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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청교육대는 정권재창출용…사인조작 의혹"

군 과거사위 "시작부터 끝까지 불법 투성이"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군 과거사위. 위원장 이해동)는 10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1980년 창설한 삼청교육대에 대해 "정권 창출 및 정권 정당화를 위해 설치한 것"이라면서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군 과거사위는 또 사망원인이 자살이나 병사로 알려진 입소자 일부는 타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군 과거사위는 이날 '삼청교육대 사건 진상보고서'를 통해, 삼청교육대의 창설 배경, '순화교육 대상자' 선정 및 분류방식, 삼청교육대의 인권유린 내용, 사망자 처리 의혹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군 과거사위는 "삼청교육대 사건은 공직자 숙정이나 언론인 해직 및 언론 통폐합과 함께 내란죄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국민적 기대와 신뢰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계엄사의 권한을 남용하여 이른바 '사회개혁작업'을 추진하였다는 점과 5.16 군사 쿠데타 직후의 '국토건설단'을 참고하였다는 점을 볼 때, 삼청교육 입안에는 정권창출 및 정당화라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결론내렸다.

군 과거사위는 그동안 의혹이 제기되어 온 삼청교육 기간 중 발생한 54명의 사망자 외의 추가 사망자를 확인하기 위해 추적조사를 실시했으나 "추가 사망자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고, 또한 한탄강변에 사체처리소각장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체처리소각장이 존재하였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군 과거사위는 다만 "자살과 병사로 처리된 5명의 사망자는 구타에 의한 사망자일 가능성이 있다"며 "강제 조사권이 있는 기관에 재조사를 의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군 과거사위는 이밖에 △정부의 공식사과 △역사 연구자에 대한 자료 접근 보장 △삼청교육 인권침해 내용에 대한 역사 교육 및 인권교육 실시 △삼청교육 피해자에 대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실태 조사와 의료대책 수립 △현행 계엄법 상의 계엄업무에 대한 제도적 보완 △피해자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보상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다음은 이날 군 과거사 위원회가 발표한 주요 내용.

■ 삼청교육대 창설 배경 "5.16 쿠데타 흉내내기": 1979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 세력은 사회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1980년 5월31일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해 국정을 완전 장악했다.

국정을 장악한 신군부는 '국민적 기대와 신뢰를 구축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정화' 작업을 추진했고,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는 5.16 쿠데타 직후 설치된 '국토건설단'을 참고해 1980년 7월 '불량배 소탕계획'(삼청계획 5호)를 입안했다. '삼청계획 5호'는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은 채 그 해 8월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통해 '계엄포고 13호'를 통해 발령됐고, 불량배에 대한 일제 검거가 시작됐다.

군 과거사위는 "국보위 상임위가 국무회의나 행정 각 부를 통제하거나 대통령의 권한을 무력화시킨 것은 국헌문란에 해당하고, 폭동행위(10.26)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는 내란행위"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삼청교육대 사건 역시 '내란죄의 한 부분"이라고 결론 내렸다.

군 과거사위는 또 계엄사령부가 권한을 남용한 점, '국토건설단'을 참고한 점, 폭력배 소탕 등을 통한 '사회 정화' 등을 집중적으로 홍보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신군부가 정권창출 및 이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삼청교육대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 분류 심사 수용 과정에도 불법 투성이: 8월 계엄포고 13호가 발령된 뒤 이듬해 1월까지 6개월 동안 총 6만755명이 법원의 영장도 없이 검거됐다. 당시 국보위가 내건 검거대상자는 '개전의 정이 없이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불건전한 생활 영위자 중 현행범과 재범 우려자, 사회풍토 문란사범, 사회질서 저해사범' 등으로 모호한 개념들이었다. 특히 계엄포고 13호가 발령된 것은 8월 4일이었으나, 검거가 시작된 것은 8월1일로 시행 과정도 불법 투성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거된 사람들은 시·군·구 관할 경찰서 단위에서 군·경·검 합심제 방식으로 분류심사를 받았고, A·B·C·D 4등급으로 분류됐다. 이 중 A급은 군사재판을 받거나 검찰에 인계됐고, B급은 순화교육 후 근로봉사, C급은 순화교육 후 사회복귀, D급은 훈방조치를 각각 받았다. B, C급 순화교육 대상자는 입소한 군부대에서 재분류 심사를 받기도 했다.

전체 6만755명의 피검자 가운데 35.9%는 전과사실이 전혀 없던 사람들로, '불량배 소탕'을 통한 사회 정화라는 명분과 전혀 맞지 않는 인물들이 실적용으로 무차별 검거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가들도 다수 검거됐고, 당국은 "노조활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삼청교육대에 보내겠다"고 협박했으며, 일부는 삼청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체 피검자 중에 3252명은 A급으로 분류돼 재판에 회부됐고, 순화교육 대상인 B,C급 3만9742명은 군 부대에 배치돼 삼청교육을 받았으며, 1만7761명은 훈방 또는 환자로 분류됐다.

▲ 80년 제 5공화국 정권 창출의 소용돌이속에서 "사회정화"라는 미명아래 삼청교육대 입소생들이 봉 체조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 군 부대 삼청교육…'지옥':
B·C급으로 분류돼 군부대에서 순화교육 및 근로봉사를 해야 했던 3만742명은 그야말로 '지옥'을 체험해야만 했다. 이들은 전후방 26개 군부대에 배치돼 4주 간 훈련을 받았다. 교육 내용은 주로 유격체조, 기초 장애물 극복, 공수 접지훈련 등 육체 훈련을 위주로 실시됐고, 고문에 가까운 구타와 얼차려가 빈번하게 이뤄졌다.

