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DJ의 호남'과 '盧의 영남'이 충돌할 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DJ의 호남'과 '盧의 영남'이 충돌할 때

[정치 깊이읽기] 與 지역주의 논란에 드리운 '분열'의 그림자

최근 정국 흐름의 큰 줄기를 '김대중(DJ) 대 노무현'의 긴장관계로 보는 시각이 많다. 두 사람은 4일 회동에서 정계개편과 관련된 논의가 일체 없었다고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만난 의도와 배경에 쏠린 세간의 눈길은 향후 정계개편에 미칠 두 사람의 영향력을 새삼 드러내는 것이다.

범여권의 정계개편, 즉 집권전략과 관련한 두 사람의 인식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르다. 김 전 대통령은 "여당의 비극은 분당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사실상 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한 '전통적 지지기반의 복원'을 주문한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 노 대통령은 노사모 모임에서 "우리당이 영남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세력 구축에 올인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정계개편 갈등을 관통하는 중심부에 DJ와 노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지역'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내 정계개편 갈등의 축인 '통합론'과 '당 사수론'은 정확하게 DJ와 노 대통령의 시각차를 반영하고 있다.

당 사수파인 친노계 의원들은 통합론을 "호남 지역주의로의 회귀"라고 비판한다. 반면 최근 부쩍 'DJ 노선'을 강조하는 통합론자들은 "우리당 사수론이 곧 영남 중심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반박한다. 이런 공방은 꽤 오랫동안 누적돼 온 것이기에 화해가 쉽지 않아 보인다.

노무현 정부 출범부터 잉태된 갈등

지난 5.31 지방선거 직전,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부산에서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부산 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부산 정권' 발언이다. 문 전 수석은 당시 "대통령이 (부산을) 엄청 짝사랑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문 전 수석의 발언은 우리당 호남권 의원들에게서 집중포화를 받았고, 호남 지방선거에서 역풍을 일으켰다.

문 전 수석의 발언이 나온 며칠 뒤, 이번엔 정동영 당시 당 의장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그는 "지방선거 후 수구세력에 맞선 민주세력 연합의 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호남발 정계개편의 군불을 땐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대해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김두관 당시 최고위원은 "창당 초심을 훼손하는 사람과 세력은 더 이상 당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정 의장의 사퇴와 탈당을 요구했다. 김 최고위원의 과도한 발언은 또 다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보름 남짓의 기간 동안 친노(親盧)와 비노(非盧)를 상징하는 영호남 대표주자들 사이의 적전분열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영남을 끊임없이 갈구해 온 친노계,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는 비노-반노계가 결국은 한 배를 탈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우리당의 분열은 가시권에 접어들었던 셈이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좁게는 민주당 분당 때부터 잉태된 두 세력 간의 갈등을 현재 우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계개편 논란의 중심축으로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통합론 당사수론
명분전통적 지지기반 복원, 집권 지름길 전국정당화, 창당정신 계승
집권전략호남+개혁세력 영남개혁세력 충원+호남
약점'도로민주당', 창당정신 부정 사실상 재집권 포기한 이상론
중심세력김근태, 정동영, 천정배, 호남권 의원 의정연, 참정연 등 친노 그룹

통합론, 어디로 가도 '도로민주당'

통합론자들은 최근 잇따라 '창당 실패'를 자인했다.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등 창당 주역들의 발언이기에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한결같이 '국민들의 외면'을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내막은 결국 전국정당화를 위해 지역 기반을 과감하게 뛰쳐나온 우리당 창당의 모험이 실패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호남권 지지기반 복원으로부터 집권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통합론자들의 주장은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과 연대해 호남과 충청을 아우르는 서부벨트를 복원해야만 50대50의 싸움으로 대선구도를 짤 수 있다는 계산이다. 즉 민주당의 호남 기반과 고 전 총리의 개인 지지율을 모두 흡수해야만 집권 전망이 선다는 것이다.

이 같은 통합론자들의 구상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걸림돌이 되는 이유는 단지 노 대통령이 인기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끝까지 남겠다"고 했던 말은 사실상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라'는 협박으로 들렸다. 호남권 통합으로 방향을 잡은 우리당의 향후 진로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노 대통령의 엄포였던 셈이다.

