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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극장괴담도 아니고...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요즘 어디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개봉영화 리뷰를 쓰는 게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지난 주만 해도 그랬다. 개봉영화 편 수를 세어 보니 8편이나 됐다. 배창호 감독의 <길>에서부터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스파이크 리의 <그녀는 날 싫어해> 등등까지. 편 수가 많다 보니 글을 쓰는 일은 고사하고 영화를 따라가며 보는 일조차 헉헉댈 때가 많다. 비수기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한데 요즘엔 일주일에 평균 6~7편씩, 한달이면 24~28편의 영화가 개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이상한 것은 매주 월요일에 박스오피스 집계를 체크할 때면 순위에 오르는 작품이 10작품을 채우지 못할 때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어떤 주는 간신히 아홉 작품 정도를 채우거나 어떤 주는 심지어 일곱 작품 정도만 집계되는 때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나머지 영화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무슨 '극장괴담'도 아닐텐데 도대체 영화들이 극장에 나오는 순간 다들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이건 곧, 전국 1600개 정도의 스크린에 매주 10편 미만의 영화만이 걸리고 있다는 얘기이며 나머지 영화가 상영된다 하더라도 아주 '구석진' 스크린을 찾아가야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말한 영화들, 그러니까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전국 4개관, 켄 로치의 영화는 단관, 스파이크 리의 영화 역시 CJ인디상영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영화계 이곳저곳에서 아우성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욘드 더 씨> 같은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 AFM의 이승 사장 같은 경우도 만나면 한숨부터 쉬는 사람이 됐다. 이승 사장은, 한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외화를 가지고는 영화 사업을 할 수가 없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가 횡행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고집스럽게 그리고 뚝심을 가지고 '좋은 외화'를 들여 와 배급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요즘 점점 더 회의에 빠지고 있다. DVD 제작사인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이철승 대표도 한국 시장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됐는지 최근 들어 새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20C폭스 사장을 지내기도 했던 이 대표는 평소의 감각대로 지난 해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에 다 에드 해리스와 다이앤 크루거가 주연을 맡은 베토벤 영화 <카핑 베토벤>을 '덥썩' 수입했다가 요즘 이만저만 골치가 아픈 게 아니게 됐다.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반응은 다들 한결 같다. 일단 영화에 대해서는 에브리바디 오케이. 그러나 막상 극장에 걸자고 하거나 배급을 맡아 달라고 하면 대부분 무슨 농담 하냐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고들 한다. "이제 이런 영화, 한국에서는 끝났어요."
관타나모로 가는 길 ⓒ프레시안무비
비상업영화만을 전문적으로 수입, 배급해서 국내에서는 이제는 어느 정도 독보적인 존재가 된 스폰지 하우스의 조성규 대표(엄밀히 말하면 그는 현재 회사 내 별다른 직함이 없다)도 극히 몸을 사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요 몇 년 동안 정말로 '용감하게' 남들이 안 된다는 작품들을 '싸그리' 사 모아 성공시키는 괴력을 발휘했지만 그런 그도 마이클 윈터바텀의 <관타나모로 가는 길> 같은 영화는 수입 직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영화는 그나마 스폰지 하우스에서조차도 개봉되지 못하고 EBS TV로 직행하는 신세가 됐다. 많은 사람들의 얘기대로 이제 정말 이런 영화들은 국내에서 점점 더 찬밥 신세를 받고 있다. 배창호 감독을 전설의 인물로 만들고 있으며 스파이크 리 같은 감독을 인디 감독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는 한국영화가 시장 점유율이 평균 60%를 넘는다고 좋아라 하고들 있다. 이러다가 자칫 당장 내년에라도 한국영화 편 수가 급감해서 시장에 텅 빈 공백이 생기면 어쩔까 두렵다. 한순간에 시장이 와르르 무너질 조짐이 여기저기서 보인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한국영화가 계속해서 잘 되면 된다고? 요즘 한국영화가 너무 잘 되고 있는데 거 무슨 초 치는 얘기냐고? 그것 참.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정말 모르는 소리다. (*이 기사는 영화주간지 '무비위크'에 게재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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