 동안 노조가 많이 약해져 있었고 최근 10년 간 쟁의행위 한 번 한 적 없어 병원 측이 지난해 8월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하고 노조의 요구사항은 하나도 못 들어준다고 했을 때만 해도 파업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단체협상을 일방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통보하는 것은 기업별 노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신종 노동탄압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사측이 노조를 아예 '투명인간' 취급함으로써 무력화시키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작심한 듯' 단협 해지를 통보한 병원은 노조와의 교섭 과정에서도 '막무가내'로 나왔다. 그는 "당시 중재하던 지방노동위원회 관계자도 '사측이 저렇게까지 나오면 중재할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병원측은 노조가 요구한 단협안에 대해서는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으며 심지어 조합원 150명 이상에만 전임자를 1명 두는 것으로 하자면서 사실상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했다.

"협상 과정에서 노조가 일부 양보를 할 수도 있지만 노조 자체를 내놓을 수는 없지 않나. 파업을 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커서 애초에는 지난 1월 18일 지부장인 나만 삭발하고 단식을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그날 병원은 용역깡패를 동원해 내가 병원에 들어오는 것조차 막았다. 용역깡패들의 횡포를 지켜보던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각자 일터에서 내려와 농성에 결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30명이던 파업참가 인원이 오히려 시간을 거듭할수록 늘어나 181일이 지난 시점에서는 35명이 됐다. 조합원이 아니었던 사람도 "병원이 너무 하는 것 같다"며 조합 가입서를 내고 파업에 참가하는 일도 있었다. 노조는 현재 간호사, 물리치료사, 원무과 직원 등 다양한 병원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다.

"'산별노조의 힘' 절감했다"

농성을 진행하는 내내 조합원보다 더 많은 숫자의 용역경비가 병원에 상주했다. 환자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서도 용역경비들은 수시로 조합원들의 멱살을 잡고 윽박질렀다. 화분을 던지고 소화기를 뿌리기도 했다.

김상현 지부장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용역깡패의 투입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용역깡패들을 보면서 조합원들이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며 "이 상황에서 우리가 무릎을 꿇으면 더 이상 이 병원에서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주인과 하인의 관계로 살아야 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1일 동안의 파업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게다가 전체 조합원의 3분의 2가 자녀를 한두 명씩 키우는 어머니들이었다. 이 오랜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데는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의 물심양면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매달 1인당 1000원씩 걷어 우리에게 생계비 지원을 해줬다. 덕분에 우리 병원 조합원들이 매달 70만 원씩 생계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투쟁기금 지원이라고 때때로 돈을 걷어서 전달해줬다. 산별노조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고 참 고마웠다."

"전태일 정신은 '나로부터의 싸움'"

▲ 지난 12일 전국노동자대회 자리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로부터 상을 받고 있는 김상현 지부장. ⓒ프레시안

전태일노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조합원들은 "기륭전자 등 우리보다 더 힘들게 싸우는 사업장도 많은데 우리가 어떻게 이 상을 받냐"고 했다고 한다.

김상현 지부장은 "최근 기업별노조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단협 해지 통보'라는 신종 노동탄압에 맞서 승리했기 때문에 수상자로 선정된 것 같다"며 "명목상으로는 우리 지부에게 주어졌지만 사실은 2006년 올해 싸우고 있는 모든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측과 긴 싸움을 끝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의 머리는 짧게 잘려져 있었다. 그는 지난 8일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집단 삭발식에서 다시 머리를 밀었다. 그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이 필수공익사업장에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필수업무 유지 조항을 둬 병원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로드맵이 지금대로 통과되면 병원노동자들은 이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며 "아마 우리의 싸움이 있기 전에 지금 로드맵 안이 있었다면 세종병원지부의 싸움은 애당초 시작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있는 싸움을 새로 시작한 김 지부장은 "전태일 정신은 '나로부터의 싸움'에 있다"며 "다른 사람이 무언가 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바로 전태일 정신의 실천이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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