정대철 상임고문의 직접적인 '노무현 배제론'이 아니어도 천정배 의원의 '당 주도의 정계개편론', 김근태 의장의 '노 대통령 벤치론' 등은 모두 이런 경계심을 담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과 고건 전 총리 등이 공공연하게 '노무현 배제'를 통합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우리당을 과감하게 버리고 제3의 지대에 새로 당을 만드는 헤쳐모여식 창당방법은 노 대통령과 결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럼에도 통합론자들이 선뜻 이를 택하지 못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명분 부족이다. 우리당의 창당 정신을 깡그리 무시하고 '도로민주당'이라는 비난을 피해갈 도리가 없다. 또한 헤쳐모여식 방식은 12월 신당 창당 프로그램을 밝히며 정계개편 주도권 다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고 전 총리에게 백기투항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함께 헤쳐모여식 방식은 친노계에 대한 견인이 불가능해 그동안 일구어 온 영남권 개혁세력의 이탈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당분간은 '우리당 중심의 통합론'이 대세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분열은 최소화하고 외부세력에게 문턱은 최대한 낮추자는 것. 그러나 이 역시 지역주의로의 회귀라는 점에선 헤쳐모여식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고, '분열 없는 통합'을 일구어낼 만큼 우리당의 구심력이 충분한 것도 아니어서 고민이 깊다.

이런 가운데 통합론자들이 최근 부쩍 'DJ 노선'을 강조하는 데에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 불충분한 내부 동력을 DJ로부터 충원 받는 한편, '햇볕정책의 계승'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명분을 내세워 호남권과 개혁세력의 결집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통합론자들의 이같은 기본 구상이 현실화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정치컨설턴트인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지금은 DJ로 상징되는 호남의 정체성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약화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어떤 명분을 낼 것인가도 중요한데, 누구나 다 아는 보수주의자인 고 전 총리를 통합하면서 개혁 캠페인을 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소장은 한발 나아가 "지금도 내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식물당인데 여기에 민주당과 고 전 총리까지 들어오는 통합은 더욱 큰 혼란을 빚을 수 있다"며 "국민들은 지역주의 회귀와 호남당이라는 딱지를 붙일 것이 뻔해 통합에 이르기도 전에 당이 온전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 사수론에 숨은 영남 중심주의

이에 따라 지역주의 극복을 여전한 중심 가치로 내세우는 친노계의 주장은 명분상에선 일견 우위를 점하는 듯 비쳐진다. 백원우 의원은 "지역주의 극복은 우리의 창당정신일 뿐만 아니라 전국정당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면 집권이 어렵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영남권을 향한 이들의 시선은 지역주의를 깬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에서 그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는 곧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집념을 간과하면 정계개편과 관련한 노 대통령과 친노계의 방향성을 전망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친노계는 영남 민주화세력을 한 축에 둔 집권전략을 내세운다. 영남에서의 세력 확대를 통한 지역주의 극복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구상이다. 민주당과의 통합은 결국 영남 유권자들을 한나라당으로 결집시키는 필패전략이라는 친노계의 주장이다.

백 의원은 "호남당으로 전락하면 내년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느냐"며 "역대 대통령 선거결과를 보면 영남에서 유의미한 득표를 얻지 못하면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후보'를 내세운 노 대통령은 영남권에서 29%의 득표율을 얻었다.

이들의 집권전략은 한나라당의 텃새가 여전히 강한 대구경북권 보다는 부산경남권에 맞춰져 있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모두 대구경북 출신이기도 하거니와 그나마 부산경남권은 노 대통령 집권 이후인 지난 4.15 총선에서 현역의원 2명을 내는 등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현재 민주당과 분할점령하고 있는 호남 지지율은 반드시 민주당과의 통합이 아니어도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햇볕정책 등 우리당에 대한 DJ의 확실한 지지만 얻는다면 비호남 후보라도 호남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혁규 의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김두관 전 최고위원 등 영남권 인사들이 친노계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고 있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로 인해 친노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영남에서 모종의 세력화를 꾀하고 있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영남신당'을 추진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도 사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부산경남과 호남 민심을 통합시키는 방식인 친노계의 집권전략 역시 '지역주의'의 정치공학에 기반 해 있는 셈이다. 천정배 의원이 "인위적으로 지역을 분열시켜 다른 쪽 지역과 통합하자는 게 지역주의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한 것이 바로 그런 맥락이다.

친노계의 또 다른 난관은 현실을 간과한 이상론이라는 비판이다. 김헌태 소장은 "친노 그룹 중에는 집권을 포기하더라도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면서 "그동안 실패가 누적된 상황에서 당 밖의 어떤 세력이 이런 주장에 함께 하겠느냐"고 말했다.

박성민 대표 역시 "경제와 안보 두 가지 이슈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것이 국민들의 평가인데 전국정당화 혹은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이 이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평가했다.

결국 우리당의 정계개편 논쟁은 'DJ 대 노무현', '친노 대 반노', '통합론 대 사수론' 등으로 외화 되고 있지만, 이같은 갈등의 기본 논리는 '영남 중심주의'와 '호남 우선주의' 간의 뿌리 깊은 반목에 기초해 있는 셈이다. 현재로선 어느 쪽도 서로를 압도할만한 명분과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 어쩔 수 없이 분열로 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