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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전태일', 그들의 삶을 증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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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전태일', 그들의 삶을 증언하다"

[화제의 책]<전태일 문학상 수상 작품집>과 <전태일 통신>

하룻밤 자고 나면 억대가 오른다는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 값 소식에 한숨 짓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열 여섯살 하연이는 햄버거 하나 먹는 시간인 30분 동안 시급이 깎이는 게 아까워 끼니마저 거르면서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모조리 떠난 농촌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는 농사가 잘 돼도, 농사가 못 돼도, 가슴 아파하면서 울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선 잘 전해주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오는 13일 전태일 열사 36주기를 앞두고 우리 시대에 '전태일 정신'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 두 권이 동시에 나왔다. 올해 전태일문학상 수상작을 모은 <제15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집>(사회평론 펴냄)과 지난 2005년부터 1년여 간 <프레시안>에 연재됐던 생활글을 묶은 <전태일 통신>(전태일시념사업회 편, 후마니타스 펴냄)이 바로 그 책들이다.

노동소설 주인공,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수인 시대
▲ ⓒ프레시안

"윤재원 씨는 요리사다. 아니다. 호텔 주방에서 윤재원 씨는 '도마사'로 불린다. '도마사'는 하루 종일 칼질만 한다. 칼과 도마와 썰어야 할 재료 외에는 아무 것도 사용하지 않는다. (…) 그러니까, 윤재원 씨는 매일 아침 열 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이면 '감자, 어슷썰기 4kg, 채썰기 2kg, 파, 잘게 썰기 두 단, 홍당무, 둥근 썰기 5kg' 따위가 적힌 주문서를 받아들고 작업을 하는 것이다."(김개똥, "요리사", 소설부문 우수작)

"어디서 잘라야 할지 난감합니다. 두부처럼 쉽게 자를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어딘지 서툰 당신의 말, 옛 동네 어귀를 거닐던 온순한 초식동물 냄새가 나요. 내가 우수고객이라서 당신은 전화를 건다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수고객이었다가 수화기를 놓은 순간 아닌. 우리 서로에게 정말 아무 것도 아닌."(이명윤, "수화기 속의 여자", 시부문 당선작)

"똥철학이 술안주였던 그는 정화조 설치공이었다. 직업을 물으면 곧 죽어도 환경운동가라 했다. 전갈을 받고 응급실로 달려갔을 때는, 뱀 허물 같은 얼굴에 산소마스크는 이미 벗겨져 있었다. 차용증을 들고 온 많은 얼굴들이 안절부절 똥 씹은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그의 영육은 이미 깊고 둥근 통시 항아리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늦게 도착한 노모의 딱딱한 손바닥이 그의 눈을 덮었다."(김양진, "뒷간 천정에 목을 맨 그는", 시부문 우수작)




이번 전태일문학상 수상작에는 호텔 주방에서 하루 종일 칼질만 하는 도마사, 보험설계사, 청계천에서 일하는 미싱사, 정화조 설치공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등장한다.

"전태일문학상 초기만 해도 주인공은 으레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었고, 내용도 민주노조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중심이었던 것이 해를 거듭하면서 주인공도 많이 바뀌었다"고 문학상 심사를 담당한 운영위원회가 밝혔다.

특히 응모한 작품들을 보면 주인공이 노동자일 경우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다고 한다. 전체 임금 노동자들 가운데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철저하게 개인으로 고립되고 파편화돼 있다. 내일의 희망을 얘기하기엔 오늘이 너무 힘겨운 이들이다.

"농촌에 또 한미 FTA라는 파도가 덮치려 한다. 부서지고 쓸려 가며, 그러나 누구는 남을 것이다. 남아서 우리의 삶터가 어떻게 조롱당했고 분노에 떨다가 외롭게 사라져 갔는가를 증언할 것이다. 나도 그 자리에 있고 싶다."

이번에 소설 부문에서 당선한 최용탁 씨의 수상 소감 중 일부다. 이번 전태일문학상에 입상한 이들, 아니 응모한 총 256명의 작가들은 우리사회의 그늘지고 소외되고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증언'하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전태일문학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고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그래서 큰 위안이다.