특히 지시불이행자나 태도불량자는 별도로 설치된 특수교육대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했고, '말을 잘 듣는' 입소자에 대해서는 2주 훈련 후 조기퇴소를 시키는 등 철저하게 '복종'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교육 과정이 이뤄졌다.

특수교육대에 끌려가면 수면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오후 6시부터 취침시간인 오후 10시까지는 개인 반성시간과 정신교육, 암기 및 암기 측정을 받아야 했고, 오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취침한 뒤 오전 6시 기상시간까지 1시간30분마다 강제로 일어나 30분 씩 유격체조를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도 추운 겨울 알몸에 물 뿌리기, 각목과 쇠파이프를 이용한 구타 등의 인권유린 행위가 자행됐고, 견디다 못해 도망가고 싶어도 철조망 근처에만 가도 초소에서 실탄을 사격해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험자는 "새 문신이 그려져 있으면 새를 잡는다고 패고, 호랑이 문신이 있으면 호랑이 잡는다고 패고 집중적으로 구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 여성입소자 319명, 중학생도 최소 17명: 여성 입소자에 대한 가혹행위도 상당했다. 여성 입소자는 319명이었는데, 강원도 화천군 오음리 전 월남파병 훈련소에 모아 놓고 머리를 땅에 박고 엎드려 뻗치기를 하는 '원산폭격', 쪼그려 뛰기 등이 집중적으로 실시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연병장에 돌이 많아 대부분의 여성 입소자들이 원산폭격을 하다가 정수리가 터져 붕대를 감고 다녔다는 증언도 제시됐다.

학생 입소자도 980명이었고 이 중에는 중학생도 17명이 포함돼 있었으며, 문교부도 학생 입소 대상자를 선별해 내무부에 통보하는 등 삼청교육에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또한 '반발심과 저항력을 감소시킨다'는 명목으로 입소 후 3~5일간은 식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2끼니 분의 양을 3끼니로 나눠 배식하는 등 인권유린이 심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 과거사위는 "순화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이뤄진 삼청교육은 정당한 교육훈련의 범위를 넘어서는 반인간적 가혹행위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시킨 행위"라고 평가했다.

■ 순화교육 받고 근로 봉사도…장기수용 불만으로 집단소요도: 혹독한 순화교육을 받고도 '미순화자'로 분류되면 전방 군 부대에서 근로봉사를 해야 했다. 이 인원만 1만16명이었는데, 이들은 도로 보수, 진지 구축, 통신선 매설 등의 작업에 투입됐고, 역시 구타와 얼차려가 일상적으로 자행됐다.

당국은 근로봉사의 불법성을 피하기 위해 '지원서'를 제출받았으며, 이른바 '순화 불능자'를 격리하기 위해 1980년 12월18일 '사회보호법'을 제정해 7578명에 대해 보호감호 처분을 내렸다. 보호감호 처분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부칙'을 통해 편법 처분을 내리는 바람에 재판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강제 수용돼야 했으며, 그 이후에도 기록이 경찰에 넘겨져 끊임없는 감시와 고통을 당해야 했다.

특히 감호생들이 장기수용에 불만을 품어 5, 11, 15, 27사단에서는 집단소요를 일으켰으며, 이 과정에서 하사관 1명과 감호생 3명이 숨지기도 했다.

■ 구타 사망자 '자살·병사' 처리 의혹: 공식적으로 알려진 삼청교육 사망자는 54명. 추가 사망자를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54명의 사망자 중 일부는 기존에 알려졌던 자살이나 병사가 아닌 구타 등에 의해 숨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자살로 발표된 김정호 씨의 경우 1980년 8월7일 사건 초기에는 폭행치사가 사인인 것으로 보고됐지만, 5일 뒤인 12일 보고서에는 사인이 '자살'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군 과거사위는 '사인 조작'에 무게를 뒀고, 한상호, 신동훈, 유치일 씨 등 병사로 숨진 것으로 알려진 인물들에 대해서도 폭행에 의한 사망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군 과거사위는 "전문적이고 조사권한이 있는 국가기관에 재조사를 의뢰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삼청교육대 피해자 단체인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삼인련. 회장 전영순)은 "한탄강변에 사망한 피해자들을 소각하는 사체처리소각장이 있었다"고 주장해 왔으나, 군 과거사위는 피해자,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일대 주민, 당시 제보자 등을 조사한 결과 소각장이 있었다는 근거를 찾기 힘들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삼인련 측은 "3만9000여 명이 끌려갔는데 사망자가 54명밖에 안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1981년부터 가동된 사체처리소각장에서 최소 150~200명의 사체를 처리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 "정신적 피해 의료대책 필요"…보상신청 저조: 군 과거사위는 "피해자가 겪고 있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실태 조사와 적절한 의료대책이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의 공개사과와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난 2004년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국방부 산하에 위원회가 설치돼 보상 신청을 받고 있으나, 현재까지 신청자는 4600명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측에서는 "보상 법률안이 만들어졌지만 보상 신청을 해도 사망이나 상이에 대한 규정이 까다로워 기각되는 것이 태반이고, 보상으로 인정되더라도 보상금이 몇 십만~몇 백만 원 수준으로 너무 낮다"고 반발하고 있다.

삼인련 측은 이번 군 과거사위의 조사결과를 검토한 뒤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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