전태일기념사업회는 오는 11일 오후 서울 정동에 있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강당에서 제15회 전태일문학상과 제2회 전태일청소년문학상 시상식을 갖는다.

"그 어깨에 걸린 무게가 어찌 그리 같은지"
▲ ⓒ프레시안

<전태일 통신>은 농부, 노숙인,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노동자, 고등학생, 교사, 장애인 등 다양한 필자가 쓴 한국사회에 관한 일종의 '현장보고서'다.

"하연이도, 하연이 친구들도, 하연이 동생들도 만으로 15살만 넘으면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오래전 보릿고개라는 말이 존재했던 시대에, 열두서너 살 어린 노동자들이 시다 일로 허리도 펴지 못하는 이층 다락방 먼지구덩이 속에 파묻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을 빼앗기며 결핵과 각종 질병으로 시들어 가던,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 선진국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기적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하는 21세기의 오늘, 지금 만 15살 넘는 어린 노동자들이 그때와 같은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는 시급을 받으며 일 속에 파묻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청춘의 현재와 미래를 빼앗기고 있습니다."(박수정, "그 어깨에 걸린 무게가 어찌 그리 같은지")



"가을이 와도 따지 못한 감들은 감나무에 매달려 버려진 채 썩어가고 어머니는 벌겋게 떨어진 알밤을 홀로 다 줍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운다. 알밤나무 밑에서 알밤을 줍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툭툭 알밤이 떨어지면 어머니는 '염병헌다 시방, 나보고 어쩌라고, 나 혼자 어쩌라고 저런다냐?' 눈물을 흘린다. 알밤이 많아도, 감이 많이 열려도, 농사가 잘되어도 걱정인 세상에 우린 산다."(김용택, "나는 해지는 빈 들을 간다")

"실업고인 동일여자전산상고 학생들의 경우 가정형편이 극빈층인 학생들이 많았는데, 국가에서 급식비를 지원받아 무료급식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에게 '저희들은 공짜로 밥을 먹으니, 대신 식당일을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강제로 식당일을 시켰습니다. 식당청소와 배식을 시켰고, 이 학생들은 4교시와 5교시 수업의 절반 정도를 식당에서 일하며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 무료 급식을 먹어야 하는 학생들이 무료 급식을 거부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조연희, "급식으로 상처받는 아이들, 쫓겨나는 교사들")

이 책에 실린 38편의 글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가진 것 없는, 그래서 내세울 것 없는 그들의 삶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에 실린 글을 통해 아프게 전해져 오는 이들의 일상은 우리 사회를, 그리고 그 구성원인 '나'를 되돌아 보게 만든다.

책갈피를 넘기다 보면, 이 사회에는 어찌 그리도 비주류의 삶, 주목받지 못하는 인생이 많은지 새삼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 온다. 누군들 일상의 무게에 가위 눌려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넘기지 않겠느냐만, 우리의 시선 밖에서 시급 깎이는 것이 아까워 햄버거 먹기를 포기한 아르바이트생과 학교에서 무료급식을 제공받는다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식당 청소를 해야 하는 극빈층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얘기는 우리의 시선을 벗어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언론의 취재와 보도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 건 뉴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관성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 높은 사회운동가들의 관심 대상도 되지 못하는 이들은 어디에서 의지처를 찾을 수 있을까? 그냥 그렇게 한 세상 지내고 알아서 조용히 사라져주면 되는 것일까? 혹시 우리의 무관심이 이같은 사각지대가 무차별적으로 확대재생산 되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대목에까지 생각이 이르면 사실 견디기 힘들어진다.

이 시간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이 구석 저 구석 관심과 시선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36년전 전태일 열사는 자기 몸을 불태우며 남긴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이 무색해지는 현장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그런 사각지대와 그런 무관심의 현장이 남아 있는 한 또다른 <전태일 통신>은 앞으로도 <프레시안>을 통해 계속 소개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좋은 일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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